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함거포주의

(대함거포주의에서 넘어옴)

巨艦巨砲主義

Naval-race-1909.jpg
체펠린과 비행기가 보이는 건 기분탓이다
오프라인 칸코레

1 개요

거대한 전함거포를 갖춰서 해군력을 증강하려는 사상. 혹은 여기서 따와 크고 아름다운(?) 강한 것을 좋아한다는 표현을 함선에 빗댄 것. 대표적인 '남자의 로망'이기도 하다.

원래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대함거포주의(大艦巨砲主義)라는 동일한 뜻을 가진 단어가 먼저 존재하고 있었으나 국립국어원에서 거함거포주의로 표현을 고정하였으므로 한국에서는 거함거포주의로 명칭이 확립되었다. 참고로 1935년 12월 5일자 조선일보 사설에는 '대함 거포주의'라는 말이 등장한다.

다만 일본에도 '거함거포주의'라는 말이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며, '대함거포주의'와 동일한 말로 쓰이고 있다.

2 배경

거함거포주의란 1906년 영국에서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취역시키면서 시작되었다. 그 발단은 러일전쟁 당시 쓰시마 해전을 포함한 여러 해전에서 포격전의 교전 거리가 그전까지 상정되던 것에 비해 크게 멀어진 것에서 기인한다.[1]

본래 구형 전함(또는 전노급, 프리(Pre)-드레드노트급 전함)은 실제 화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강력하지만 발사속도가 느리고 원거리 사격이 잘 안맞는 12인치 이상급의 대형 주포는 4문가량, 장거리 타격 능력과 속사능력과 적당한 화력을 겸비한 8~10인치 안팎의 중구경 보조포를 그 두배 가량 탑재하고, 다시 속사가 가능한 6인치 이하의 소구경 부포를 다량 탑재하는 주포-보조포-부포의 3종 화포 체계를 이용해 주포 사격 후 재장전까지의 시간차이를 메꾸고, 덤으로 적함에 피해를 입혀서 느려지게 만들어서 다음 주포 사격이 적중하도록 하는 설계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러일전쟁을 통해 전열 포격전의 교전거리가 증가하고 일제사격이 대두되자 사거리가 뒤떨어지는 중소구경포의 전열에서의 가치가 의문시되었다. 이러한 결과로 각국 해군은 자연스럽게 전함이 보유가능한 화력을 대구경 주포에 집중시키는 "All Big Gun" 개념을 발전시키기 시작했고, 이 가운데 영국해군이 최초로 드레드노트를 건조하자 각국은 경쟁적으로 대구경 포를 대량 장비한 거대 전함 건조에 열을 올리게 된다.

물론 "All Big Gun" 개념자체는 빠른 속도로 수정되었다. "All Big Gun"을 추구한 드레드노트는 12인치 주포 외의 화력으로는 어뢰정을 저지하기 위한 3인치 함포만을 탑재하였지만 실제로 이정도의 화력으로는 전함을 잡기위해 갈수록 대형화되는 어뢰정과 구축함들을 저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에 이들을 공격할 수 있는 4~6인치 급의 부포를 다수 탑재하는 2종 화포 체계가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드레드노트 이후의 전함들의 부포는 말 그대로 보조함들을 잡기 위한 물건으로 이전의 구형 전함들처럼 동등한 수준의 주력함을 잡기 위한 용도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적 주력함을 잡기 위해 거포를 중시하는 구조 자체는 변화하지 않았다.

실제로 대구경 함포는 파괴력과 사거리가 이전까지의 군함에 비교해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시각에서는 결코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전함은 크기가 커지면 방어능력도 상승하게 되며 더 큰 대포를 장착할 수 있게 된다. 더 거대한 대포는 자연히 더 강력한 공격력과 더 긴 공격거리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적보다 더 큰 전함을 보유할 경우 아군은 적보다 더 먼 거리에서 더 강력한 위력으로 공격할수 있게 된다는 말과 같으며, 반대로 적은 아군의 사거리 내에 근접해서 더 강력한 방어력을 가진 상대와 대결하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게임 풍으로 말하자면 적보다 거대한 전함은 아래와 같은 특징을 가진다.

  • 공격력이 높다. - 거함은 대구경 거포를 탑재할수 있다. 즉 적과 동등한 숫자의 포탄을 얻어맞더라도 거함의 포탄 1발이 더 강한 위력을 가지기 때문에 적에게 주는 피해가 많다. 특히 이런 사항은 거리가 멀어져서 명중률이 떨어지거나 적보다 먼저 명중탄을 적에게 맞출 경우에 더 유리한데, 아군의 거탄을 단 1발만 맞더라도 적이 만신창이가 되므로 전투력을 상실하기 딱 좋기 때문에 아군의 손해가 거의 없이 적을 손쉽게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방어력이 높다. - 배수량이 큰 거함은 그만큼 주포와 장갑을 여유롭게 강화할수 있다. 이에 따라 적의 선제공격으로 인해 적함의 포탄을 얻어맞더라도 전투력을 상실하지 않고 아군이 반격탄을 명중시킬 때까지 버텨서 불리함을 상쇄할 수 있다.
  • 맷집이 높다. - 자신의 이하 체급 혹은 같은 체급도 몇번으로 빈사 상태에 빠질수있는 공격을 맞아도 어느정도까진 버틸수있는 맷집을 가진다. 일례로 레이테 만 해전 당시 야마토급 2번함 무사시의 경우, 이 전함 1척을 격침시키기위해 미군은 엄청난 맹공을 퍼부어서 19발의 어뢰와 17발의 폭탄을 명중시켜야 했다.###
물론 이런 수준의 명중탄은 무사시가 탱킹함으로서 일부러 도색을 약간 다르게 색칠한 것이 미군의 주의를 끈데다가 공격이 양현에 분산되었기 때문으로 동급함인 야마토의 경우에는 좌현에 공격을 집중한 덕택에 상대적으로 적은 피탄수인 11발의 어뢰와 6발의 폭탄을 맞고 격침되었다.### 그러나 이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 당시에 전함을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맷집을 가진 함선인 중순양함이 보통 어뢰 1-2발을 맞거나 폭탄 2-3발을 맞으면 격침되거나 폐함에 가까울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거함들이 보조함들과는 달리 하늘과 땅 차이의 맷집을 가진 것만은 사실이었다.
  • 사정거리가 길다. - 대포는 크면 클수록 사거리가 증가하므로 상대적으로 거포를 탑재할 수 있는 거대한 전함이 더 멀리서 때릴수 있는 건 당연지사. 물론 장거리에서 쓸만한 명중률이 나오려면 레이더와 사격통제장치의 도움이 충분해야 하지만 보통 전함들에게는 당대에 해당 국가에서 제공할 수 있었던 가장 쓸만한 장비를 달아주므로 장거리 명중률 저하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 멋있다

요약하자면 적보다 거대한 전함은 더 먼 거리에서 더 강한 위력으로 적함을 손쉽게 공략할수 있는 강력한 거포, 어느정도 공격받아도 버티는 중장갑과 맷집을 가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함은 일단 적의 전함보다 크면 거의 필승이나 다를 바 없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당대의 시각으로, 2015년 현재의 기술을 사용한다면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기술력 수준이 같다면 최대한 거대한 배가 이상과 같은 잇점을 누릴 수 있으므로 여전히 유리하다.

그러므로 거대전함은 전대의 전열함과 후대의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전술적인 용도가 크게 제한됨에도 불구하고 적의 전함을 상대할 방법은 비슷한 크기의 전함을 동원하는 것밖에 없었기에 2차대전기 함재기의 발달과 핵무기의 등장 전까지 큰 전략적 가치를 갖는 전력으로 강대국이라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 외에 독일의 페이퍼 플랜H급 전함들의 경우 야마토급 전함을 아득히 뛰어넘으며 H-44의 경우 야마토급의 2배에 육박한다. 한술 더떠 일본의 경우 페이퍼 플랜으로 100만톤급 전함이 계획되었다. 현대 기술로 만들어진 니미츠급 항공모함이나 제럴드 R. 포드급 항공모함의 배수량이 약 11만톤이고, 2015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큰 선박이 삼성중공업에서 건조 중인 약 60만톤의 LNG 저장 선박이니 말 그대로 페이퍼 플랜이었을 뿐이다.

함포의 구경으로 보면 당시의 3대 해군 강국인 미국, 영국, 일본 모두 다 18인치 함포까지 개발한 적은 있다. 이들 중 영국과 일본만 실제 장착까지 갔고, 전함에 장착한 것은 일본 뿐이다. 실험만 한 함포로는 일본의 48cm 함포가 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H-44에선 50.8cm(20인치) 함포를 장착하려 했고, 53 cm/52 (21") Gerät 36이라는 함포를 만들었다. 위력은 말할 것도 없고 사거리는 47.5km급. 그러나 포탑도 제조하다가 말았고 위에서 말한 독일의 최종병기급 계획인 H-44에서도 고작 50.8cm 포를 달았는데, 53cm 포를 실제 함포로 사용하려했을 가능성은 적다고 알려져있다. 포탄의 길이만 해도 260cm가 넘으며 2톤을 넘기는[2] 포탄을 발사하는 전함이 가져야할 규모를 생각하면 독일이 장착 자체를 포기한 것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3 문제점

3.1 비용의 급증과 함대결전의 축소

우선 큰 배를 만드는 것 자체부터 상당한 비용이 들며, 이 외에도 큰 배를 만들려면 도크도 충분히 커야 하고 배에 들어가는 철강생산량도 늘어나야 하는 등 배를 건조하기 위한 부수설비에 들어가는 비용도 같이 증가한다.

게다가 배를 만들어 놓기만 하면 끝이 아닌 게 당연히 배가 크니 승무원도 많이 탑승해야 하고 큰 배를 정박시킬 항구도 크게 만들고 정박지의 수심도 깊게 파는 준설작업을 해야 배가 입항할 수 있고, 당연히 큰 배를 수리할 도크와 기타 수리시설도 엄청난 규모로 만들어야 한다. 게다가 큰 배면 아무리 애를 써도 연료를 더 많이 잡아먹게 되므로 연료비도 증가하는 등등 그냥 운용만 하는데도 엄청난 비용이 추가로 더 늘어난다.

하지만 항상 예산은 제한되어 있고, 잘 늘어나지도 않는다. 일부 국가는 예산을 아무 생각없이 폭증시켜봤지만 돈을 조달할 수 없으므로 위의 규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결국 더 큰 전함을 건조할수록 건조되는 수량은 줄어들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된 후 과도한 군비경쟁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각국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1921년)에 조인하면서 수많은 전함들이 퇴역, 처분됨과 동시에 약 15년간 신조 전함 건조에 공백이 생겼다. 게다가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규제가 더 강화되면서 결국 전함의 존재 목적인 전함 전열에서의 함대함 포격전이라는 상황 자체가 훨씬 드물게 되었다.

게다가 전함이 줄어들면서 전함이 지나치게 귀중한 존재가 되어 전함을 아끼기 위해서 사소한 임무라고 판단되면 전함을 잘 내보내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특성이 극적으로 표출된 곳은 함대결전사상에 집착한 일본 뿐이며,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일본처럼 극단으로 치닫지 않았다. 영국도 워스파이트 등의 전함을 수많은 전장에 굴렸으며, 미국도 전함 사우스다코타워싱턴 등을 야간에 전투를 벌이는 위험한 임무에 적극적으로 내보냈다.


즉 다른 나라에서는 해안 포격 등의 임무를 위해서 구식 전함을 주로 활용하는 수준에서 신형 전함을 아꼈는데, 일본은 해전에서까지 전함을 숨겨놓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전함을 아꼈던 것이다. 비록 1차 대전 당시 독일 등은 현존함대전략으로 전함들이 항구에서 놀게 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전투 자체를 회피해서 함대 자체를 안 내보냈기 때문이지 일본처럼 쉴새없이 해전을 벌이면서도 전함이라는 함종을 아껴서 한 쪽에 꿍쳐놓은 것과는 비교하기 어렵다. 그 결과 과달카날 해전 등에서 일본군은 전체 전력에서는 우위를 점하고도 미군의 사우스다코타(1941년 진수), 워싱턴(1940년 진수) 등의 전함을 상대하지 못하게 되었다. 아끼다 똥된다는 건 역시 만고의 진리다

마지막으로 현대에는 미사일 등의 현대, 미래 무기의 등장으로 거함거포의 방어력이 상당히 상실된 부분이 있다. 현재야 구축함이 주력이고 장갑도 강력한 편이 아닌지라 미사일이 수평으로 날아들어 공격해도 유효타를 먹일 수 있지만, 전함이라면 이런 공격은 안먹힐 터이다. 그러나 미사일은 매우 높은 명중률로 탑어택 공격도 가능하다. 설령 상판에도 장갑을 어느정도 달아 놓았다고 해도, 그러한 장갑을 관통하기 위한 무기체계가 결국에는 개발 될 것이다. 대표적으로 마하 7의 속도로 관통자를 날리는 레일건. 물리적인 장갑만을 높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현대에는 장갑을 개량하는 것 외에도 낮은 탐지성+미사일 방호 체계+스텔스+긴 사정거리 확보+고성능 레이더를 도입하여 처음부터 맞을 가능성을 대폭 줄이거나 상황에 맞는 적절한 장갑을 부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3] 이유 중 하나가 언제 맞을 지도 모르는 데 무거운 장갑을 상시 부착하고 있으면 연비가 나쁘다.[4]

참고로 함대에 사용되는 미사일은 캐니스터에 보관되어 발사되는 데, 이 캐니스터는 밀폐보관이라 개봉이 금지이므로 정비도 사실상 필요가 없지만 일회용이다. '(1회용 캐니스터+미사일)X최소 8개~최대 48개를 구비해서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과 '값 비싼 대형 포탄+주기적인 정비비용+대구경 포신(수명 짧긴 하다만 몇 번이고 쓸 수 있다.)을 사용하는 것' 중 어느 쪽의 가격이 더 나가는가에 대해서는 현대에는 현대기술을 이용한 거포를 개발, 생산, 사용하고 있지는 않으니 논쟁의 의미가 있지는 않으므로 생략한다. 과거 기술을 사용한 것과 현대 기술을 사용한 것은 성능 뿐 만 아니라 축적된 기술로 인해 가격도 상당히 달라지기 때문.

3.2 항공모함의 부각

제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항공모함이 전함을 대신하게 된다. 항공모함의 위력을 알린 건 영국 해군의 타란토 공습이 최초이며, 이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일본 해군은 진주만 공습으로 항공모함 함재기 세력의 위력을 확실하게 증명했다. 이후 태평양 전쟁에서 항공모함이 전장의 주역으로 발돋움하게 되면서 전함의 효용성은 상당히 떨어졌다. 항공모함은 함재기를 발진시켜 전함의 주포보다도 먼 거리에서 공격이 가능하고, 함재기의 능력도 초기에는 전함을 단독으로 상대하기에 곤란한 점이 있었으나, 속도가 빨라지고 장갑이 두꺼워지는것과 동시에 무장 탑재량도 늘어나서 단체로 공격하면 거대전함도 파괴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거대 전함의 가성비가 크게 감소했다는 점이다. 각국 전함 함대의 숫자가 감소하고 주력이 순양함 이하 중소형함으로 옮겨감에 따라 전함 전열에 의한 함대결전 자체가 줄어들어 전함을 활용할 기회가 줄어든 동시에 전함의 숫자도 덩달아 감소하면서 전함 단함이 가지는 상징성도 증가하여 위험한 임무에 쉽게 투입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어드미럴급 순양전함후드가 비스마르크에게 격침당했을 때 고작 낡은 순양전함 1척 상실한 것에 비해 영국이 엄청나게 열받아서 단지 복수전을 위해 동원가능한 함대 전체를 총동원하는 등 엄청난 과잉반응을 보인 것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이해 가능한 대목이다. 그리고 항공모함은 함재기를 이용한 정찰 등의 다양한 임무에 투입될 수 있는데 비해 거대전함은 그 용도가 오직 "함대함 전투"에만 특화되어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물론 태평양 전쟁중 새로운 용도가 발견되기도 했다. 바로 지상포격으로 가장 싸고 많이 퍼부을 수 있는 함대지 공격수단이었다. 위력 또한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제대로 된 벙커도 주포의 직격탄을 맞으면 안전을 보장하지 못할 수준이라 미 해병대들은 만약 '쪽바리 전함이 이쪽으로 접근중' 이라는 무선을 받으면 짬밥을 무한대로 먹은 병사도 닥치고 참호로 들어가 문을 닫고 철모를 쓴채 머리를 감싸면서 공포에 떨어야 했다. [5]물론 미군도 상륙전 당시 전함의 거포로 화력 지원을 가해서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미국 해군이 아이오와급 전함을 1980년대까지 유지한 이유도 상륙작전때 화끈한 화력지원을 맛을 본 해병대의 요구 때문이었다. 또한 대형 전함에는 다량의 대공포들을 탑재할 수 있는 것을 이용해서 항공모함이나 수송함대를 공중 폭격으로부터 지키는 역할 또한 맡았다.

그래봐야 이미 거대전함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었으며, 용도 특성상 일단 있는 전함을 쓰기에는 좋지만 그 목적만 보고 새로운 전함을 건조할 이유는 못 되었다. 결국 전함은 항공모함에 자리를 내 줄 수밖에 없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가면 전함과 항공모함의 위치가 얼마나 뒤바뀌었는지 잘 보여주는 배가 한척 있는데, 미 장성들이 제일 증오하고 가장 위험하다고 여겼던 그 함선은 일본 연합함대의 기함 나가토도, 세계 최대의 전함이지만 서로 존재조차 몰랐던 야마토도 아닌 항공모함 즈이카쿠였다.[6]

3.3 핵무기의 등장

하지만 2차대전까지만 해도 아직 항공기가 전함에 대해 완전한 우세를 점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작 전함 1척을 격침시키기 위해 함재기를 수십대 이상 동시에 동원하는 것은 기본이었는데다가 신형전함일 경우에는 수백대 넘게까지 동원되었다. 이렇게 대규모의 항공전력을 동원해서 전함을 신나게 때려도 함선 자체는 일단 살아서 귀환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어뢰를 몇 발 맞고도 귀환한 경우도 있다. 게다가 대공포등의 대공사격능력이 향상된 전함의 경우 역으로 함재기를 다수 격추하거나 쫒아내는 것은 물론이고 함대의 대공화력까지 책임지기도 했다.

2차대전 이후로 전함의 건조가 완전히 포기된 것은 핵무기의 등장이 가장 큰 요인이다. 두 차례의 비키니섬 핵실험(크로스로즈Crossroads 작전)을 통해 핵무기는 전함궤멸에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시대적으로는 핵 만능주의가 도래하게 되어 해상전함에 대한 핵무기개발이 이어지게 되었다. 전함 한 척을 건조하는 가격 및 시간을 고려해 본다면 핵무기에 비해서 가격대비 성능이 떨어진다.

3.4 일본의 거함거포주의

보통 거함거포주의는 일본군이 한 삽질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는데 이는 자국이 건조한 세계최대 전함이었던 야마토급 전함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너무나 유명해서라고 할 수 있다(심지어 훗날 나온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가 박살난 초거대 전함 야마토를 바다에서 끌어올린 뒤 우주전함으로 개조해서 지구로 침공해오는 외계인들을 막는다는 초 비현실적인 어이없는 내용으로 만들어졌을 정도).

일본에서는 거함거포주의에 기초한 함대결전사상에 빠진 나머지 언젠가 거함거포의 전함들 사이에 결정적인 함대결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일본이 이러한 함대결전사상에 빠진 이유는 객관적으로 볼때 불리했던 러일전쟁에서 함대결전에서의 승리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은 경험 때문이다. 그 결과 과달카날에서의 대규모 소모전 등에서는 공고급 순양전함키리시마 같은 2선급 전함이나 구축함으로 미국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인 사우스다코타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인 워싱턴 등의 신규 건조된 최신예 전함을 상대해야 했으며, 이는 소모전에서 비참하게 발려버린 한 이유가 된다. 참고로 일본이 과달카날에 야마토급 전함이나 나가토급 전함 등의 제대로 된 전함을 파견했다면 미국도 꽤나 힘들었을 것이라는게 보편적인 평가다.

과달카날에서의 경우 이에 대한 다른 평가가 있기도 있다. 미국이 사우스다코타와 워싱턴을 과달카날에 파견했을 때는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 말 그대로 총동원에 가까웠다. 과달카날의 초창기 해전의 경우 일본이 미드웨이에서 패전했다고는 하나 이미 쌓아놓은 해군전력을 기반으로 동남아시아에서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1942년 9월, 10월에 잇달아 항모 2척(와스프와 호넷)을 손실한 미국은 태평양에서 당시 유일한 항공전력인 엔터프라이즈마저 피해를 받는 상황이었다.[7] 또 가용할 수 있는 전함 전력이 신형함밖에 없었다는 아이러니도 작용한다. 태평양 함대 소속이었던 다른 전함들은 대부분[8] 진주만에서 피해를 받아서 사용하기가 힘들었다. 전함 워싱턴의 경우에는 배치 초기에 대서양방면이었다가 1942년 8월에 태평양방면으로 소속이 바뀌었고 사우스다고타는 배치받자마자 진주만을 거쳐 과달카날로 내달렸다. 즉 미 군입장에서는 총력전으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물론 미국이 총력전 할 때 2선급 전함이나 내보낸 일본의 실책이 이걸로 가려지지는 않는다.

또 전함과 다른 함선들의 순항 속도를 근거로 한 해석도 있는데, 일본 해군이 16인치 주포를 가진 나가토급 전함의 솔로몬 해역 출동조차 제한한 것은 1930년대에 자국의 전함군들을 근대화개장하면서 27노트 순양전함이던 공고급을 30노트로 향상시킨 것을 제외한 나머지 전함들의 최고속력을 25노트로 한정지었던 것이다. 원래 나가토급은 26.7노트라는 고속을 내던 전함인데 수중방어력 강화 등의 방어력 향상공사를 하면서 배수량은 늘렸으면서도 기관부의 개수는 중유전소보일러로만 교체하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25노트로 줄였다. 25노트 정도로는 라바울에서 과달카날까지 당일치기로 갔다 오는 것은 상당히 위험했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이것도 완벽한 설명은 될 수 없는 게 함대 구성을 유지하려면 단지 빠른 배가 느리게 순항하면 되고, 작전 자체를 느린 속도에 감안해 짜주면 되는 것이었다. 즉 함선의 속도 한계로 인한 문제는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며, 오히려 빠른 함선을 다른 함선의 속도에 맞춘답시고 일부러 느리게 만드는 것이 일본의 확실한 실책이었을 입증하는 소재가 되어버린다.



아부라가 나인다... 왜 전함은 있는데 연료가 없니!!

또 한가지 문제는 연료 문제였다. 전함은 그 크고 아름다운 크기 덕분에 당연히 엄청난 연료를 소모하게 되는데, 동남아시아의 유전과 정유시설을 손에 넣고도 정작 해군용으로 배정된 유전과 정유시설들은 연합군이 철수하기 전에 파괴시켜 놓은 상태라서 실질적으로 일본해군은 1942년 후반기부터 유류부족에 시달려야 했다. 즉 일본군의 육해군 대립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군은 육군과 해군이 서로 반목하면서 각각 독립국처럼 운용되던 정치적인 문제가 원인이었는데, 일본군은 육군과 해군이 각각 따로따로 유전을 분배받은 후 각자가 직접 정유해서 사용했으며 당연하다는 듯이 유전과 정유 시설은 전혀 공유하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군 체제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으면 연료 부족으로 거대 전함을 놀리는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것이다. 더불어 이탈리아군이라는 반례도 존재하는데, 롬멜북아프리카 전역에 대한 긴급보급을 요청했을 때 해군용 연료가 이미 바닥난 상태에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는 고작 수송선 4척을 호위하기 위해 리토리오급 전함을 포함한 총 10만톤에 육박하는 전투함대를 파견했었다.

무엇보다도 과달카날에서 해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고, 당시에 내보내던 전력만으로는 더이상 상대가 되지 않는 점이 분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자국내의 사소한 문제를 들먹이며 끝끝내 신형 전함들을 내보내지 않은 것은 타국과 전면전을 치루는 국가가 하기에는 매우 비정상적인 생각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진주만 공습으로 항공모함의 위력을 증명한 장본인이 바로 일본이었다는 것. 거함거포주의가 일본 희대의 실책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것들이 명백한 사실이다보니 일본도 자기들 나름대로의 변명이 있다. 하지만 전간기 기간동안 구식전함을 마개조하는 데 광분하고, 야마토급 전함을 8척이나 계획잡았다가 포기한 일본의 사례를 보면 능력이 없어서 못한 것이지 전함에 집착한 것은 맞다. 타국의 경우에는 구식전함이 많아서 지금 당장 추축국의 전함들을 상대할 전력이 필요했다는 당위성이라도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항공모함 현황 [9]
함형영국미국일본
정규항모
기보유576
건조중644
전시건조0173
소계112813
경항모
기보유303
건조중134
전시건조960
소계1397
호위항모
기보유011
건조중313
전시건조41740
소계44764
총계6811324
주력함[10] 보유수202712
항공모함 / 주력함3.44.1852
비고
기보유 - 영국은 1939년, 미국과 일본은 1941년까지의 보유 항모
건조중 - 기보유 기준연도에 건조 중이었으며, 전쟁중 완공
전시건조 - 전쟁 중 건조를 시작하여 전쟁중 완공

그리고 이런 설명에서 항상 빠지는 것이 미국과 영국의 항공모함 건조다. 영국도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일러스트리어스급 항공모함을 건조하고 호위항공모함을 확보하려고 노력했으며, 미국은 에식스급 항공모함을 32척을 계획해서 24척을 건조했고, 호위항공모함까지 합치면 100여척을 넘어간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국과 영국은 항공모함 우선이었으며 전함은 필요한 양만큼만 뽑은 것이다.[11] 항공모함과 전함의 비율을 따지면 일본이 압도적으로 전함비율이 높다. 그런 것을 망각하고 전함의 숫자만 언급하면 당연히 국력이 높은 미국과 영국의 전함숫자가 더 많아보이는 소위 통계의 오류가 발생한다.

일본의 항공모함 건조도 자세하게 뜯어보면 문제점이 많은 것이, 정규항공모함에 빠른 속도가 중요하므로 대체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2선급 전력으로 함대결전에서 제외된 공고급 순양전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면 되지[12], 굳이 더 느린 이세급 전함을 자재와 비용 문제까지 언급하면서 항공전함으로 개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항공전함은 전함의 일종으로 치지 항공모함으로 치지 않는다. 정규항공모함이 가라앉았는데 그 공백을 경항공모함으로 메꾼다는 발상도 웃기는 일인데다가, 그렇게 개수된 항공모함들이 오히려 기존의 항공모함보다 기술적으로 퇴보까지 했으니 결국 안 하느니만 못 했다.

게다가 일본의 경우 애초 계획에 따른 항공모함 건조 외에 전시에 완성된 것은 정규항공모함 3척 뿐이다. 즉 가장 항공모함에 관심없던 것은 일본이다. 참고로 잡배들을 개조하다가 전쟁 끝날때까지 완성못한 것은 위 표에 반영되어 있지 않다. 같은 논리로 미국과 영국의 항공모함중 전쟁중에 완공되지 못한 것은 후에 완공된 것이라도 반영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표처럼 전쟁중에 완공된 것만 따져도 영국과 미국의 항공모함은 엄청난 숫자를 자랑한다.

설상가상으로 경항공모함이라도 좋았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일본군의 항공모함은 기술력 부족으로 캐터펄트를 설치하지 못했으므로 함재기는 항공모함 갑판을 자력으로 활주해서 비행해야 한다. 덕분에 항공모함이 느릴 경우에는 제로센 같은 주력 함재기를 탑재하지 못하고 구식인 96식 함전, 97식 함공, 99식 함폭같은 함재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될 경우 1선에서의 격전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군도 이런 경항공모함은 항공기 수송이나 선단 호위로 돌렸는데, 이렇게 된 함선 숫자가 무려 5척이다.#1 #2 #3 그리고 엄청난 돈을 들여서 개조공사를 해놓고도 선체결함등의 문제로 인해 실전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못한 경항공모함도 있다.#4 이러니 실제로 전장에서 사용가능한 항공모함의 숫자가 크게 줄어들고, 그나마 몇 척 안되는 정규항공모함이 주력을 차지하기 때문에 미드웨이 해전처럼 주력항공모함 4척을 잃어버리는 등의 사태가 나면 전력회복이 불가능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미국은 정규항공모함의 숫자도 많고 정규항공모함, 경항공모함은 물론 호위항공모함까지 유압식 캐터펄트를 설치했기 때문에 보그급 호위항공모함카사블랑카급 호위항공모함이 모두 F4F 와일드캣같은 주력 함재기를 탑재 및 운용가능했다. 그래서 호위항공모함인 주제에 레이테 만 해전같이 급박하게 적의 주력함대와 격전을 벌이게 되더라도 어느 정도의 대응이 가능하였다.

다 제쳐두고 항공모함만 있으면 아무 소용없고 함재기와 조종사, 정비원 등의 요소도 중요한 것인데, 일본군은 영 좋지 않은 신형 함재기들 때문에 제로센이 끝까지 날아다닌다거나 똥군기를 도입해서 일부러 조종사 수련숫자를 크게 줄인다거나 병 계급의 조종사가 있다거나 조금만 훈련 받으면 조종사가 될 인재를 모아서 만든 정비원을 적중에 버리고 도망친다거나 미드웨이 해전의 패배를 가리려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연금했다가 일부러 옥쇄하라고 남방군도에 파견보내는 등의 실책을 연이어 저질러서 인력관리가 절망적이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이 쯤 가면 항공모함에 대한 천대가 바닥을 뚫고 내려갈 지경이라고 보면 된다. 참고로 연합함대의 장교도 포술 관련 능력을 우선시했으며 항공병과는 성적 안되거나 밀려난 사람들의 집합처로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전쟁에 직면하자 과거의 건함계획을 파토내고 항공모함을 막 찍어내는 것으로 대응했으므로 이 점에서도 일본은 뒤쳐진다. 말로만 항공모함을 중시한다고 해봐야 실천을 안했으니 별로 소용없는 변명인 셈.

3.4.1 변명?

물론 일본에서는 전함 건조수를 보면 딱히 일본이 전함에 집착했던 것은 아니다. 상세하게 설명하자면 조약에 의해서 건함이 묶인 것을 기준으로 했을때 일본의 추가 전함은 조약시 나가토급 전함 2척, 조약이후 야마토급 전함 2척(+1이 될뻔 했으나 시나노는 항모로 전용)으로 4척이다. 항모운용으로 거함거포주의 신봉자 일본을 박살낸 것으로 추앙받는 미국은 조약시 콜로라도급 3척에 조약이후 노스캐롤라이나급 2척, 사우스다코타급 4척, 아이오와급 4척을 차례로 건조했다. 이는 영국도 마찬가지여서 조약시 2척에 묶여 있던 신규 전함수를 조약이 풀리자마자 KGV급 5척에 뱅가드급 한척을 더 했다. 단순히 조약이후의 건조수만 비교해봐도 2 vs 10 vs 6 정도인데 이를 보면 딱히 일본이 거함거포주의에 집착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야마토급이 초대형에 18인치 함포를 탑재한 거함거포주의의 상징은 맞지만 기본적으로는 개함우월주의에 입각한 설계에 가깝다. 당초 야마토급 8척의 건조가 예정되어있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장기적으로 구식전함을 완전히 대체하기 위함이었지, 일본이 총 16척의 전함을 한꺼번에 운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럴만한 국력 또한 없었다. 거함거포주의에 대한 일본의 집착은 88함대 계획[13]이 조약에 의해 물은 먹은 이후 사실상 소강상태에 접어든 상황이었다.
구형함선 개조의 경우는 모든 국가가 마찬가지였다. 조약 이후의 전함 건조수가 부족했던 만큼 각국은 조약에서 살아남은 함선들을 중심으로 근대화개장을 통해서 수명 연장 작업을 했다. 항모가 날뛰는 2차대전이 시작되기기전까지 항공모함의 경우 해전에서의 역할은 애초에 일단 항공모함으로 적 함대에 피해를 주고 전함들이 쳐들어가서 끝장낸다에 가까웠다.

일본의 대전중 건함과 건조를 봐도 그러한 분위기는 별로 없다. 미드웨이와 과달카날에서의 항모피해는 일본내에서도 자못 심각한 수준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당장 대형항모를 추가로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았고[14] 대체하기도 쉽지 않았으므로 기존의 건함 계획을 그대로 따라가는수 밖에 없었는데 이때에도 딱히 대형전함을 새로 가지려는 노력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건조중이던 야마토급 3번함 시나노를 항모로 변용하게 되고 건조중이던 야마토급 4번함은 30%공정인 상황에서 건조를 중단한다. 또 지속적인 해군력 소모에 있어서 기존에 건조중이던 중순양함급 함선들과 민간 대형 함선들을 변경하여 만드는 경항모들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게 된다. 이세가 항모개조에 투입된 것은 항목에도 나와 있지만 사고로 인해서 선정된 것이다.

영국의 경우에는 일본과 비교하기 뭐한 경우인데[15] 이쪽은 경항공모함 이상의 수는 일본에 뒤지고 호위항공모함의 경우에는 항목에서도 알 수 있지만 자체로 건조한 경우는 2차대전이 끝날때까지 취역하지 못했다. 물론 보유항모 수 자체는 엄청나기는 한데 일부는 기존 함선의 개조이고 대부분은 미국의 공여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호위 항공 모함의 경우에는 근본적으로 해전 패러다임의 변화를 수용한 것이라기 보다는 U보트에 대한 보급선 보호작전시 고속, 광역수색의 장점을 가지는 항공기를 운용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이들도 항모라서 상륙작전 항공 지원등에 폭넓게 사용하기는 했지만 속도가 20노트내외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가 많았다.[16]

3.4.2 하지만...

위의 변명을 보면 일본도 다른 국가랑, 또는 다른 국가들도 일본이랑 별로 다를바가 없는 방식으로 해군을 꾸려나갔는데도 패전국이자 온갖 병크들의 총집합소인 일본만 까이는 것으로 생각되기 쉽다. 특히나 과거 문제로 일본에 악감정이 많은 한국이라 더.

그러나 이걸로는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상선, 민간 선박, 파손된 전함에 원래부터 전함으로 건조되던 배도 항모로 개조하면서까지 항모를 확보하려는데 힘을 썼다면, 레이테 해전에서 왜 멀쩡한 항모 4척을 미끼로 썼을까?[17] 그냥 생각해도 이미 멀쩡하게 있는 걸 보존하는 게 그걸 버리고 어중간한 걸 새로 만드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특히나 그게 하나하나가 아까운 상황이라 계속 두고두고 써야 하는 물건이라면. 그리고 이렇게 미끼로 던져준 항모와는 다르게, 전함들은 엄청나게 아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제대로 된 전과를 올린 일본 전함은 공고급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가 공고급만 열심히 굴려졌기 때문이었다. 야마토급이 호텔과 여관으로 불린 이유 역시도 세계 최대의 전함을 건조해 놓고서도 정작 만든 목적인 전쟁엔 잘 써먹질 않아서 붙은 별명이 아닌가. 다만 여기에 대해서 부분적인 반론을 하자면 즈이카쿠를 미끼로 던저준 바로 그 해전에서 야마토급 전함 무사시도 고기방패로 던져줬다. 일본이 전함만 아끼고 항모를 경시했다고 보기에는 다소 애매하다는것. 오히려 이건 전함이든 항모든 그냥 한번의 돌파를 위해서 주력함을 덥썩덥썩 던져준거니 그냥 뒷일 생각안하고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작전을 짰다고 봐야한다. 뭐, 당시 어떻게든 미 해군의 방어를 돌파하고 상륙부대를 격파하지 못하면 정말로 전쟁 수행자체가 불가능해질 상황이기는 했다. 물론 이미 전세는 미국에게 완전히 기운 상태이기는 했지만.

물론 레이테 만 해전 당시에 미끼 작전을 수행한 항공모함이 운용할 함재기가 적어서 깡통항모였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성은 있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지금 당장 함재기를 운용 못한다고 항공모함을 버릴 바에야 이미 구식화된 콩고급이나 후소급 전함을 미끼로 돌리는게 더 적합해 보인다. 그러나 일본은 반드시 미국이 미끼를 물게 해야했고 원거리에서도 미국의 신경을 계속 긁으려면 항공모함은 반드시 들어가있어야 했다.[18] 거기에 즈이카쿠가 미군의 격침우선순위에 포함되어 있었기에 홀시를 더 확실하게 낚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면 전함 2척, 항공모함 2척, 이런 식으로 혼성편재를 하는게 더 효과적이었을것이다. 그러나 후소급 전함의 경우 결함이 많은데다가 구식화되서 주력함대와 발을 못맞춰서(...) 별도로 부대를 편성해야 했는데 항공모함은 전함보다 더 빠르다는걸 고려하면 어느쪽으로도 써먹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어찌되었든 후소와 야마시로는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매우 허무하게 침몰하고 말았다.애초에 주력함을 미끼로 던져준다는 발상 자체가 상황이나 운영 주체중 한쪽은 답이 없을때 나오는건데 일본은 둘 다 답이 안나왔으니 게다가 얼마뒤 급하게 개장하던 시나노도[19] 어이없게 침몰하여 항공모함은 없는거나 다름없게 되었다.

또한 일본은 조약에 반발해서 탈퇴했기 때문에 이론상으론 조약에 얽매이지 않고 제한없이 군함을 만들 수 있었는데,[20] 여기에서 일본은 다른 나라들처럼 이미 있거나 만든 경력이 있는 포를 사용하는 전함 다수를 건조하는 게 아니라 갖가지 기술을 죄다 쏟아넣어 만든 신예 대구경 주포를 사용하는 전함을 건조하는 선택을 했다. 미국 역시도 노스캐롤라이나급부터는 이전에 사용되지 않던 주포를 사용했지만, 이전에 사용되던 포와의 차이는 무게와 강도, 내구성 등으로 그저 개선된 버전에 불과했다. 최소한 포신을 완전히 다른 크기에 완전히 다른 기술로 만들어야 할 만큼의 차이는 없었다. 해군을 굴려온 짬밥이 다른 나라와는 천지차이라 그때까지 군함을 수도 없이 건조하고 굴려왔던 영국도 알량한 순양함급 선체에 18인치를 올려놓은 적은 있지만, 전쟁 때는 정작 14인치나 15인치 등 기존에 많이 썼던 포를 쓰는 전함을 만들었다.[21] 물론 N3급엔 18인치를 올리려 했지만 이건 1910년대 계획이고, G3급 순양전함, 라이온급 전함의 무장은 16인치로 계획했지만 아무것도 진짜로 만들진 않았다. N3, G3는 조약 때문에 취소했다지만, 포 이름을 거짓으로 표기하고 충분한 여력이 없음에도 끝내 건조하려 든 일본보단 낫다.[22] 그리고 영국은 일본처럼 여유가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새롭고 강력한 전함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들을 최대한 짜깁기한 전함을 만들었다.[23] 비록 전후에 완성되어서 쓸모가 없어졌다지만 건조 자체는 전쟁 중에 시작한 뱅가드가 바로 그 산물.

그리고 일본이 거함거포주의에 별로 집착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완전히 박살내는 증거가 있다. 바로 슈퍼 야마토급. 51cm(약 20.1인치) 포를 장착하기로 계획한 전함이며, 단순히 계획만 한 게 아니라 본격적인 세부 설계를 완료했고, 결정적으로 전함에게 가장 중요한 주포의 포신은 제작을 하고 있었다. 고작 포신인데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인다면 오산. 주포는 전함 건조에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킹 조지 5세급이 왜 그렇게 문제많은 포를 굳이 달도록 계획되었는지, 15인치가 어울리는 덩치의 샤른호르스트급이 왜 고작 11인치나 달고 활동했는지 생각해보자.[24]
간단한 예시로 총기를 들자면, 총기의 설계는 사용하는 탄약에 좌우되는데, 같은 모양의 총이라도 탄약이 바뀌면 총열도 노리쇠 뭉치도 가스관도 전부 바뀌어야 한다. 즉 설계랑 제작도 다시 해야 한단 소리인데, 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만드는데도 오래 걸리는 전함은 주무장을 바꾸려면 아예 윗부분을 다 뜯어내야 하는 대공사를 거쳐야 한다. 돈이랑 시간이 많이 드는 건 당연지사. 그러기 싫으면 모가미급처럼 처음부터 서로 다른 주포가 호환이 가능하도록 만들던가. 뭐가 어쨌건 주포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데엔 변함없다. 그러니 포를 만든다는 건 그걸 장착할 함선도 만들 의도가 굉장히 강하단 뜻이다.[25]

즉 일본은 거함거포주의에 집착한 거 맞다.
위에서처럼 단순히 전함 수만 비교하는 것 역시도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데, 일본이 건조한 전함 수가 적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건조의 어려움. 일본군은 야마토급 8척을 건조한 후 연습용으로 쓸 나가토급을 제외한 나머지 전함은 전부 스크랩하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야마토급은 이전에 만들어본적이 없었던 거대한 전함이었고 무장이나 장갑도 전에 만들어보지 못한 규모의 물건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크기나 방식의 물건을 만드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던가 시행착오를 많이 겪던가 하는데, 이게 야마토급의 건조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건조에 쓸 부품(무장, 장갑판, 설비 등)의 생산량은 적었고 그만큼 실제로 완성시킬 수 있었던 함선 수는 줄어들었다.
둘째로 쓸데없는 참견. 야마토급의 설계도는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그걸 따라 그대로 만들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군령부가 끼어들어 한창 건조중이었던 야마토급의 설계를 바꾸라는 태클을 걸었다. 이 때문에 시나노는 3개월이나 공사가 중단되었고, 그 이후로도 공사가 안 끝나고 쩔쩔매다 공습 때문에 다른 데에서 공사를 마무리하러 가려는 길에 침몰했다. 그리고 이전에도 군령부는 참견이나 어처구니없는 성능 변경을 요구해 멀쩡한 함선을 돈들여 다운그레이드하거나 원래 쓸 상황이랑 맞지 않게 만든적이 있다. 개장하려고 다 뜯어내놓고선 속도를 높인 게 아니라 오히려 줄인 나가토급과 함재기 운용을 위해 높고 커다란 함교 뒷부분을 파내서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게 만든 후소. 그리고 주력함 옆에 붙어다니는 대공방어함인데 개돌하는 구축함에게나 필요한 어뢰를 달게 된 아키즈키급.
셋째로 국력의 부족. 8척을 계획하긴 했지만 결국 4척밖에 건조에 착수하지 못했고, 그 중 3척만이 항해에 성공했는데 하나는 그 순간에도 내부에서 공사를 하던 미완성함이었다. 나머진 전부 취소했는데, 계획한 걸 전부 제대로 만들기엔 예산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이후의 야마토급들도 전부 예산이 모자라 설계안을 축소했지만,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아 아예 다 취소했다. 예산까지 충분히 배정받았음에도 빈 조선소가 없어 만들어지지 못한 미국의 몬태나급과는 완전히 대조되는 상황이다.

결국 일본은 전함을 안 만든 게 아니라 못 만든거다.[26]

다만 다른 국가들도 전함을 많이 만든 이유는, 그때까진 전함이 해전의 주력이란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었고, 그 때문에 전함은 실제로 쓰인 것에 비해 너무 고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적함과 포탄을 교환하는 것보다 함재기로 싸우는 전투가 더 자주 일어났고, 그 전투를 이끄는 주체인 항공모함이 부상한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돈 들인것에 비해 메리트가 적어진 전함은 도태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대부분의 전함이 쓸쓸하게 퇴역한다.아이오와급 전함은 예외적으로 오래 남아서 현역으로 뛰었지만

4 거함거포주의에 관련된 몇가지 에피소드

  • 당대 최강을 자랑했던 영국해군은 단연 드레드노트급 전함 건조에 있어서도 선구자였으나, 역설적이게도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등장으로 최강의 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레드노트 이전의 전함들로 군비경쟁을 하기엔는 영국이 워낙에 많이 보유하고 있어 어렵지만 드레드노트급 신형전함들이라면 영국도 몇척없으니 경쟁이 가능했고, 실제로 독일제국이 '해군법'을 제정하여 급격한 해군 군비확장에 나서면서 영국과 치킨런 건함경쟁이 벌어졌다. 이러한 건함경쟁으로 인해 영국 재정은 엄청난 타격을 받았고 이는 대영제국의 붕괴 이유 중 한가지가 되었다.
  • 태평양에서 항공모함의 효용성을 가장 먼저 입증한 것은 일본이었으나 정작 자신들은 야마토와 같은 전함을 더 선호했다. 일본의 해군사관학교만 봐도 비행관련으로 가는 장교는 연공서열이나 사관학교성적등의 이유로 인해 전함의 포술과같은 1급전투보직으로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전투보직으로 가기 위해 다른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차선책으로 비행관련을 택한 경우가 많았다.
다만 이것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항공모함들과 귀중한 파일럿들을 날려버렸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 당시 일본 제국 또한 항공모함을 쉽사리 건조해 손실을 메꿀만한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미드웨이에서 일본이 상실한 항모와 인력은 1,2 항공전단이었는데 대부분이 오랜기간 훈련하고 연습해온 숙련자들이었다. 해군이든 공군이든 한번 대량으로 잃으면 쉽게 메꿀수 있는 전력이 아니다. 특히 거함거포주의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전함들은 건조에만 몇년이 걸리는 수준이고 그를 운용하는 승무원들도 마찬가지이다. 조종사들과 관련 기술자들도 다를 바 없다. 보통 일본군의 초기 주력 항공모함들이 전함이나 순양전함으로 만들어지던 배들을 개수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참고해 보자.
  • 정작 전함들은 전쟁에서는 별로 한 일이 없다. 심지어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최대의 해전이었던 유틀란트 해전에서도 동원된 함선 숫자에 비해 실제 피해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유틀란트 해전의 결과 독일은 영국의 해상봉쇄 돌파를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다.
단 유틀란트 해전은 영국과 독일의 주력함대가 모두 투입되긴 했어도 애초에 독일해군은 영국의 순양전함 전대를 유인해 주력함대로 포착해 전멸시키려는 목적이었기에 암호해독을 통해 독일해군의 의도를 사전에 알아낸 영국해군이 독일 주력함대가 출동하자 이를 노리고 자신들도 주력함대를 출동시킨 것이었고 예상치 못했던 영국 주력함대의 출현에 놀란 독일 해군이 바로 변침해서 꽁지가 빠지게 도망친 터라 제대로 교전을 벌인 양측 순양전함 전대들만 큰 피해(영국은 3척 침몰, 독일은 1척 자침으로 독일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간신히 귀환한 독일 순양전함들도 거의 걸레가 될 정도로 두들겨 맞아 수리하는데 몇개월씩의 긴 시간이 필요했고 이 정도로도 영국해군과의 전력차를 극복할순 없었다)를 내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즉 주력함대간의 결전을 바란건 영국이었고 독일은 처음부터 결전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 독일이 건조한 비스마르크급 전함 비스마르크는 2차대전이 개전하기 이전까지 최강의 전함으로서 많은 관심을 모았고, 첫 실전에서 영국 순양전함 HMS 후드를 한방에 격침시키는 위력을 보였다. 단 이것은 비스마르크로서는 엄청난 럭키 샷이었고 후드로서는 엄청나게 운이 없었던 것이다. 하필 후드의 주포탄 탄약고까지 뚫고 들어가 폭발하는 바람에 후드의 주포탄들까지 유폭되어 두동강 난것. 이런 내부 유폭이 아니라면 전함의 주포탄 한방으로 전함을 격침시킬순 없다. 그러나 교전중에 발생한 피탄에 의한 타격 + 영국 항모의 공격에 의해 기동성이 저하되었고, 결국 더 우세한 영국 전함분대와 조우하여 격침당했다. 유럽전장은 전투가 주로 일어난 해역이 좁았고 교전국들도 상대적으로 항모 세력이 약했기 때문에 (전함 대 전함 전투가 거의 일어나지 않은) 태평양에 비해 전함의 활약이 좀 더 두드러진다(그래봤자 별로 없지만). 독일의 전함 네임쉽(비스마르크, 샤른호르스트)들은 전부다 전함간의 포격전을 통해서 그 생을 마감했다.
  • 일본이 사랑했던 야마토급 전함은 8척이 계획되었으나 전함으로 2척, 항공모함으로 1척만이 만들어졌다. 건조중에 취소된 물건으로는 4번함도 있었다. 이름은 111호이고, 1940년 11월 7일에 기공을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전투에서 전함을 손실하고, 결정적으로 미드웨이에서 한 번의 전투로 정규항모 4척을 시원하게 말아먹어서 110호(시나노)와 마찬가지로 항공모함으로 개조가 결정되었다. 하지만 시나노의 개조비용이 예상외로 높아지자 항모의 개조를 포기하고 해체 하자는 의견도 나올 정도였다. 무사히 건조된 3척의 함선도 암울하기는 마찬가지. 2번함 무사시는 1944년 10월 24일 레이테 해전에서 미해군 항공기들에게 두들겨 맞고 침몰, 3번함 시나노는 결국 항공모함으로 개장하였으나 건선거에 폭탄이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인해 모항을 옮기기 위해 마감을 남기고 처녀항해에 나섰다가 1944년 11월 28일 미군 잠수함의 뇌격을 받아 잠수함에 의해 격침된 가장 큰 전투용 함선이라는 기록을 남기는 수모를 겪으며 격침, 야마토는 오키나와 전투를 위한 고정포대용으로 편도 연료만 싣고 오키나와를 향해 특공작전을 벌여 항해하다가 이마저도 못 해보고 1945년 4월 7일 약 250대의 항공기들에게 다굴을 맞고 반으로 쪼개졌다. 이런 꼴이 될 때까지 이들이 격침시킨 적함은 한 척도 없었다. 1944년 가을의 레이테 만 해전에서 야마토가 이끄는 일본 전함 함대가 미국 호위항모 함대를 공격하여 미국 호위항모 갬비어 베이가 격침된 일은 있는데, 워낙 여러 전함들이 포격을 했기 때문에 어떤 함의 포탄이 갬비어 베이를 격침시켰는지는 미지수. 일본에서는 예전에는 야마토의 포탄이라고 하여 야마토의 격침 전과로 넣었지만, 최근에는 구식 전함 공고의 포탄이었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게다가 격침 이전의 문제로 전투에 직접 참가해서 대포를 쏜 횟수 자체가 별로 많지 않다.
  • 의외로 가장 마지막까지 전함을 사용한 국가는 미국. 1990년대까지 16인치(406mm) 주포를 실은 전함을 취역과 퇴역을 반복시키면서 현역 해군함정으로 운용했다. 바로 2차 대전 막바지에 건조한 아이오와급 전함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발사기를 달아서 '장거리 해상타격무기의 플랫폼' 개념으로 사용하는 등의 활용법을 보였으나 수천명의 숙련된 승무원이 필요하다는 것처럼 막대한 운영비에 비해 그다지 효용성이 없어서 현재는 모두 영구 퇴역했다. 2번함인 뉴 저지는 현재 해상박물관이 되어 있고, 3번함인 미주리는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식이 열렸으며 역시 박물관 용도로 쓰이는 중이다. 4번함 위스콘신은 2009년 박물관함으로 쓰이기 위해 노포크시에 기증된 상태이다. 마지막으로 1번함인 아이오와가 박물관함으로 쓰기 위해 2011년 미해군에서 LA PACIFIC BATTLESHIP CENTER에 기증되면서 모든 전함은 완전히 퇴역했다. 참고로 박물관이나 공원으로 쓰이는 중인 전함은 아이오와급 말고도 노스 캐롤라이나급의 노스 캐롤라이나, 뉴욕급 텍사스, 사우스 다코타급 3번함 매사추세츠와 4번함 앨러배마가 있다. 사족으로 영화 언더 시즈에 나온 전함은 아이오와급 전함 미주리가 아닌 사우스다코타급 앨러배마. 물론 영화상에는 미주리라고 나온다(영화 촬영 당시에는 미주리가 아직 현역이었다).
  • 해병대에서는 아이오와의 16인치 주포가 발휘하는 맹렬한 포격 능력을 선호하기 때문에(상륙작전에 유리하니까), 전함의 퇴출을 매우 아쉬워했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아이오와급이 현대화 개장을 거쳐 해군에 복귀하는데 가장 큰 힘을 실어주었던 게 미 해병대라고.
  • 가까운 미래에 레일건이 함포로 상용화되면 항공기와 미사일을 능가하는 사정거리와 지속화력, 격추 불가능성, 바이탈 파트 축소 등의 장점으로 인해 거함거포주의가 다시 도래할 수도 있다고 한다. 해당 항목 참고.
  • 거함거포주의의 황혼기이자 끝이었던 2차대전 당시 전함이 정규항공모함을 포격으로 침몰시킨 기록이 있다. 샤른호르스트 참조
  1. 참고로 쓰시마 해전은 사거리의 중요성을 처음으로 만인에게 각인시켜준 해전이라 세계 해전사에서 꽤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 야마토급 전함의 주포탄이 1.4톤이다..
  3. 재미난 사실은 현대 대부분의 장갑체계가 이렇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형작약의 위력을 감소시키는 전기장갑이나 슬랫아머, 적외선 스텔스 등이 있다. 개발 중이기는 하다만 메타물질을 이용한 플라즈마 방호벽도 있다.
  4. 전차, 장갑차도 블록1, 2, 3, 식으로 탈부착식으로 개발되고 개량되고 있다.
  5. 일례로 펠렐리우 전투 당시 미 전함 14인치 철갑탄이 직경 2m에 달하는 철문 입구를 '버터 녹이듯이 자르고 들어갔다라고 표현 할 정도면...
  6. 특히 윌리엄 홀시 항목을 보면 홀시 제독은 이 즈이카쿠를 진짜 죽이고 싶어 했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군의 낚시란 걸 보면서도, 상관이 속지 말라고 말리는데도 죽이러 갔을 정도니...
  7. 진주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근처에서 계속 수리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진주만으로 돌아가서 수리를 받아야 했겠지만... 이게 일본에게 있어서 또다른 재앙이 된다.
  8. 전부는 아니다. 콜로라도급 전함 네임쉽 콜로라도는 퓨젯사운드에서 오버홀을 받느라 공습을 피해갔고 2번함 메릴랜드도 폭격을 얻어맞긴 했지만 치명적인 피해를 받지는 않았다.
  9. 군함의 역사, James L. George, p320
  10. 전함 + 순양전함 + 항공전함
  11. 미국의 경우 몬태나급 전함에 얽힌 비화를 보면 더 두드러진다. 당초 미 해군은 몬태나급 전함을 4척만 건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의회에서 5척으로 한 척 더 승인을 내준다. 물론 이건 '기왕 만들 거면 확실하게 만들고 더 만들어 달라고 징징대지 말라'는 의미긴 하다. 그런데 더 골때리는 건 에식스급 항공모함을 우선시하느라 몬태나급의 우선순위가 밀렸고, 결국 모조리 취소되었다. 미국이 항모의 중요성에 눈을 떴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12. 물론 왜 빠르면서도 주력은 아니었던 공고급을 항모로 돌리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수는 있는데, 사실 그렇게 쉽게 볼 문제는 아니다. 당장 태평양 전쟁에서 공고급의 활약을 빼놓고는 일본군의 승산을 논하기 어려웠고, 이미 완성된 순양전함을 항모로 개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뿐더러 처음부터 항모로 건조한 항모보다 함재기의 운용 면에서 열세에 놓이게 된다. 렉싱턴급 항공모함도 걸작으로 평가받기는 하나 순양전함으로서 더 완성에 가까웠던 1번함 렉싱턴의 진수는 순양전함으로서의 모습을 아직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2번함 새러토가보다 늦었다. 그만큼 순양전함을 항모로 개조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완성되지 않은 렉싱턴급도 이러할진데 이미 완성된 공고급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그 렉싱턴급의 함재기 운용 효율은 본격적으로 항모로 건조된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에 비해 열세였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괜히 항모로 개조한답시고 1선의 전함을 빼다가 개조하는 것보다 항모를 새로 만드는 편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13. 8척의 전함과 8척의 순양전함을 건조하는 함대강화 계획. 이 계획의 부산물이 나가토와 무츠였다. 말하자면 전함은 전함으로 상대해야한다는 거함거포주의 사상의 집대성이었다.
  14. 특히 아카기와 카가는 순양전함과 전함 베이스였기때문에 더더욱 대체함선이 없었다.
  15. 미국의 경우에는 에식스급을 1940년에만 11척을 주문했다. 그리고 진주만 공습 이후에는 주문을 더 추가했다. 그리고 총 24척을 뽑아냈다. 가히 천조국의 위엄
  16. 레이테 만 해전에서 일본 해군과 교전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17. 그 유명한 엔터프라이즈의 숙적이라 불리던 즈이카쿠를 포함해서 치토세, 치요다, 즈이호 4척의 항공모함이 미끼로 사용되었다.
  18. 시간을 최대한 끌려면 미끼부대와 미 함대가 교전을 벌일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려야 한다. 즉, 두 함대의 거리가 멀어야 하는데 그러기위해서는 항공모함으로 원거리에서 신경을 긁는게 그나마 효과적이다.
  19. 미드웨이 해전에서 탈탈털리고 급하게 항모로 개조하기 시작한건데 1944년 11월에나 완성되었다.
  20. 다만 이건 국력이나 내부 상황등이 더 큰 변수로 작용한다. 계획한다고 다 만들어낼 수 있는게 아니란 건 독일의 H급 전함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21. 조약때문에 더 큰 포를 올릴 수 없는 상황이었고 계획상으로는 16인치급 전함을 추가적으로 뽑을 계획까지는 있었지만 계속 지연되다가 전쟁이 끝난 이후 결국 취소된다.
  22. 조약 성립 전 48cm(18.9인치) 포를 만드는데 성공했지만 이름엔 36cm라는 터무니없는 축소 표기로 다른 국가들을 속였다. 야마토급도 그렇게 주포 구경을 거짓 표기했다.
  23. 원래는 16인치 주포를 장착한 라이온급을 건조하려고 했으나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서 결국 뱅가드로 만족해야했다. 물론 관점에 따라서는 그렇게 짜집기 해서라도 보다 큰 구경을 가진 전함을 만들려고 했다고 볼 수 있기는 하다만...(당시 영국 고속전함들은 14인치 주포를 장착하고 있었음)
  24. 단, 슈퍼야마토급의 주포는 1938년에 설계된 물건이고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전함이 함대의 주력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었던 시기이다. 이는 일본이 전간기에 거함거포를 중시(혹은 집착)했다는 이야기는 될 수 있어도 거함거포주의에 끝까지 집착했는 증거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25. 다만 미국도 18인치 함포를 개발하는데엔 성공했다. 그런데 만들 능력이 충분했음에도 18인치급 전함을 안 만든 이유는 그걸 장착하면 전함 폭이 파나마 운하보다 넓어져서 통과를 못하게 된다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물리적인(...) 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26. 그뿐 아니라 야마토급 전함들의 경우 주포의 포신내구수명도 지나치게 짧은데다가 여유분도 얼마 없었다는 걸 감안해보면 야마토의 경우 1회용 전함이란 말이 붙어도 이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