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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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수희(金秀姬)
본명김희수(金姬秀)
국적대한민국
출생1953년 3월 13일 (62세)
출생지경상남도 부산시
(현 부산광역시)
데뷔1976년 노래 '너무합니다'
종교천주교(세례명 : 마리아)
KBS 가요대상 대상
신승훈
보이지 않는 사랑
(1992)
김수희
애모
(1993)
김건모
핑계
(1994)
MBC 가요대상 대상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1992)
김수희
애모
(1993)
김건모
핑계
(1994)
그대 앞에만 서면 난 왜 작아지는가~ - 애모
비 내리는 호남선 남행열차에~ - 남행열차

트로트계의 마지막 전성기를 장식한 주인공.

1 초기 활동

그녀는 18세에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재학 중일때 작사가와 작곡가로 데뷔하였다. 데뷔 무렵에는 블랙캣츠의 멤버로 활동을 했으며, 김훈의 <나를 두고 아리랑> 등 여러 곡들을 작곡하기도 했다. 그 뒤 1976년에 가수로 데뷔했을 때는 극심한 생활고로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없었지만, 그 뒤 2년 뒤 <너무합니다>와 1982년 <멍에>라는 곡을 히트시키면서 가요톱텐에서 골든컵까지 차지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그녀에게도 큰 위기가 닥쳐왔으니.....

2 대마초 혐의 사건

1983년 10월 4일에 정부의 대마초 파동사건에 연루되면서 조사를 받게 되었으며, 4일 뒤에 방송 정지를 당하고 2일 뒤에 제명처분당했으나, 치열한 공방 끝에 10월 28일에 무죄로 판정이 나면서 다시 가수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나중에 2013년 기분 좋은 날에 출연했을 때, 그녀는 그 때는 너무 힘들었지만 어머니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그 당시 상황을 회상했는데, 딸 이지후도 그 때 상황을 회상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 뒤 그녀는 그 사건 이후에도 <남행열차> 같은 명곡을 내면서 대중들의 인지도를 높였고, 급기야 1993년 가요계에 큰 일을 내게 된다.

3 트로트계의 새로운 스타로 급부상, 그리고 전성기

아마, 가요톱텐을 꾸준히 보신 분들이라면 이 장면은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1993년 9월 3일, 가요톱텐1990년대의 끝판왕,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 - '하여가'의 5주 연속 1위 골든컵 수상을 꺾은 곡이 있었으니 바로 김수희의 '애모'였다. 그야말로 희대의 이변과 파란을 일으킨 대사건. 이 때 김수희는 수상이 확정되자 너무 놀라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고 한다. 급기야 이 곡은 5주 연속 1위를 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했는데, 이 곡은 공교롭게도 트로트 곡의 마지막 골든컵 수상이기도 하다.

특히 더 대단한 것은 이 곡은 2년 전인 1991년에 발매되었다는 것이다. 이 때는 별다른 주목도 받지 못했던 곡이 2년 뒤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큰 히트를 치게 된 것. 요즘에도 가끔씩 철 지난 노래들이 차트에서 역주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2년 전에 만들어진 노래가 큰 인기를 얻은 사건은 가요계에서의 큰 사건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가요계가 유행곡 위주로 재편되면서 '역주행'은 한동안 사전에서 사라지게 된다.[1]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녀는 <애모>로 각종 가요계 상을 휩쓸게 된다.

<애모>로서의 전성기 이후, 그녀는 여러 노래를 히트시키면서 작곡가, 작사가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4 그외 활동

그녀는 가수 활동 뿐만 아니라 작가 활동도 하면서 1983년 가요계 현장 소설 <너무합니다>를 저술했으며, 1984년에는 소설 <설(雪)>을 집필해서 베스트 셀러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영화 <너무합니다>에서 희련 역과 주제가 OST를 맡기도 했으며, 1994년에는 애수의 하모니카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다만 별다른 흥행은 하지 못했다.

5 기타

2016년 5월 29일에 방송된 판타스틱 듀오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친구인 故 서병후의 아들이 타이거JK라고 한다.김수희씨의 자녀 입장에선 레알 엄친아 타이거JK는 김수희를 이모라 부르며 성인이 된 후에도 김수희에게 종종 용돈을 받았다고 한다.

기아 타이거즈의 팬인지라 승리 기원 시구를 한 적도 있다. 해태 시절부터 골수팬이라고.
  1. 물론 그 뒤에도 부활의 <사랑할수록>처럼 발매된지 1년 이상 지난 곡들이 1위를 하고, 몇 개월 동안 차트에 있기도 했지만 이전과 달리 미미했다. 그러다가 2010년부터는 복고의 영향으로 다시 역주행이 유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