국민대학교/북악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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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고도 아득한 배움의 바다

파도와 싸우며 배들을 저어
평화의 항구를 바라다 보고
바쁘게 바쁘게 나가는 우리
우리는 새로운 민주의 나라
사공을 기르는 국민대학교

이병기 작사, 이홍렬 곡
국민대학교 교가 #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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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로 77에 위치한 국민대학교의 메인캠퍼스

2 현 북악캠퍼스에 위치하게 된 이유

1971년 현재의 정릉동 북악 캠퍼스로 이전하기 전에는 종로구 창성동에 학교가 위치하고 있었다. 국민대학교를 인수한 성곡 김성곤 선생은 신축 교사를 건축하려고 했였으나, 창성동 일대는 주택가였고, 바로 앞은 경복궁이어서 교지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이에 성곡은 아예 새 캠퍼스 부지를 물색했는데, 처음에는 현재의 강남구 대치동으로 부지로 이전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당시 강남은 개발이 전혀 안 된 허허벌판 모래사장이었던 관계로(..) 허허벌판에 학교 세우면 누가 오겠냐며 성곡 선생이 반대한 일화가 있다. 아이고 딱 10년만 미래를 봤어도

성곡은 새 캠퍼스 부지로 도심과 가깝고, 자연환경이 좋은 곳을 물색하였는데 현재의 정릉동 861-1번지 임야를 둘러본 지관이 '명당터가 따로 없다'며 성곡에게 이야기했고, 결국 국민대 캠퍼스를 정릉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마침 그곳은 대한유도회가 1964년 올핌픽에서 최초로 메달을 획득한 것[1] 을 기념하는 회관을 짓기 위해 정부로부터 불하를 받은 곳이었다. 결국 재단측은 정부와 유도회측과 막후접촉을 거쳐, 1965년 159평의 부지를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1968년 2차로 2천7백여 평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땅은 어찌어찌해서 사긴 샀는데 정작 건축비가 부족(...). 창성동 교지를 처분하면 해결될 수 있었으나, 당장 수업이 중단되는 난감한 사태가 벌어지기에 그또한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청와대에 인접한 창성동 교사는 건축 제한지역으로 묶여 있어 거래에도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나 재단측은 정부와 끈질기게 교섭하여 부지 대금 3억 5천만원을 선금으로 전액 받되, 교지는 정릉동 캠퍼스 건물이 준공되는 1년 6개월 후에 비워준다는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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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정릉 북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건물은 현재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창성동 별관 앞의 플라타너스 나무는 1950년 6월 24일 국민대학 제 1회 졸업생들이 심었던 기념식수이다.

한편 원래 이전하려고 했던 강남 대치동 부지는 강남 개발 붐을 탄 1980년 쌍용건설에게 헐값으로 팔려서 현재 쌍용아파트와 우성아파트 부지가 되었으며 교차로 일부 부지를 쌍용그룹 산하 건물(소유권은 국민대학교)로 남겨서 용평리조트 서울사무소로 쓰인 일이 있다.(현재는 소유권이 어디인지 확인바람).#

3 시설 및 대학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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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본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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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부관

구 1호관. 총장실과 대학업무를 보는 부서들이 있다. 대학차원에서 학생들의 민원을 처리해 주는 곳이다. 1층 종합서비스센터에 가면 학사행정에 관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 (과사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행정이 아닌한 모든 행정업무를 여기서 볼 수 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큼 학내에 큰 사건이 생길 때마다 털릴 수밖에 없는 곳이다. 옛날처럼 운동권 세가 강력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도 털리는 건 마찬가지. 2012년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 당시, 본부관에 비운동권 학생회와 운동권이 연합하며 본부관 진입을 했으며 2014년에는 복지관 열람실 폐지를 비롯한 공간 조정 문제때문에 6명의 학생이 본부관에서 시위를 했고 그 중 1명은 본부관 앞에서 단식시위까지 했다.

1층에 대형 학술회의장, 4층에 소형 학술회의장이 있다. 1층 학술회의장에선 목요특강과 같은 큰 행사가 열리는데, 4층에선 북악정치포럼이나 산하 연구소의 포럼들이 열린다. 북악정치포럼의 경우엔 2008년까지만 해도 진보/보수 섭외가 나름 균등하고, 의미있는 분들이 많이 찾았지만 2009년에 담당교수가 교체된 뒤로는 퀄리티가 많이 떨어졌다.

4층엔 홍보팀이 있는데, 홍보팀은 학교공식 트위터를 통해 자주 하는 편이다. 상품을 타려면 홍보팀 사무실을 가야하는데, 다들 사무실이 어딘지 몰라서 못가는 사람도 꽤 있는 듯하다.

본부관 분수 기준 왼쪽 벽면에 엄청나게 큰 국민대학교 동판 교표가 붙어있는데, 사실은 이게 원래 북악관에 붙어있었다(!)[2] 현재처럼 북악관 전면에 컬러로 된 교표 간판이 설치되면서, 기존에 설치되었던 동판 교표는 본부관 벽면에 설치된 것이다.

2013년, 성곡 김성곤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으로 국민대학교 동판 교표 오른쪽에 김성곤 선생의 어록비를 세웠다.

일하자

더욱 일하자
한없이 일하자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1969년 1월 1일
성곡 김성곤

3.2 북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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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관

국민대의 랜드마크

구 2호관. 문과대학과 사회과학대학, 교양대학의 건물이다. 90년대 초반까지는 거의 모든 단과대가 위치해있으며 2009년까지도 건축학부와 건물을 같이 썼다. 과거 국민대에 건물이 별로 없을때는 박물관, 도서관의 역할도 하였다. 국민대에서 가장 높은 건물(15층)이며 종합복지관과 더불어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건물이기도 하다.

2호관이라는 옛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북악캠퍼스로 이전하고 두번째로 지어진 건물이다. 1974년 5월 28일에 완공되었으며 오랜 세월이 지나 굉장히 노후화되었다(...). 건물 외벽은 여러번 리모델링 되어 오래된 건물 같아 보이지 않지만[3] 강의실 내부 시설은 다른 건물들에 비해 꽤 열악한 상태. 가끔가다 보일러가 굉장한 굉음을 내어 수업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2012년 2월, 학생들의 오랜 숙원이던 화장실을 리모델링하였다.

학기 중에는 항상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엘리베이터는 좌측 2대, 우측 3대(전망엘리베이터 1기 포함) 운용중인데, 좌측 엘베와 우측엘베, 전망엘베는 각각 정차하는 층이 다르므로 유의해야 한다. 엘리베이터가 노후되어 중간에 서는등 문제가 많았는데 2014년에 일부 엘리베이터가 교체 되었다.

1층 로비는 테이블이 많아서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팀플하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또한 복사실, 여학생 휴게실, 카페가 있고, 매점도 있는데 학내에서 규모가 제일 크다. 매점 구석엔 기념품 판매점도 있지만 파리만 날리는 수준.(이것은 학생들이 사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에 내놓은 학교측의 잘못이 크다. 학교 노트나 파일같은것은 매점에서 판매하고, 뱃지같은 가벼운 기념품은 아예 팔지도 않는다.) 결국 기념품점은 없어지고 2014년 2학기부터 그 자리에 도시락 가게가 들어섰다.[4]

북악관 우측 입구에서 엘리베이터쪽으로 올라오면 대자보판이 있는데, 1년 내내 난장판이다. 특히 3월 학기 시작무렵엔 난리도 아니어서 아침 8시에 자보를 붙이면 8시 15분엔 이미 사라져있더라는 도시전설급 일화도 실제로 존재한다. 양쪽 엘리베이터 쪽 벽면도 난장판인건 마찬가지였는데 2014년 들어 사과대 학생회가 관리를 시작하면서 한결 나아졌다.

외국인 교강사의 연구실이 대체로 북악관에 있기에 국민대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여기서 교양필수과목인 영어회화나 영어1 수업을 듣게 된다.

워낙 특이하고 상징적인 건물이라 별의 별 전설이 존재한다.
90년대 부터 이하 각 건물들이 순차적으로 지어지기 전에는 학교에 유일하게 높이 선 건물이었기에 원래 북한산 자락에 불법적으로 지어지던 호텔이었는데 박정희가 비행기를 타고 상공을 지나다가 '저게 뭔가' 하고 밑에 부하한테 묻자 '하.. 학교 건물입니다' 라고 해서 국민대학교 전체가 북악캠퍼스로 오게되었다는 전설이 있었다. 물론 헛소리다. [5]

7~8층 이상부터는 경치가 꽤 좋은편이다. 밤에 전망엘레베이터를 타고 15층까지 가면 서울 동부의 야경을 볼 수 있다.

15층 왼편으로 가면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다. 옥상에는 故 남덕우 총리의 호를 따서 이름지은 지암 이노베이터 스튜디오가 있다.

3.3 공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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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관

공과대학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건물. 왠지 공대의 특성상 마초적인 분위기가 짙을것 같지만, 와플이 유명한 카페가 입점해 있어 의외로 화사했다. 타과생들에겐 그저 와플먹는 곳. 하지만 2012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재계약을 포기해서 공대와플은 추억속으로 사라졌고 새 학기부터 규모는 작지만 맘스터치가 들어왔다.(실질적인 운영은 생활협동조합)운영시간은 2012년 9월 8일까지만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이고, 이후부터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운영한다. 단 일요일/공휴일은 휴점.

학교 초창기부터 있던 건물로, 노후화가 심각하다. 보수를 해도해도 비가 오면 물이 샌다. 228호 대형강의실이나 지하 코라 연습실은 비만 오면 물퍼내는게 일상이었다고.

2012년 여름방학에 맘스터치를 들여오면서 공대 1층 편의시설 확장공사를 했다. 와플이 나간자리에 맘스터치가 들어왔고,'Music Box' 동아리방의 위치도 약간 이동했다. 세미나실도 좀 생겼다.

70년대에 지어진 본관과 90년대에 지어진 별관이 있는데, 본관에는 연구실과 강의실위주, 별관엔 교수님들 연구실이 많다. 미네르바라고 불리는 공대매점(바로 위에 소개된 와플 파는 곳)은 별관에 있다. 공대생이 아니면 별관과 본관 구별하는거에 신경 안쓴다.
한때 전자정보통신대학이 일부층을 빌려썼지만 현재는 7호관으로 몽땅 옮겨간 상태. 그래서 예전에 총학생회 투표소가 공대 1층과 5층 두곳에 있었다. 1층은 공대 투표구, 5층은 전자정보통신대학 투표구.

228호 대형강의실은 매해 총학생회 개표장소로 쓰이고 있다(2012년 3월 보궐선거는 경상관 301호에서 개표했지만, 이는 협의체장이 경영대 학생회장이기 때문)

공대 소모임이나 학생회실은 지하 1층이나 지상 1,2층에 주로 있는 편이다. 1층에 있는 자동차융합대학 자작차 소모임 코라(KORA, KOokmin RAcing)는 국내 대학 자작차 동아리 중 수상경력이 가장 화려하다. 2015년에는 FSAE에서 전세계 115개 팀 중 4위로 역대 최고 성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대회와 관련해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부분도 꽤 되고 지하에 대형 작업실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학교에서도 밀어준다.

공대생이 아닌 타단과대생들은 공대 출입구가 1층밖에 없는 줄 알지만, 정문에서 농구장을 거쳐 공대 지하로 바로 들어가는 지름길도 존재한다. 단 휴일엔 열지 않으니 유의바람.

3.4 법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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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관

구 학생회관. 1978년 준공된 후 2000년대 중반까지는 학생회관으로 사용되었으나, 로스쿨을 유치하려는 계획에 의해 법학관으로 리모델링 되었다. [6][7] 하지만 지방할당제[8]로 인해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하게 되었고...법학관으로 쓰이고 있다.

지하 1층엔 법학도서관과 분식당(한울식당)이 있고 2012년 공사로 1층에 매점과 카페가 들어섰다.
1층엔 모의법정이 있는데 법대 학회들이 여기서 모의 재판을 연다.
2층엔 각종 법학 관련 연구소, 센터들이 많은데 학생들에게 유용한 곳도 많다. 법률상담센터에선 학교 구성원들의 각종 법률 상담을 해준다. 알바 계약 문제나 자취방 계약 문제에 관해서도 친절하게 상담해주니, 법 몰라서 억울한 일 당하지말고 이곳을 자주 찾자.
3층엔 법대 학생회와 학회실이 있는데 4개 학회가 1개 학회실을 쓰는 아주 열악한 환경이다.
5층엔 고급 식당인 "청향"과 법과대학 고시연구실인 "법고연"이 있으며 법고연에서는 매년 사법고시 합격자 등을 배출하였으며 2014년에는 행정고시(보호감찰직) 수석 합격자도 나왔다.

언덕쪽의 경치가 매우 좋은데 대부분 교수님들 연구실로 사용되고 있다.

법학관 입구 앞에서 동상을 하나 볼 수 있다. 국민대학교 설립자이자 초대 학장인 해공 신익희 선생의 동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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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짤방은 사실이 아니다!!!

로스쿨 선정에서 국민대가 탈락하자 타대 훌리들은 이를 비꼬고자 로스쿨 건물 전체를 최고급 학생식당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의 짤을 만들었다. 그런데 하필 이게 대 히트를 치면서(...) 이를 진짜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그럴리가 없잖아 덕분에 국민대생들은 이 건물에 대한 질문을 한번씩 받게된다고 한다. 정말 너네 학교 로스쿨 건물을 식당으로 쓰니?

3.5 조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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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관

구 4호관. 조형대학 학생들이 사용하는 건물. 성곡도서관이 완공되기 전까지는 도서관으로 쓰였으며 건축학부도 조형대학 소속 건축학과였을 때 이 건물을 사용했다. 조형대학에서 담당하는 교양수업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타과생들에게는 낯설다. 겨울에 굉장히 매우 아주 춥다. 2012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통해 외벽이 대리석과 두꺼운 유리 창문으로 기존의 붉은 벽돌 건물에 덧입혀져 굉장히 호화로워보인다. 그러나 화려해진 외관과 다르게 겨울에는 여전히 굉장히 매우 아주 춥다. 창문가에 놔둔 생수가 자고 일어나니 얼음이 되어 있고 우유는 3일이 지나도 매우 신선하며 심지어 살얼음이 끼어 있더라는 전설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타과 수업이 거의 없기 때문에 졸업할때까지 들어가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 뭔가 전반적인 학교와 다른 느낌이다. 다른 건물은 학생 대자보판이 존재하지만 조형관은 조형대학 교학팀 허락 없이는 건물 어디에도 무단으로 대자보를 붙일수 없다.

1층의 갤러리에서는 자주 전시회를 여는 편이다. 조형화방은 2012년 1학기까지 존재하였으나 2012년 2학기부터는 금속공예와 도자공예의 여유공간 확보를 위하여 북악관으로 이전되었다.

지하1층은 도자공예학과, 1층은 금속공예학과, 2층은 실내디자인과, 3층은 공업디자인과, 4층은 시각디자인과, 5층은 의상디자인과가 사용하고 있다. 도자공예학과가 있는 지하 1층은 규모가 큰 목공실이 있어 Softmockup을 제작할 수 있다. 목공실의 규모는 대한민국 미술대학 중 가장 규모가 크고,(통계적으로 확인된바는 없으나 상당한 규모의 목공실을 따로 갖춘 디자인학과가 거의 없다) 그 설비 또한 풍부하다.[9]

또한 학부에 유리공예과는 없지만 유리공예대학원이 있다! 도자,금속 공예과의 학부생들이 선택적으로 듣는 수업이며 1학기때 가벼운마음으로 수강했다가 엄청난 재료비와 오전수업크리로 2학기가되면 학생수가 현저히 주는 수업이다
(타과생에게도 오픈되어있으니 강단있는자라면 도전해볼만하다)

매년 졸업시즌이 되면 의상디자인학과에서 조형대 뒤 주차장에서 졸업패션쇼를 연다. 패션쇼의 규모가 웬만한 프로패션쇼 못지 않다. 프로, 준프로급의 모델떼들을 북한산 산골짜기에서 구경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신설된 과인 영상디자인과와 자동차운송디자인과는 조형대에 속해있으나 공간이 부족하여 형설관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디자인대학원, 테크노디자인대학원 건물이 조형관 옆에 애드온 되어 있는데, 값비싼 최첨단 설비가 즐비하다. 테크노 디자인 대학원 내의 공업디자인학과에서 운영하는 NC머신과 RP, 레이저 기기들은 조형대학 학생이라면 약간의 절차를 거쳐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테크노 디자인 대학원 1층 세미나실에는 자동차 실제 사이즈를 1:1로 띄울 수 있는 대형 스크린이 위엄을 뿜고 있다.

3.6 체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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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관

체육관이라곤 하지만 농구코트와 무대가 전부이다. 입학식이 열리는 곳. 국민대학교 건물 중 가장 시설이 낙후되었다. 준공 연도는 1980년으로 위에 나와 있는 건물들보다 뒤에 지어졌다(...).[10]

한때 국민대는 농구부가 존재했는데(나름 농구대잔치 1부였다!!)[11], 여기서 연습했던 것으로 추정.
1층에 샤워실이 있으나 사람 두어명 들어가기도 힘든 구조에 온수기도 안습이라 여기서 수업하는 체대생들이 많은 고통을 겪기도 했다.

체육대학 대학원 부설 웰니스 센터(헬스장)이 2000년 4월 개관했으나 7호관으로 이전했다.

예전에 국민대 구내로 시내버스(1112번)가 들어왔을 때는 체육관 옆(지금의 기숙사 자리)이 종점이어서 체육관 지하에 기사 휴식시설도 있었다. 2012년 3월 보궐선거에 출마한 총학생회 후보 중에는 여길 개조해서 '찜질방'으로 만들겠다는 후보도 있었지만 학생들은 현실성이 없다고 코웃음 쳤다(서울시내 대학중 유동인구가 최악을 달리는 곳인데 수익성이 날 리가 만무하다).

88년 서울올림픽의 공식포스터에 들어간 사진이 촬영된 곳이다. 포스터 제작 당시 기온이 낮아 실외에서 촬영할 수가 없어서 성화를 봉송하는 주자 사진을 실내인 국민대학교 체육관에서 촬영한 것. 당시 조형대학 유영우 교수가 제작을 맡아 토치로 성화에 불을 점화한 다음 몇 컷을 찍고 문을 열어 연기를 뺀 후 다시 찍는 등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무사히 진행되어 올림픽 성공에 밑거름이 되었다.

2009년 WBC 결승전을 여기서 중계 해줬는데, 2천명도 넘는학생들이 몰려들어 체육관이 터져나갔다. 처음엔 썰렁했는데 경기가 치열해지자 학생들이 몰려와서 9회말 이범호 동점타때는 체육관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2012년 5월엔 학생총회가 발의되어 체육관에서 열리기로 되어있었으나 1500여명이 참석해야 열리는 총회에 단 69명만 참석해 총회가 열리지 못하는 흑역사가 만들어졌다.

경기장 아래층은 산학협력단 산하 벤처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3.7 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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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

구 3호관. 자연과학대학의 학생들이 사용한다. 한때는 전자정보통신대학 일부 학과도 있었지만 현재는 7호관으로 옮겨간 상태. 후문 바로 앞에 있다.

국민대학교 건물 중 가장 접근성이 떨어진다. 심지어 국민대 정문 버스정류장보다 '청덕초등학교' 버스정류장이 더 가깝다.[12] 그래서 다른 단과대 학생들과 좀 분리되어 자신들끼리 뭉치는 경향이 강하다. 총학생회 선거에 자연대 후보자가 나오자 공대보다 더한 결집력을 보여줬다. 난방이 잘 들어오지 않아 매우 추운데, 자연대 학생들은 자신들이 소외돼서 그렇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다른곳도 다 그래 걱정마!!! 이는 난방시스템 탓이 큰데, 북악관 지하에서 만드는 난방이 가장 멀리 닿는 곳이 과학관이기 때문이다. 오다가 식어서 과학관엔 겨울에 에어컨이 분다는 소문도 있다

2010년, 카페 그라지에가 입점했다.

3.8 성곡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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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곡도서관

현 조형관이 과거 중앙도서관이었던 시절, 열람실은 많이 부족한 상태였다. 학생들은 새로운 도서관을 요구했으나 학교 측에서는 부지가 없다고 거부. 그러자 당시 공대 예비역 200여명이 전투화를 착용하고, 손에는 쇠파이프를 들고 본관 건물 유리창을 1층부터 4층까지 모조리 깨버리며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학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결국 1993년, 지금의 성곡도서관이 생겼다고 한다. 흠좀무

성곡이라는 이름은 성곡 김성곤의 호에서 따왔다. 그래서 도서관 입구 앞에는 성곡동상이 있고 도서관 1층에는 성곡 김성곤 관련 유물을 전시한 성곡기념홀이 있다.

구석진 곳[13]에 위치해 있다. 내부는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겨울에는 오질나게 춥다. 이런 기온에 까마귀들까지 까악까악 거려서 음산한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이다.가끔 산개들이 왕래한다 도서관 위쪽으로는 절이 있고, 등산로가 있어서 등산객들이 왕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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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계획된 미르못현실은 시궁창

성곡도서관 옆에는 '미르못'이라는 저수지가 조성 될 예정이었다. 그래서 인명 구조 튜브가 비치되어 있다. 성북구청 ‘국민대학교 주변 친수 공간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 11월 실개천과 분수대를 만들며 함께 조성된 것. 그러나 여러 안전 문제와 성북구청과의 협의 문제로 물은 채워지지 않고 몇 년째 방치되고 있다. 이게 무슨 저수지냐

맛의 달인, 신의 물방울에 슬램 덩크 완전판 전집같이 의외의 도서들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라이트 노벨로 아예 책장 한 면이 꽉 차 있는 것은 충격과 공포...장르소설도 10여개 착장에 가득차있다 기이할 정도로 라이트 노벨 류 소장 도서가 많아서 마리아님이 보고 계셔 전집처럼 다른 학교 도서관에는 찾아보기 힘든 도서들이 많다. 이런 도서들은 대부분 학생들의 신청으로 구매한 거다. 무섭도다, 선배들의 덕심. 기술과학 도서실에는 각종 요리 만화도 있다. 공강 시간에 시간이 남는다면 가서 심심풀이 삼아 읽어보자.

2014년 1월부터 2월 말까지 도서관 출입통제를 하고 덕분에 국민대생들은 방학동안 서경대 도서관으로 몰려갔다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다. 리모델링 전까지 5층에 있었던 멀티미디어실이 1층으로 내려오고 종합복지관으로 이전했던 디자인 도서관이 8년 6개월만에 성곡도서관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노후 비품 교체 및 신규 설치가 되었다. 시설이 상당히 좋아지긴 했으나 디자인도서관이 들어오는 등 공간재배치로 인해 열람실 좌석이 기존 867석에서 497석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시험기간에 헬게이트가 열렸다(...).

2012년 7월부터 성곡 김성곤 선생 동상 뒤로 지하2층, 지상5층짜리 건물을 증축하고 있었으나 2014년 7월, 신도서관으로 알려진 건물에는 국제교육원과 한국어학당이 들어올 계획이라는게 밝혀졌다! 많은 학생들이 이 사태에 대해 분노하였고 국민인닷컴과 페이스북에는 학교와 총학을 비판하는 글이 쏟아졌다(...).

3.8.1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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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성곡도서관 5층 왼편에는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은 1973년 북악관에서 개설하여 1993년 현재의 자리로 확충 이전하였다.

전시실은 선사실, 고대실, 고려실, 조선실, 해공기념홀, 화폐실, 민족실, 회화실, 서예고문서실, 불교미술실로 구성되어있다.

특히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설촌고문서』와 『암각화 자료』는 다른 박물관이 갖추지 못한것으로써 그 사료적 가치가 대단히 높이 평가되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아마 일반인이 국민대 박물관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보고 나올 것은 벽면에 전시된 대형 암각화 모형일 것이다.

그러나 박물관을 찾는 학생은 거의 없고 대다수는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게 실정. 방문객들은 대체로 열람실로 가려다 잘못 들어온 사람(...). 그나마 국사학과 교수님들은 간혹 박물관으로 학생을 불러 수업을 하시기에 국사학과 학생들은 한 번쯤은 가보게 된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박물관은 원래 종합복지관으로 이전할 예정이었다. 한정된 공간에 신간이 늘어만 가다보니 공간 부족현상이 발생했고 이에 도서관 측은 그동안 학교 본부에 공간 확충을 요구해 온 것. 그리하여 종합복지관이 완공되면 박물관을 이전시키기로 결정했으나...이전비용이 20억원 가량 소모되고, 종합복지관으로 이전하게 되더라도 추후에 또 이전할 가능성이 있어 영구적 이전이 아니란 이유로 박물관의 이전은 연기됐다. 그 결과, 종합복지관으로 옮겨진 것이 도서관 3층의 열람실과 디자인 도서관이라고.[14] 흠좀무

2014년 성곡도서관의 리모델링과 함께 박물관도 리모델링 되었다.

3.9 형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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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관

구 5호관. 법학관에 애드온되어 있는 건물. 신입생들이 와보면 형설관이랑 법학관이랑 다른 건물인지 잘 구별이 안되는 경우도 많다. 법학관과는 층수체계가 다르다. 본래 목적은 고시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함이었으나 형설재가 형해화 되면서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지금은 영상디자인학과 학생들과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다. 3층,4층,6층을 영상디자인학과가 사용하고 있으며, 3층 건물 외부에는 UMDC라는 영상디자인 스튜디오를 갖추고 있다. 그래서 형설관 입구에는 '애플 국제교육공인센터(Apple Authorized Training Center·AATC)'와 어도비 국제인증자격증(Adobe Certified Associate·ACA) 시험 기관이라는 인증패가 달려 있다. 전국 최고수준인 국민대학교 조형대의 위엄을 알 수 있는 부분. 1층, 2층, 5층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가 사용하고있다.
6층에는 영상디자인학과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의 랩실이 있다.

그러나 타과생들에게는 그저 엘리베이터로 사용될 뿐. 후문이나 과학관에서 북악관 방면으로 이동할때 가장 빠른 통로가 형설관 엘리베이터다.

3.10 경상관, 국제관, 경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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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관, 국제관, 경상관

국민대학교에서 외관이 뛰어난 건물로 꼽히는 건물 중 하나이다.

이름이 자주 바꿔서 많은 혼란을 주는 건물이다. 건립 당시 이름은 국제교육관이였으나 얼마 못가고 A동은 국제관, B동은 법학관, C동은 경상관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도 얼마 가지 못하고 국제관은 A동, B동, 콘서트홀, C동(경상관)으로 불렸고 한동안 이 명칭을 쓰면서 이것이 고정되나 싶었지만(...).

2014년 8월, 경상대학이 경상관에서 분리되어 국제관 A동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이 공개되었다.
경상대학이 경상관에 없다니 이게 무슨소리요?
원래 경영대는 경상대에서 떨어져 나온 단과대학이었지만 점점 그 크기가 커지면서 원래 주인이었던 경상대를 유배보내게 되었다.(...)
복지관 열람실 철거와 신도서관 용도 변경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에게 어떠한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논란이 되고 있다. 게다가 국제관 A동의 크기가 경상관의 약 3분의 1 수준인데다가 가용 강의실도 6개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경상대학 학생들의 반발이 있었다. 결국 학생대표[15]들이 민주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강력하게 항의를 하면서 일단 유보되었으나...2015년이 되자마자 학교에서는 강행하기로 했다.

결국 2015년 들어 또 다시 이름이 바뀌어 국제관 A동은 경상관, 국제관 B동은 국제관, 경상관(C동)은 경영관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에 맞추어 대대적인 내부 리모델링이 있었는데 경영관만 삐까뻔쩍해졌다는게 중론.

국제관은 다양한 용도로 쓰이고 있는데, 외국인 학생들이 한국어 기초교육을 받거나 그들만의 교육과정을 소화하는 강의실이 있고, 교수님들 연구실도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공간은 경영대학, 경상대학 학생들의 자치공간, 강의실로 쓰이고 있다.

A,B,C동 1층강의실은 경영대학 전공강의실로 대부분 사용되고 있다. A동과 B동 사이엔 'UIT 라운지'가 있는데, 예전엔 식당으로 사용되다가 복지관이 개관한 이후 라운지로 바뀌었다. 팀플하기 좋은 공간이다. 간단한 자판기가 있고 컴퓨터와 프린터도 갖추어져 있다. 시설이 전반적으로 깨끗하다. 팀플이 많은 경영대 특성상, 경영대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B동과 C동 사이에 있는 콘서트홀은 일명 '콘홀'로 불리며, 국민대학생들의 주요 이동통로중 한 곳이다. 국제관/경상관에서 법학관이나 북악관으로 가려면 5층계단을 타고 올라가던가 콘서트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던가 둘중 하나인데, 일반적으로 대부분은 엘리베이터를 탄다. 따라서 수업시작 시간 직전이 되면 여긴 거의 헬게이트 수준. 경영/경상대 학생회가 시험기간에 간식지원행사를 하면 대개 콘서트홀 1층 로비에서 한다. 평소엔 음악학부 학생들 연주회가 많이 잡혀있어서 저녁즈음 되면 로비가 꽤 복작거린다. 또한 콘서트홀에서는 간혹 컨퍼런스나 회의같이 큰 외부행사를 하기도 한다. 참고로 외부 벽면이 모두 유리로 되어있어서 여름엔 상당히 덥다. 3층에는 프로젝트룸(스터디룸)이있다. 경상계열 학생들에 한해 과사에 신청하면 사용 가능.

C동 1층엔 경영대 교학팀과 경영대 강의실이 있는데, 가끔 교양강의실로 쓰이기도 한다. 2011년 2학기엔 나꼼수의 김용민이 C동 1층 대형강의실에서 특강을 한 적 있다(당시엔 나꼼수가 인기가 많을때라 복도까지 사람이 미어터졌다. 요새하면 파리만)

A동과 B동은 2층부터 6층까진 교수연구실이나 학교 행정시설이 들어와있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잘 가진 않는다.
콘서트홀과 C동은 지하 1층엔 경영,경상대 학생회/경영,경상대 학회실/열람실이 있는데, 열람실 바로 앞에 학회실과 학생회실이 있어서 공부하기 썩 좋은 환경은 아니다.

경영, 경상대 학회실들은 C동 2,3층에도 있는데 지하 1층을 쓰는 학회실들보단 2,3층을 쓰는 학회들이 좀 널찍하게 쓰는 편. 보통 2~3개 학회가 하나의 학회실을 쓰나 몇몇 학회는 강의실만한 학회실을 단독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경영, 경상대 대학원생 연구실 또한 2,3층에도 있어서 그런지 지하 1층처럼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없다.

5층엔 전산실과 강의실이 있는데, 대개 경상대 강의가 여기 배정되어 있다. 그리고 5층은 북악관, 본부관, 법학관 앞 큰길로 연결된다. 콘서트홀 입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5층 출입구 홀에서 KBS 주말드라마 오작교 형제들의 주인공 유이주원의 키스신을 촬영하기도 했다.

정부의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선정된 이후 취업률에 비상이 걸린 학교측이 경영대 직할 취업지원실을 여기에 설치했다. A관 105호. 취업컨설턴트를 배치시키고 경영대 학생들의 취업을 돕겠단다.

3.11 예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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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관

예술대학 학생들의 건물. 2000년대 중반에 지어졌다. 애초에 건물 자체가 그러하거니와, 각종 조형물로 도배되다시피해서 내부의 인테리어가 실로 오묘하다.

구조가 매우 복잡하다. 타 단과대 생들은 여학우를 보러 한번 잘못 들어갔다간 미아가 되는 경우도 다수 존재. 미아가 되기 싫다면 매점을 제외한 지역은 안가는게 좋다. 미술학부가 쓰는 공간, 공연예술학부가 쓰는 공간, 음악학부가 쓰는 공간이 거의 별개로 구성되어 있다.
지하 1층과 1층은 미술학부 2층부턴 음악학부, 지하공간은 공연예술학부가 쓴다고 보면 된다.

미술학부가 쓰는 곳엔 다양한 작품들이 있는데, 괜히 잘못건드렸다가 작품이 파손되는 날엔 경을 치기 때문에, 웬만하면 근처에 안가는게 좋다. 조형관이랑 통합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예술관에 있는게 더 넓은공간과 전시실을 쓸 수 있어 미술학부교수들이 예술관에 있는걸 선택했다고 한다. 음악학부쪽엔 연습실이 많은데, 피아노 치고 싶다고 들어갔다가 걸리면 책임 못지니까 역시나 근처엔 안가는게 좋다. 공연예술학부는 지금도 군기가 좀 세고 분위기가 무겁다는 평이 많다.

드라마 오작교 형제들의 촬영장소이기도 했다.
지하엔 대극장이 있으며, 가끔 여기서 외부단체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카페와 매점[16]이 입점해 있다. 원래는 매점이 수요에 비해 매우 좁았으나, 2012년 여름방학에 공사를 해서 넓혔다. 그 대신 학생들이 머무를 공간이 조금 줄었다.
그리고 지하에 잘 찾아보면 언론정보학부 시설(현상실 등)도 있다. 예전엔 국제관 일부에 있었던 스튜디오나 현상실을 예술관이 지어지자 마자 옮겨온 듯 하다.

예술관이 지어지기 전엔 노천극장이 예술관 자리에 있었다.

3.12 7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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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관

원래 번호로 불리던 건물들이 2000년대 들어서 고유의 이름을 부여받았지만 이 건물은 7호관으로 통칭된다. [17]
2004년 8월 30일 준공되었고, 처음엔 체육대학과 삼림과학대학, 전자정보통신대학 일부 학과만 있었지만 2011년 2학기에 7호관이 증축되면서 공학관과 과학관에 흩어져있던 전자정보통신대학이 확장공간에 모두 들어왔다.

원래있던 건물 1층~2층은 체육대학이, 2층 일부와 3/4층은 삼림과학대학이 사용한다.
4층엔 주로 교수연구실이 많고 5층부턴 전자정보통신대학 실험실이나 교수연구실이 많은 편. 확장된 건물은 거의 대부분이 전자정보통신대학에서 사용.

2층에는 체육대학 대학원 부설 웰니스 센터(헬스장)가 입점해있다. 학생기준으로 1달에 35000원, 3달에 10만원. 시설은 최신시설이 아니지만 알바하는 대학원생들이 매우 친절하며, 나름대로 갖출것은 다 갖췄기때문에 학교주변 자취생이나 기숙사생들은 자주 이용한다. 2012년 여름방학에 대대적인 시설공사를 해서 시설이 매우 좋아졌다고 한다.

7호관과 예술관 사이에 있는 좁은 틈새를 따라 걸으면 스튜디오가 나온다. 7호관 스튜디오를 찾을 일이 생기면 건물 내부에서 헤매지 말자.

지하엔 중앙주차장과 연결된 주차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잘 찾아보면 자동차대학원도 있다.

3.13 종합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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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복지관

학생들의 각종 복지를 충족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며 보통은 학생회관으로 불릴만한 건물이지만 어째 이름은 종합복지관이다(근데 영문명은 Student Union. 즉, 학생회관이다) 본래는 평생교육원, 동아리방, 학생자치기구, 신문방송사, 학생처가 들어와있었지만, 2009년에 한층 더 올리면서 건축학부를 몽땅 옮겨왔다.

북악관과 함께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건물이다. 지상의 층이 4층으로 설정되어 있어 초행자들이 엘레베이터를 타면 어리둥절해 한다.
복지관의 시설들을 나열하면,

지하1층 카페, 탁구장, 미용실, 구두수선점, 사진관, 안경점, 체육물품상점, 컴퓨터매장, 공연장, 문구점, 꽃집 등

1층 각종 식당(학생식당/교직원식당/자체 패스트푸드점/매점), 서점, 동아리방 등

2층 콘서바토리, 동아리방, 사물함, 인쇄실, 우편취급국[18], 은행(우리은행), 생활협동조합, 빵집 등

3층 평생교육원, 총학생회, 열람실대회의실[19] 여학생휴게실, 동아리연합회, 동아리방, 학부모상담센터, 졸업준비위원회 등

4층 의무실, 학생상담센터, 평생교육원 등

5~6층 경력개발센터, 언론 3사, 학생지원팀, 건축대학 강의실과 실습실 등

엘리베이터는 총 3대있으며 세 대 다 정차하는 층이 다르다. 중앙에 2대가 있는데 한대는 B1/1/4층만 서고, 옆에 한대는 1/4/6층을 선다. 구석에 한대가 있는데 이건 전층 모두 선다.

지하 1층에 각종 복지시설이 모여있으나 2012년 2학기 기준으로 많이 정리되었다. 아름다운가게가 없어졌으며 그 자리에 학생들의 취직을 지원한다는 목적 하에 Job Cafe "DREAM JOB"이 만들어졌다. PC방은 그 자리를 언론정보학부 실습실로 대체했다. 미용실이 있는데 가격대비론 괜찮아서 학기중에 가면 2시간 넘게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지하 1층엔 팀플공간으로 쓸만한 방이 몇개 있는데, 빌리기가 쉽진 않다. 건축학부 수업이 배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지하 1층엔 공연장이 3군데, 영화관(?)이 한군데가 있다. 보통 대형 음악동아리들은 제일 큰 1공연장(200석 규모)을 사용하고, 소규모 동아리들은 2,3공연장을 사용한다. 영화관처럼 있는 101호실은 동아리연합회 소관이 아닌 학교 소관이라 대여가 힘들다. 매년 총학생회 후보 공청회가 101호실에서 열리고 있다. 다만 2008년에 교내 운동권들이 진중권씨를 불러와 101호실에서 강연회를 연적은 있다(당시 150석 규모인 101호실이 터저나갈 지경이었다고 한다). 앨리베이터 바로 앞에는, 풍물패실이 있는데, 들어가면 총 3개의 방으로 다시 나뉘어져 있다. 시끄러운 악기들을 연주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방음처리가 된 동아리실이다. 원래는 3방 전부 중앙동아리 풍물패의 동아리실이지만, 현재는 공대 밴드 동아리인 노래매듭, 법대 밴드동아리인 IMF가 한 방을 점유해 같이 사용중이다. 최근에 풍물패에서 이를 다시 빼앗기 위해 두 동아리와 싸우기도 했다고(...) 그나저나 공대 밴드는 공학관 지하에 새 동아리실이 생겼다고 하지만, 여전히 법대와 같이 풍물패실을 사용중이다. 법대만 안습

1층엔 식당과 동아리방들이 있다.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 하지만 좁은 공간에 광고부스가 너무 많아서 복잡할때가 많다. [20]매점은 유동인구에 비해선 그다지 크지 않은 편. 학생식당 메뉴를 안좋아하거나, 학식 먹을 돈 조차 없는 학생들이 자주 이용한다. '델리버스'라는 경양식 가게가 있는데 가격은 조금 비싼편.[21] 교직원식당은 대개 학생들이 이용하는 경우는 적으나, 가끔 메뉴로 '부페'가 나오면 여유있는 학생들이 몰리는 편. 이렇게 여러 편의시설들이 몰려있다보니 하루동안의 유동인구가 많고, 이때문에 전염병이 퍼지는 주요장소가 된다. 최근의 예로 복지관은 2014년 5월에는 홍역균(...)의 주요 전염루트가 되었다.국민대생들은 홍역때문에 홍역을 앓고있는중이다

2층엔 서쪽엔 콘서바토리 시설(강의실, 무용실, 상담실)이 있고 우측엔 동아리방들이 있다. 서쪽에도 동아리방이 조금 있긴 하지만 대개는 다 동쪽이다. 콘서바토리 시설 자리에는 원래 디자인도서관과 열람실이 있었다. 2014년 겨울방학, 디자인도서관은 성곡도서관의 환경 개선 및 시설 재배치 작업에 따른 휴관 기간에 맞춰서 성곡도서관으로 이전했다. 동아리연합회는 이 기회에 부족한 동아리방을 확충하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그 자리에는 콘서바토리 강의실이 들어섰다. 복지관 열람실은 성곡도서관이 학교 구석진 곳에 위치해 있기에 많은 학우들이 애용하던 곳이였다. 복지관 열람실이 가장 접근성이 좋았던 것. 과거에는 자유열람실이라는 이름으로 예약 같은거 없이 말 그대로 자유롭게 사용하던 곳이였지만 외부인들이 지나치게 드나드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하여 결국 이곳에도 2012년에 좌석시스템기를 설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2014년, 콘서바토리의 시설 확충에 따라 복지관 열람실은 콘서바토리 무용실, 강의실, 상담실로 변환되게 된다. 앞서 서술한 디자인도서관 이전에 따라 1학기 때 이미 많은 수의 열람실이 사라진 직후라 많은 학우들이 이에 대해 분노하였고, 총학과 학교를 까기 시작했다. 학교의 일방적인 열람실 폐지에 대한 비판과 이에 대응하지 못한 총학에 대한 비판이 연신 국민인닷컴과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이러한 분노는 비뚤어진 형태로도 나타나 콘서바토리에게도 향했고 일부 학부생과 콘서바토리생의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3층은 제일 유동인구가 적은 곳이다. 총학생회와 동아리연합회, 졸업준비위원회등이 있으나 일반학생들은 갈 일이 보통 없기 때문. 절반쯤은 평생교육원으로 쓰고있어서 되려 학교 학생들보다 외부인들이 더 출입이 잦다. 여학생휴게실이 있지만, 워낙 유동인구가 적은 곳이라 모르는 사람도 꽤 있다

5층엔 학생지원팀과 병무지원팀이 있는데, 학생지원팀에선 매번 학생들과 교직원간의 마찰이 빈번하다. 최근까지만 해도 대자보를 붙일때 학교의 허가를 받아야했기때문에 학교에 비판적인 대자보를 붙일 경우엔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언론 3사가 모두 5층에 위치해 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관심이 없기 때문에 썰렁하다.

6층은 2010년에 증축했다. 경영대학 김 모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당시 기획처장을 역임하실 때, 종합복지관 건물을 6층까지 지으려고 했었으나, 당시 총장이 '복지관 뒤의 경치를 해친다'는 지시에 따라 5층까지 지었다가 총장이 바뀐 이후에 현재 6층을 증축했다고 한다(...).

3.14 명원민속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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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원민속관

후문에서 조선후기의 한옥을 볼 수 있다. 서울 시내에서 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한옥은 손으로 꼽기도 힘들다.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된 이곳은, 조선 후기 한성판윤(지금의 서울시장)과 의정부 참정대신을 지낸 한규설 대감의 저택이다. 바로 이곳에서 다례 수업[22]이 진행된다.

원래는 중구 장교동에 위치해 있었다. 그러나 1980년 도시개발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명원 김미희 여사[23]가 원 소유주인 박준혁 선생의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아, 1980년에 국민대 후문으로 옮겨 보존했다. 명원 민속관이라는 이름은 당연히 명원 김미희 여사의 호를 따서 붙인 것.[24]

명원 민속관은 60칸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조선시대 상류층 저택이었다. 남향이며 동쪽으로 대문을 두고 있으며 솟을 대문, 사랑채와 안채, 별채, 사당, 연못과 정자 등으로 꾸며져 있다. 예전에는 장교동의 넓은 부지에 이보다 많은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주변이 개발되면서 부지를 팔고 건물을 하나 둘씩 줄여나가 현재의 모습만 남게 되어 이를 옮겨온 것이다.

구성은 다음과 같다.

① 솟을대문 - 주인의 지체를 상징하는 솟을대문.
② 사랑채 - 남자 주인의 공간으로, 누마루를 마련해 한껏 품위를 살린 것이 특징임.
③ 안채 - 대문으로부터 먼 북쪽에 자리 잡음. 안방, 대청 그리고 건넌방으로 이뤄짐. 보통 앞쪽에 위치하는 부엌과 찬방을 뒤쪽에 놓은 부분이 독특함. 방과 마당의 면적이 넓어 과거 가족 들의 대소사를 치렀던 다채로운 성격의 공간임. 현재 수업이나 여러 가지 행사의 무대가 되고 있음.
④ 별채 - 안채 뒤쪽에 자리함. 다도 체험을 위한 학생 동아리 ‘명운다회’의 공간으로 사용 중.
⑤ 사당 - 조상숭배를 하는 의례 공간. 건물 옆면의 장식이 특히 아름다움.
⑥ 정자 - 새로 지은 공간. 故 김미희 여사의 우이동 다실 이름인 녹약재를 따서 ‘녹약정’이라 함.
⑦ 초당 - 한국 차(茶)의 성인 초의선사가 기거하던 전남 해남 대흥사 일지암과 동일한 형태로 지음. 전통 차 문화 보급과 휴식을 위한 공간임.

옮기기 전에는 문짝의 앞부분이 유리로 개조되어 있는 등 약간의 변형이 가해진 상태였다. 이것을 현재의 위치에 옮기면서 옛날식 원형 그대로 복원하였다. 정자와 초당은 사대부가의 격조에 맞게 새로 지은 것이다.[25]

이곳을 지키는 강아지가 유명하다.

국악인 겸 가수 이자람씨가 여기서 판소리 공연을 한적이 있다. 학생들은 그냥 의례적인 판소리공연인줄 알았다가 이자람씨의 대중가요 부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3.15 콘서바토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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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바토리관

종합예술 콘서바토리의 음악, 무용 실기실이 있다.
원래는 국민커뮤니티센터(외국인 기숙사)였지만 학군단으로 용도변경되고 또 다시 콘서바토리관으로 변경.

3.15.1 영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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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관

국ㆍ내외에서 국민대학교를 찾아온 손님들과 초빙ㆍ교환 교직원들이 머무를 수 있는 숙박시설이다. 1997년 개관했으며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증축 공사를 해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는데...지붕이 2013년 들어 사라졌다. 지붕의 행방을 아는 분은 추가바람. 영빈관은 A동과 B동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평형별로는 6평형 20실, 7평형 9실, 14평형 3실, 21평형 1실 등 총 33개의 객실이 있다. 객실에는 주방시설과 침구류가 구비되어 있으며, 별도의 휴게실 및 세탁실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2009년 인플루엔자 범유행 당시에 기숙사생들을 위해 교내에 인플루엔자 감염환자 격리 장소를 마련해야했는데 그때 격리 장소로 영빈관 B동 101호~105호가 사용된 적이 있다.

기숙사 행정실이 영빈관 1층에 있다.

3.16 생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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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관

학생들의 기숙사. 각 방마다 화장실과 세면실, 에어컨이 구비 되어 있으며, 4인실이 원칙이다.

처음 계획은 지금과 달리 좀 더 컸으나, 현재 C동 자리에 있던 집 하나가 알박기를 하고 안나가는 바람에 현재 구조처럼 기형적으로 지어졌다. 2000년대 중반에 A동과 B동이 먼저지어졌고, 분리된 구조라서 A동 학생들이 학교로 갈때 힘들어했다. 특히 눈오는 날엔 헬게이트가 열려서 꼭 1년에 한명은 골절사고로 실려갔다(당시엔 손잡이도 없어서 그냥 급경사였다)

2009년에 알박기한 집과 어떻게 잘 이야기가 되어 C동이 건설되기 시작했고 예전 1112번 버스종점으로 쓰이던 자리에 D동을 지었다. D동은 외국인 전용기숙사였으나 교수 연구실로 일부 전환되었다.

확장되긴 했지만 처음부터 꼬여버린 탓에 시설이 썩 좋진 않다.
수용률을 높이기 위해 2인 1실로 적당한 방을 4인 1실로 사용했다. 그래서 방마다 들어가보면 각자 짐조차도 제대로 놔두기 힘들다. 옷장은 무슨 목욕탕 탈의실보다 조금 더 큰수준. 샤워시설이 하나뿐이라 만약 4명이 모두 1교시 수업이면 아침엔 헬게이트 오픈.

그나마 C동이 생기면서 편의점도 들어오고 여러가지 편리해졌다. 하지만 학내 최강의 맛을 자랑하던 기숙사 식당이 영양사가 바뀐뒤로 완전 개판이 돼서 학생들이 아쉬워 하는 중.

A동 지하 1층엔 로비가 있고 대형 TV가 있는데, 새벽에 유럽축구 빅매치가 있으면 여기서 삼삼오오 모여 응원하기도 한다.

개구멍이 몇군데 나있었으나 사감실측의 지속적인 감시로 인해 현재는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기숙사 인근 치킨집이나 피자집에선 기숙사 구조에 특화된 장비를 이용한다고 한다.

방안에 냉장고가 없어서 인근 중고전자제품 전문점에서 냉장고를 사오는 학생도 있다.

생활관 근처엔 뚱뚱한 길고양이 한마리가 살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먹이도 챙겨주는듯 하다. 그러나 고양이에게는 소금기가 많은 사람의 음식은 좋지 않으니 먹이를 줄 때 주의하도록 하자. 사실 이 고양이가 뚱뚱해진 것도 소금기가 많은 음식을 먹어서 그런 것.

3.17 부설 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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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설 어린이집

명원 민속관 아래에서 지상 2층 지하 1층의 국민대학교 평생교육원 보육교사교육원 부설 어린이집을 볼 수 있다.
지역사회의 보육수요를 충족시키고 보육교사교육원 학생들에게 영유아의 발달과정과 어린이집에서의 생활을 직접 관찰하고 경험해보게 함으로써 보육교사로 자질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곳.
나이에 따라 병아리반, 다람쥐반, 토끼반으로 분반된다.
원생들은 바로 옆 국민대학교 캠퍼스를 견학하러 오기도 한다.

바로 옆 한샘빌라 부지를 매입하여 지하 1층, 지상 4층 어린이집을 신축할 예정이였으나 예산문제로 연기되었다.

3.18 대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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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동장

운동장은 원래 꽤 웅장한 편이었으나 종합복지관을 지으면서 주차장을 짓고 그위에 운동장을 짓는 바람에 협소해졌다. 종합복지관이 들어서기 전에는 축구공을 잘못 차면 도로로 내려가기 일쑤였다. 원래는 흙바닥이었지만 2009년 5월 26일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운동장 생활체육 시설 지원대상 사업지로 선정되어 총 3억 5천만원의 공사비를 지원받아, 2개월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여름방학에 인조잔디를 깔았다. 공사 시작 두 달 만에 완공된 인조잔디구장은 가로 101m, 세로 55m의 축구장과 320m 둘레의 우레탄 육상 트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문에서 진입할 때 보면 로또기금으로 설치되었다는 안내판을 볼 수 있다. 그렇다. 당신이 지어준 것이다.

거대한 기둥 16개가 줄지어서 있는걸 볼 수 있는데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하는 매연을 외부로 배출하는 ‘배기타워’ 역할을 하고 있는 것.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북악관으로 올라가는 73계단(계단이 73개여서)이 명물로 꼽혔으나 국제관, 경상관 공사와 함께 사라졌다.

학기중엔 오후부터 저녁까지 북악리그(학생회 자체 축구대회)가 열리기 때문에 사용이 쉽지 않다. 북악리그나 수업이 없는 아침,낮시간 혹은 밤 9시 이후에 좀 자유로워 지는편.근데 9시되면 조명 다 꺼버린다 조깅하는 사람들이 많다.
금요일엔 야구동아리가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는데 펑고볼에 맞지 않도록 주의요망.

3.19 민주광장

민주광장

북악관 앞에 조그만한 잔디밭으로 많은 학우들이 날씨가 좋은 날에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축제 시즌에는 부스 두 세곳이 입점하기도 하는 곳. 그러나 어느새 '햇볕 잘 들고 운치 좋은 곳 = 한 대 빨기 좋은 곳'이라는 공식이 생긴 모양인지 국민대의 대표적 흡연명소가 되었다. 아침, 점심마다 북악관 앞에는 구름이 끼지. 왜 그럴까? 허허. 북악관을 갈 때 간접흡연을 피하고 싶으면 좌우에 있는 차도로 가는게 낫다.

민주광장이라는 이름답게 87년 6월 전두환 정권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고 4.19 혁명 때 경무대 앞[26] 시위에서 선두에 섰다 경찰의 총탄에 맞아 숨진 법학과 1학년 이청수를 추모하는 “고 이청수 4·19 민주영령추모비”가 1990년 4월 19일에 세워지기도 했다. 이러한 추모비가 한때 8개까지 세워졌으나 학교에서 이청수·김윤기 열사를 제외한 6개의 추모비를 철거하면서 현재는 2개만 남아있다.

시계탑이 아직도 남아있다. 25회 졸업생이 기증한 것,

조병섭 미술학부 교수가 제작한 개교 60주년 기념조형물 ‘형(形)’이 구석에 세워져있다. [27]

3.20 용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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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리

국민대의 상징이다.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감싸고 승천하고 있는 형상이다.성균관대학교중앙대학교에 형제, 자매들이 있다. 용은 비와 구름을 불러온다는 전설이 있다. 덕분인지 국민대는 비와 구름이 많다.길음역에 비가올때 국민대에는 눈이 오지 주변은 인공폭포로 되어있는데, 과연 많은 학생들이 생일을 맞은 학우를 이곳에 쳐 넣는다. 용두리에 빠진 다음날에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보면 성적이 폭풍상승한다는 전설도 있다. 왜 하필 이름이 용두리인지는 '용'이 '두마리'여서 그렇다. 왜 하필 두마리의 용인지에 대해서는 모 기업의 이름이 쌍용이라는 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원래 처음부터 교상을 쌍용으로 만들 계획은 아니였다. 교상에 대한 첫 논의는 개교 20주년이 되는 1966년, 신문사 추진사업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다. 당시 여론 조사를 통해 '흑마'가 교상으로 결정되었지만 실패. 그리고 1974년도에는 백호, 1977년도에는 거북이, 1981년도에는 학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제시되었으나 모두 실패, 1981년 총학생회에서 교상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동물이 아닌 ‘풍차’로 의견을 모았으나 북악의 이미지를 담고 있지 못하다하여 실패. 1983년 대학 구성원 모두가 참여한 가운데 교상위원회가 발족하여 쌍용과 반달곰으로 의견을 수렴하였으나, 그 이상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실패. 이에 1986년 총학생회가 ‘교상건립준비위원회’를 발족하고 개교 40주년에 맞춰 국민인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될 교상을 확정시킨다는 목표아래 사업을 추진하여 백호를 교상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10월 축제기간 동안에 북악관에 대형 백호그림이 걸렸을 뿐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하고 또 다시 실패. 결국 1992년이 돼서야 다시 쌍용으로 결정되고 이어 교상건립추진위원회가 최종적으로 이를 확정하였다. 그 결과 개교이래 47년만인 1993년 6월 교상 용두리가 세워지게 되었다. 동상 하나 만드는데 몇 년이 걸리는거냐

참고로 건축법상 일정 규모 이상의 건물은 반드시 예술 작품을 설치해야 하는데 성곡도서관을 지을때 학교측에서 이 용두리가 그 예술 작품이라고 둘러댔다는(...) 설이 있고, 원래 설계도는 용이 지금보다 통통했지만 예산문제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완성됐다고 한다. 지못미

3.21 교훈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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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탑
학생들이 신생 국민대학을 중심으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정을 두텁게 하고, 새 희망을 전망하면서 형설지공을 쌓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정신, 이 목적을 한문 글자로 표현하면 이교위가(以校爲家)라 합니다. - 해공 신익희 선생의 창학연설문에서
해공 선생은 평소 학생들에게 '일은 결국에는 올바른 데로 돌아가는 것이다.' '최후의 승리는 정의에 있다'(事必歸正)고 말씀하셨다. 어려운 국면을 용기와 희망을 갖고 뚫고 이겨나가기 위해, 올바르게 살 것을 학생들에게 강조하셨다. - 해공 신익희 일화집에서

용두리 맞은 편에서 교훈탑을 볼 수 있다. 이교위가(以校爲家),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 적혀있다. 국민대학교 총동문회에서 기증하여 2013년 5월 2일에 제막 행사를 가졌다. 잘 보이는 곳에 세워지긴 했지만 초서체로 씌여져 교훈탑에 뭐라 적혀있는지 아는 학생은 국민대 역사를 잘 알거나, 한자를 잘 읽거나, 지금 이 페이지를 보는 위키러 이외에는 거의 없다 봐도 된다(...). 뭔 뜻인지는 교훈탑 뒷면에도 잘 적혀 있으니 궁금하면 교훈탑 뒤로 돌아가서 한 번 읽어보도록 하자.

축제 당시, 인파로 공연이 잘 안보이자 몇몇 학생들이 교훈탑 위에 올라가서 공연을 보기도 하였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현상이 반복 될 듯(...). 지못미 교훈탑

3.22 성곡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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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현재

용두리 분수대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야트막한 언덕이 나온다. 북악관 서측에서도 계단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언덕 위에는 의자 몇 개가 있어 앉아서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야외에서 적당히 쉬기 좋은 장소이기도 하며, 어쩌다보니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시즌에는 선배들이 신입생들 FM구호 시키러 자주 오는 곳이기도 하다.안녕하십니끄아아아아아ㅏㅏ!

이 장소가 성곡동산이 된 이유는 쌍용그룹의 창업주이자 국민학원 이사장인 성곡 김성곤 선생의 묘소가 있었던 자리이기 때문. 그때는 경비원이 지키고 있어 지금처럼 자유롭게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아니였다. 그러나 "왜 학교에 자본가의 무덤이 있느냐"며 싫어하는 운동권들(...)과 쌍용 재단과 마찰이 생길때마다 분노한 학생들의 주요 테러(...) 표적이 되면서 1984년 강원도 평창으로 묘를 이장한 후, 현재와 같이 휴식공간이 되었다.

2015년 초에 성곡의 묘가 강원도 평창에서 대구 구지면으로 다시 이장되었는데, 그 때에 맞추어 성곡동산에도 비석이 세워졌다.

국민대 학생이면 한번쯤은 성곡동산 벤치에서 짜장면을 시켜먹는다고 카더라.

3.23 산학협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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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학협력관

사실상 엘리베이터 타는 용도
공대 본관 뒤편 주차장쪽에 공학관 증축공사로 생긴 건물.
2014년에 완공된 건물이라곤 믿을 수 없는 안타까운 비쥬얼을 보여준다. 이는 붙어 있는 공학관과 생김새를 맞추기 위함으로 공학관과 동시에 증축을 시작한 국제교육관 신도서관 건물도 원래 있던 도서관과 판박이다.

짓는 도중 쌍용건설이 상장폐지되는 등 위기를 맞으며 하청업체들에게 돈을 제대로 못 줬다. 결국 하청업체들은 유치권 행사에 들어가며 공사가 지연. 이는 동시에 지어진 국제교육관 신도서관도 마찬가지.

완공되서 나서 붙은 이름은 공학관이 아닌 산학협력관.
자신들의 터전이 확대될거라 기대하던 공대생들은 산학협력업체들이 이 건물 상당분을 차지하자 분노감을 느꼈다고.

3.24 글로벌센터 신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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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센터

공학관 증축공사와 함께 시행한 도서관 증축공사로 생긴 건물. 새로 짓는 건물이지만 기존 도서관을 복붙해놓은 생김새이다.
생김새도 그렇고 분명히 도서관으로 지어지는 건물이었으나 건설 도중 용도가 변경되어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시설인 글로벌센터가 되었다.
도서관으로 믿고 있었던 학생들에게는 충격과 공포.

이런 우여곡절 끝에 2014년 8월경에 완공이 되었으나 완공되기 무섭게 내부 벽을 부시고(...) 전기배선을 다시 했다! 변경된 용도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등록금이 터지고 있습니다!

은근히 모르는 사실이지만 워크샵이라던지 디자인관련 실습실들이 이 건물 지하에 있다(...)!

4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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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짜기라 교통이 편하다고는 할 수 없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인 길음역이 버스로 10여분 이상 걸린다. 근처에 서울 경전철 우이신설선의 (가칭)북한산정릉역이 들어설 예정이나, 서경대학교와 국민대학교 사이의 거리가 2:3정도로 서경대에 가깝다. 이 때문에 역명을 놓고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거리는 서경대가 가깝지만 학교 규모와 인지도는 국민대가 높기 때문. 국민대·서경대역은? [28]
다만 서울 동북권과 서북권을 가장 빠르게 연결하는 경로상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버스 노선은 산골짜기 치고 괜찮은 편이다. 정문 앞 기준으로 간선버스는 서울 버스 153, 서울 버스 171, 110A(정릉 방면)와 110B(신촌방면) 버스가 다니며, 지선버스는 서울 버스 1020, 서울 버스 1166, 서울 버스 1213, 서울 버스 1711, 서울 버스 7211번 버스가 다닌다. 도원교통이 이 학교 근처에 차고지를 두고 있어서 이 회사의 버스를 학생들이 많이 애용한다고 한다.[29]
소요시간은 명목상으론 경복궁역/광화문이 25분, 서울역이 30~35분, 홍대/신촌은 40-50분, 대학로는 20-30분(도원교통 종점 기준), 왕십리역은 30~40분, 명동이 약 30분 정도(지하철 환승시)라 나쁘진 않긴 한데... 교통정체의 영향을 그대로 받는 버스 특성을 고려할 때 대낮이나 심야가 아닌 한 더 걸린다고 보는게 안전하다. 특히 경전철 공사가 진행되는 성신여대, 보문동, 신설동 인근의 정체가 심하고, 길음역 인근은 동북권으로 가는 주요 통로라 출퇴근시간대엔 그냥 헬게이트. 홍대/신촌 방향 역시 중간의 홍제역 인근 정체가 무시못할 수준이라... 강북이 아닌 강남으로 갈때는 무조건 경복궁역[30]을 거쳐 지하철을 이용하는게 현명하다. 동북 지역에서 강남으로 내려가는 왕십리, 동대문 등 주요 경로가 하루 종일 정체 상황이라.

2008년도 여름까지는 학교 안까지 버스가 들어왔지만, 어른의 사정으로 사라졌다. [31] 그래서 학교 자체 통학버스를 두대씩 운행하고 다른 노선을 국민대 주변까지 연장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조치는 차없는 캠퍼스 만들기의 일환이기도 하기 때문에 꼭 나쁘게만 볼 것은 아니다. 매점 때문에 트럭은 운행중이다

후문 앞에는 서울 버스 1166번 버스만 운행한다. 1166번 버스 노선 자체가 →…→국민대 후문→국민대 정문→북악터널에서 회차→국민대 정문 앞 건너편→국민대 후문 앞 건너편→…→ 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정문/후문 양쪽에서 승차가 가능하다. 단 지하철 역을 전혀 거치지 않은 채 우이동으로 향하며, 평균 20분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배차시간을 가지고 있어 전반적인 이용률은 다른 버스들에 비해 비교적 낮은 편이다.

그 외에 정해진 시간에만 운행하는 학교 자체 통학버스가 있다. 길음역, 압구정역, 시청역, 신촌역, 불광역, 잠실역 등에서 운행중.

인근에 고려대학교 정릉캠퍼스(보건과학대)랑 상명대학교, 서경대학교, 한성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등이 있다. 고려대학교 정릉캠퍼스(보건과학대)는 국민대학교 후문을 나가자마자 1분만 걸어내려가면 바로 고려대학교 정릉캠퍼스(보건과학대) 후문이 나타날 정도로 정도로 가까우며, 상명대는 터널을 사이에 두고 있지만 잘만 달리면 평창동을 거쳐 5분만에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택시를 이용할 경우, 주변 지리에 능숙해야한다. 광화문이나 대학로로 넘어갈려면 성북동길을 지나가야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32]

교내의 지리는 매우 복잡한 편. 입학한지 1년이 지나도 헤매는 사람이 있다. 헤매고 싶지않다면 홈페이지에서 미리 학교 지도를 봐 놓는 것이 좋다. 봐도 헷갈리긴 한다

5 음식과 편의시설

학교앞은 텅 비었으며 먹을것을 먹으러 가러면 '지하세계'로 가야한다. 진짜로 지하에 있는게 아니라, 정문 건너편 아래지대에 밀집한 상가들을 말한다. 그냥 땅 자체가 학교에 비해 많이 낮은 것 뿐이며, 일종의 애칭이다. 학교 주변 상권이 발달되지 않아, 학교 안에서 먹을 것을 다 해결하거나 중국집에 전화해서 시켜먹는 것이 꽤 많다. 최근엔 PC방도 생겨서, 현재는 없어진 복지관 지하 1층 PC방의 위치를 대신한다고. 학교 뒷문에도 식당이 있지만(1990년대 후반까지는 이 일대의 식당을 뒷포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분식집과 짜장면집이 대부분이고, 제대로 먹으려면 최소 버스타고 길음역을 가거나 성신여대나 신촌으로 가는것이 훨씬 낫다. 덕분에 학교 북악관 1층 로비에는 중국집 전단지가 붙어져 있는 게시판이 따로있었다. 지금은 성북상인연합회와 총학생회가 음식점 광고를 모아놓은 소책자를 만들고 걸어놨다. 하지만 여전히 전단지를 돌리는 얌체업체들이 많아 총장이 빡쳐서(...) 배달차량출입을 금지시키고 중국집을 북악관에 입점시키려고 했을 정도로 미관을 해치고있다. 북악관 1층에는 수많은 중국집 광고지가 기둥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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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관 식당법학관 식당(한울식당)

교내의 학생식당은 종합복지관과 법학관에 있다.
복지관 지하식당은 값이 법학관보다 비싸고 맛은 그다지 없는 편이고, 그 옆에 있는 교직원 식당은 4000원으로 좀 더 고급스러운 음식이 나올것 같지만 하루나 이틀 지나면 같은 메뉴가 학생식당에 비슷하게 나온다.(요즘은 좀 다르다. 저염식을 강조하던 복지관 식당이 위기를 느꼇는지 저염식을 포기했다. 학식 7년 동안 먹으면서 요즘 복지관의 맛은 집밥 저리가라할 정도)

법학관은 우동같은 면류나 김밥, 닭강정, 떡볶이 등을 복지관보다는 싼 값에(식사류는 2,000원 중후반, 분식류는 그 이하) 다양하게 먹을수 있다.법학관 국수집에 중독되면 답이 없다

법학관 5층에는 또 다른 학생식당이 있는데, 원래 법학전문대학원을 유치한 다음 강의실로 쓰려고 예정했지만 탈락 크리 먹고 고급식당으로 만들어 버렸다.[33] 설렁탕이 무려 7000원. 그러나 맛은 발군이다. 정릉동이 내려다 보이는 훌륭한 전망에 학교 식당 주제에 서빙(물론 학생 알바.)을, 그것도 정장을 차려입고 해주며 디저트는 물론이고 심지어 맥주도 판다.비밀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교직원 교수들이 많이 와서 편히 밥먹기가 곤란하다는 것.

매점은 북악관, 공학관, 과학관, 복지관, 예술관, 도서관에 있다. 경상관 지하가 예술관 매점 앞 복도와 연결되어 있어 경상관이나 국제관에서 매점을 이용하려면 경상관 지하를 통해 가는것이 편하다. 매점중에서 예술관은 제크나 후렌치파이,초코파이 등 곽에 든 과자들을 따로 파는데 종류가 많아서 입이 심심할때 사먹기는 참 좋다. 매점들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예술관 매점과 북악관 매점이 괜찮다.

복지관 2층에는 빵집과 우체국, 우리은행이 있고, 생활협동조합, 열람실 등이 있다. 빵집은 맛있으니 가는 것을 추천한다

복지관 1층은 (주)아워홈에서 운영하는 학생식당과 교직원 식당, 서점, 매점, 델리버스, 동아리방 등이 있다. 중간고사기간을 전후로 서점에서는 신간 구간 할 것 없이 특별할인전을 펼치기도 한다.

복지관 지하에는 카페, 미용실, 컴퓨터 수리점, 꽃집, 문구점, 탁구실 등이 있다. 미용실은 "아름다운 샘"이라는 이름인데 교내 미용실답지 않게 솜씨가 발군이라 인기가 많다. 사람 많은 시간대에 가면 30분은 기본으로 기다려야 할 정도.
  1. 1964 도쿄 올림픽, 남자 유도 미들급 김의태 동메달
  2. 현재 사용하는 국민대학교 교표는 2001년에 제정되었고, 2001년 당시 학교 사진을 확인해보면 북악관에 붙어있는 교표가 이 동판이었다
  3. 그런데 2014년, 건물 외벽이 떨어져 국민대생 친구를 만나러 온 타대생이 부상을 입는 사태가 발생했다. 흠좀무...
  4. 기념품은 복지관 매점으로 옮겨져 판매.
  5. 그런데 이런 전설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재 국민대학교 캠퍼스는 풍치지역, 개발제한구역(일부), 북한산국립공원 인접 등으로 고도제한 때문에 북악관 같은 건물이 지어질 수 없다. 아마도 이런 규제가 있기 전에 건축허가를 받은 건물인듯 하다.(최초 기공이 1971년이었고 준공은 1974년) 상기한 이유 때문에 국민대학교 캠퍼스는 물론 주변에도 10층 이상 고층건물이 들어설 수 없으므로 북악관의 조망권은 이 건물이 철거되지 않는 한 보장될 듯 하다.
  6. 제25회 서울특별시건축상 리모델링부문 장려상 수상.
  7. 건축학과는 당초 이 건물로 이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로스쿨 유치를 위해선 법학대학원이 독립적으로 필요했고, 결국 법대가 이 건물로 이전하면서 건축학과의 이전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다행히 건축학과는 종합복지관으로 이전.
  8. 로스쿨 항목 참고
  9. 정확히는 지하 2층까지 있으며 지하2층에 목공실이 위치해있다. 지하2층에는 도자공예학과의 디자인대학원 실기실과 금속공예과실기실, 오작교 형제들에서 유이가 깡패들에게 협박을 당하는 건물 뒷편으로 표현된(....) 금속공예학과의 야외작업장이 있다.
  10. 본부관은 1971년, 북악관은 1974년, 공학관은 1976년, 법학관은 1978년(학생회관으로), 조형관은 1979년에 준공되었다. 다만 이들 건물들은 모두 증축 및 리모델링을 거치면서 준공 당시의 모습에서 많이 달라졌다.
  11. 허재 폭행 사건에 관련된 선수로 '노랑머리' 선수로 알려진 김성욱이 국민대 출신이다.
  12. 2008년 중순까진 길음역 앞까지 다니는 초록 지선버스가 정문을 통과해 과학관 앞까지 운행하기도 했었다. 과학관 앞이 회차지점.
  13. 가로로 긴 직사각형인데 정문에서 봤을 때 왼쪽 맨 끝,것도 산 아래에 있다.
  14. 디자인도서관은 2014년 다시 성곡도서관으로 이전되었다
  15. 총학생회 제외. 당시 총학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던터라 배제당했다(...) 총학생회 2014년 참고
  16. 다른 건물의 매점과는 달리 생활협동조합 직영이 아니다.
  17. 거액의 기부자의 이름을 이 건물에 붙이고자 이름을 비워 놓은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18. 원래 우체국이였지만 우정사업본부에서 전국대학의 우체국을 모두 철수하기로 결정하면서 2014년 7월 1일 우편취급국으로 전환되었다
  19. 학교 본부가 2층 열람실을 평생교육원 콘서바토리로 바꾸었고 이에 대응하지 못한 총학이 욕을 먹자 총학생회는 자신들이 이용하던 대회의실을 열람실로 전환하는 방편을 내놓았다.
  20. 2011년 '플러스 알파' 총학생회는 너무 많은 부스를 유치하는 바람에 학생들이 항의한 적도 있다.
  21. 델리버스가 생기기 이전, 즉 2014년 6월까지는'아리'라는 카페라 하기도 뭐하고 레스토랑이라 말하기도 뭐하고 패스트푸드점이라 말하기도 뭐한 가게가 있었는데 케밥으로 유명했다.
  22. 국민대학교에서는 1982년, 국내 4년제 대학 중 처음으로 다도 강좌인 다례 수업을 교양 교과목으로 개설하였다. 현재 인기강좌로 수강신청하기는 힘든 편
  23. 성곡 김성곤 선생의 배우자인 명원 김미희 여사(1920~1981)는 1968년부터 전통 차 문화를 연구해 온 한국적인 차 문화 부흥의 대표주자이다. 1979년 한국차인회 창설에 앞장서 대중다도의 모태를 만들었으며, 전통 다도 보급의 공간을 이룬 인물이다. 2000년 5월 25일에 ‘차의 날’을 맞아 정부로부터 보관문화훈장을 추서 받았다.
  24. 처음부터 명원 민속관이라 부르진 않았고 2000년에 개칭했다
  25. 그래서 현재, ①~⑤의 건물만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6. 당시 국민대는 경무대에서 매우 가까웠다
  27. 크기는 작지만 이 조형물과 거의 똑같이 생긴 조형물이 성곡도서관 1층 로비에 전시되어 있다. 조병섭 교수의 '형(形)-1022'이라는 작품인데 2011년 성곡도서관 디지털화 리모델링 기념으로 총장이 기증한 것.
  28. 일단 해당 노선은 일반 도시철도가 아닌 경전철, 그것도 민자 사업이다. 따라서 역명 부여 규칙이 서울시 도시철도 규정과는 다를텐데 민자사업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아마도 돈 많이 내는 쪽의 이름을 붙여줄 가능성이 있다....라는데 잘못된 이야기.민자사업이라도 운영만 일정 기간 민간업체가 할 뿐 시설에 대한 소유권은 서울시가 갖는다.엄격한 역명 정책을 견지하는 서울시의 성향상 양쪽이 적절히 타협할 만한 수준의 역명이 나올 듯 하다.
  29. 서울 버스 171, 서울 버스 1711, 서울 버스 1213번이 해당된다. 단, 1213번 노선은 경성여객과 공동배차 운행이며 평시에는 면목8동 경성여객 차고에서 출발 대기한다.
  30. 다른 길은 다 막혀도 경복궁역 방향으로는 잘 안막힌다. 평창동, 효자동 등 한적한 동네를 지나는데다 길이 넓어서...
  31. 이 어른의 사정이란 교내로 돌아다니는 버스에 의한 사고가 빈번했고 그 버스회사의 사장이 모종의 일이 생긴 틈을 타서 학교측에서 냅다 저지른 일이다.
  32. 정말로 주변 지리에 능숙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택시기사가 주변을 빙빙 돌아서(실제로 버스노선이 이렇게 되어 있으므로 대부분 속는다) 바가지요금을 청구하는 일이 다반사다. 참고로 지름길을 언급한다면 대학로 방면은 국민대-도원교통 종점인근-성북동 골프연습장 방향으로 급경사 진입-성북동길로 내려감-한성대입구역으로 직행, 이방향이다. 광화문 방향은 그리 어렵지 않으므로 잘 안 속는다. 다만 광화문방면의 경우 주말 오후엔 삼청동에서 헬게이트가 열리니 성북동길~성균관대후문~헌법재판소로 돌아가는게 낫다
  33. 이 상황을 희화화한 짤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