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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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김재연(金在姸)
출생1980년 11월 27일
출생지대구광역시
소속 정당민중연합당
약력□ 학력

대일외국어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 학사
□ 경력
2014.06~2014.12
제19대 국회 후반기 여성가족위원회 위원
2014.06~2014.12
제19대 국회 후반기 안전행정위원회 위원
2013
통합진보당 대변인
2012.07~2014.05
제19대 국회 전반기 기획재정위원회 위원
2012.05~2014.12
제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통합진보당)

2011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
반값등록금 국민본부 공동집행위원회 위원장
민주노동당 부대변인
종교무종교가톨릭(세례명 : 효임골룸바)
외부 링크공식 사이트,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국회의원. 통합진보당비례대표 자격으로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당시 헌정 사상 최초의 외국어고등학교 출신 국회의원 기록을 세웠다. [1]

그러나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였다.
현재는 아프리카TV에서 활동중이다.

2016년 3월20일 민중연합당에 입당하였다.

2 생애

대구 출생. 대일외국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학과에 입학했다. "외고의 치열한 경쟁이 싫어서 일부러 공부를 게을리"하였다고 한다.

2001년 매향리사격장 폐쇄운동에 참가하면서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이듬해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이후 이적단체 한총련 대의원으로 활동하던 2002년에는 한총련 사상 최초로 여성으로 한총련 혁신파로 의장선거에 출마 낙선.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생활을 하다가, 2004년 11월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국회 기습 시위를 주도해 기소됐다. 2006년부터는 통진당의 전신인 민노당부대변인, 학생위원회 조직국장 등을 맡았다.

2011년에는 7기 한대련 의 집행위원장, 2011년 반값등록금 운동을 만드는 데 나름 일조를 한 듯 하다. 한대련 집행위원장으로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1000인 원탁회의' 기획하였으며, 사회를 맡아서 진행했다.
전에는 한대련 산하조직인 서울지역대학생연합(서대련)의 집행간부로지냈다.18대 총선에서 “최대한 많은 곳에 지역구 의원 후보를 내자”는 당의 방침에 따라 서울 강남을에 출마, 낙선했다.

2012년 총선에서 통진당 청년비례대표로 당선됐다. 통진당은 자체 모집한 10만명의 20·30세대 선거인단이 온라인 투표를 통해 청년비례대표 후보 1명을 선출하도록 했는데, 당시 대중적안 인지도면에서 거의 무명(無名)이었던 김재연은 제주해군기지 반대로 얼굴이 알려진 ‘고대녀’ 김지윤씨를 가볍게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는 한대련 주류가 된 전 이적단체, 한총련노선대(혁신그룹)과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밀월 관계 때문이라고한다.

2012년 5월 30일. 당시 32세의 나이로 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보라색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고서 국회에 걸어 들어와 19대 국회 첫 일정을 시작했다. 보라색은 통진당의 상징색이다. 이때 그녀가 입고 온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보고서 인터넷과 케이블방송 패션 프로 등에선 “미인이다” “패셔니스타”(fashionista)란 반응이 나왔다.

그러다가 2014년 12월 19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으로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래서 당분간 정치적 휴지기를 가질 수밖에 없게 됐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 이후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 독재정권이 저의 의원직은 빼앗아가도, (제) 가슴속 진보정치의 꿈은 빼앗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정치권에선 “김 전 의원은 2016년 총선에 출마해 정치적 재기(再起)를 노릴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했다.

2.1 경선비리 의혹

통진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 후 그와 경쟁했던 청년비례대표 후보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대리 투표 의혹이 있다”, “경선 투표 첫날 김재연 후보를 찍으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왔다”고 주장했다.

이후 통진당 비례대표 경선에 대한 중복 투표와 대리 투표 의혹 등 부정 경선에 대한 내부 증언이 계속 터져나오자 통진당 지도부는 그와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해 수 차례 비례대표 사퇴를 요구했다. 진보·좌파 인사로 분류되는 공지영·진중권씨도 “한숨이 나온다”며 김 전 의원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때마다 김재연·이석기 전 의원은 “소명 기회가 충분치 않다” “우리가 물러나도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며 사퇴를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경기동부연합 등이 주축이 된 구당권파와 진보신당·국민참여당 출신 등으로 구성된 신당권파의 갈등이 격화됐고, 분당(分黨) 사태로 이어졌다. 김재연·이석기 등이 소속된 구당권파는 통진당을 ‘접수’했고, 신당권파 인사들은 2012년 10월 탈당해 지금의 ‘정의당’을 만들었다.

2.2 의원직 상실 이후

국회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가 2015년 8월경부터 아프리카 TV에서 활동했다. 화면을 통해 여전히 시들지 않은 미모와 몸매를 자랑했을 뿐 아니라, 진행실력도 생각보다 좋아서, 원래는 김재연 욕하러 몰려갔던 일베충들이 오히려 "나 이제 종북이다" "재연찡 귀여웡" "목소리 최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일베충들의 인지부조화가 어느 정도인지 알 만하다(...) 일베충들은 세계의 누구보다 여자를 좋아하면서본심을 숨기는 것일까?

그러다가 통진당 해산결정 이후 딱 1년이 지난 2015년 12월 19일에, 가톨릭 세례를 받았다. 세례명은 효임골룸바.

이에 대해 모순이라는 지적이 있다. 주체사상은 철저한 유물론적 세계관에 터잡고 있다. 그러므로 주체사상에 따르면 기독교는 '민중의 아편'에 불과하며, 반드시 청산, 타파되어야 할 관념적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일부 천주교 사제 가운데 우호적인 경우가 있으므로[2] 진보운동을 위한 친분·연대의 개념으로 보면 될 것이다.

민중연합당에 입당한 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정부(을)에 출마했으나 3810표(3.8%)를 얻어 당선되지는 못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기도 했다. 관련 법령

3 제 2의 이정희

국회 입성 후 그에겐 ‘제2의 이정희’라는 수식어가 빈번히 따라붙었다. 이정희 전 대표는 서울대 총여학생회장, 김재연 전 의원은 한국외대 총학생회장 출신이다. 이 전 대표는 2008년 39세로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했다. 김 전 의원은 2012년 32세 나이에 통진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둘 다 ‘비례대표 3번’이었다.

그런데 이정희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특유의 발랄한 패션감각이었다. 국회 첫 등원을 할 때 검은 재킷과 보라색 미니스커트의 세련된 매치가 눈길을 끌었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라면 절대 그렇게 입지 못했을 것이다. 87학번인 이 전 대표는 ‘진보의 붉은 장미’로 불렸지만 어딘지 1980년대 운동권 여학생 출신의 칙칙함이 남아있었다. 99학번인 김재연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발랄한 외모 덕에 2000년대 초반 대학가에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을 알리기 위해 뿌려졌던 스티커의 모델로 등장했었다.

한때 통진당 차세대 ‘유망주’로서, “통진당이 이정희 대표 이후를 위해 키우고 있다”는 얘기까지 돌았다.

4 종북 논란

국회 입성 후 각종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종북 논란에 불을 붙였다.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그는 우스갯소리로 이석기 전 의원과 함께 ‘경기동부 남매’, ‘종북 남매’로 불리기도 했다.

예를 들어 국회 당선 직후인 2012년 6월 한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 체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달라”를 질문에 “평화통일을 위해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것은 (당의) 정체성”이라며 “북한을 인정하지 말자는 것은 전쟁을 하자는 것 밖에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언론 인터뷰에서는 “북한의 연평해전 도발들이 있었는데, 평화를 위해 북한이 공격을 해오더라도 참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맞불을 놓으면서 전쟁을 일으키면 안 된다”고 했다. “친북인사냐”란 질문에는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1. 최초의 외고 출신 국회의원, '권력 허리' 장악, 외고 주류시대 임박, 외고 30년, 신 권력엘리트 산실로, 입시 명문고 마지막 세대, 대원외고 국회의원 아직 없어
  2. 정의구현사제단의 박창신 신부가 대표적. 신은미 토크쇼에도 방문했었다. 물론 정의구현사제단 전체가 이런 성향인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