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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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배드민턴의 전설적인 선수. 선수 생활 초년의 불운을 실력으로 기어이 극복하고 행복하게 은퇴한 선수다. 2011년부터 삼성전기 배드민턴 팀의 감독으로 재직하며, 여성 감독으로도 맹활약하는 인물.

1970년 4월 11일생. 부산 출신으로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배드민턴에 입문해 데레사여고 출신으로 고교생 시절 떠오르는 스타로 주목받아 일찍부터 국가대표가 되었다. 국가대표로 초년 시절 활약했는데, 아무래도 대표팀의 에이스보다는 그 뒤를 받치는 백업에 더 가까웠다. 실제로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여자 복식의 주력은 선배인 정소영-황혜영조였고, 길영아도 이 대회 여자 복식에 심은정과 짝을 이뤄 출전했지만, 4강전에서 패하며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황혜영의 은퇴 후에는 정소영과 짝을 이뤄 여자 복식에서 세계적인 강호로 맹위를 떨쳤지만, 종합 대회 첫 금메달이 눈 앞에 있던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에서 파트너이자 대선배인 정소영이 후배인 장혜옥-심은정 조에게 금메달을 양보하기 위해 결승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말하면서 결국 팀 동료인 장혜옥-심은정 조가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실제로 여자복식 결승전은 고작 30분 밖에 안 걸렸다.

정소영도 은퇴한 후에는 이제 장혜옥과 호흡을 맞추게 되었는데, 장혜옥과 호흡을 맞춰서도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며 1994년부터 1996년까지 세계 여자 배드민턴 복식 계에서 강호로서 군림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개막 직전에 유력한 배드민턴 금메달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꼽혔을 정도.

그러나 올림픽에서는 결승 전까지는 괜찮았지만, 결승전에서는 허망할 정도의 0-2 완패를 당하며, 중국 조에게 금메달을 내주게 된다. 그냥 패한 것이 아니라 두 세트 모두 겨우 5점 밖에 못 뽑는 말 그대로 완패. 긴장한 탓에 그만 전날 밤에 한 숨도 못 자면서 컨디션을 망친 것이 원인이라고 한다. 이대로 불운의 아이콘으로 끝나는가 싶었는데, 다행히 원래 서브로 출전한 혼합복식에서 선전했다.

김동문과 짝을 이룬 혼합복식은 원래 길영아의 여자 복식 전념을 위해 1회전에서 대충 하고 떨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박주봉의 컴백[1]으로 졸지에 제 2 조로 밀린 상실감이 컸던 김동문을 달래기 위해 1회전만 열심히 뛰겠다고 코치진에 간청했고, 차마 이를 거절할 수 없던 코치진이 이를 승낙하면서 어어 하다가 8강까지 진출했다. 원래 계획대로면 8강에서 탈락해야 했는데, 그만 8강전이 한국 TV 생중계가 잡혔다. 덕분에 지는 경기를 보여줄 수 없던 코치진은 열심히 하라고 하는 수 밖에 없었고, 또 승리. 그리고 4강전은 상대 중국 조가 자멸하면서 승리. 그래서 결승전에서 박주봉-라경민 조와 만나게 되었는데, 누구나 질 줄 알았던 승부에서 길영아는 이겼다. 그리고 그렇게 마지막 국가대표 무대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면서 환하게 웃으며 은퇴했다.

1998년 배구선수 출신인 김상훈과 결혼한 후, 실업팀 선수로 간간히 뛰다가 완전 은퇴하고, 삼성전기 팀의 트레이너부터 시작해 코치까지 맡으며 팀에 계속 남았다. 그리고 2011년 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여성 감독의 시대를 열었다. 슬하에 1남 1녀가 있는데, 모두 배드민턴 선수이며, 특히 아들은 제법 유망한 선수라고 한다.

2011년 선수 시절의 공로를 인정받아 세계 배드민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 이 컴백이 얼마나 임팩트가 컸냐면, 당시 세계랭킹에 들던 덴마크 혼합복식 팀이 충격을 먹고, 남자와 여자 모두 혼합복식 출전을 포기하고, 남자 복식과 여자 복식으로 전향했다. 하긴 박주봉은 배드민턴 계의 절대적인 신이나 다름없으니까 당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