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루팡 3 (극장판)
루팡 VS 복제인간칼리오스트로의 성바빌론의 황금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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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パン三世 カリオストロの城
1979년 12월 15일에 개봉된 루팡 3세의 두번째 극장판.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루팡의 자켓은 초록색.

1 스토리

루팡과 지겐 다이스케는 모나코 국영 카지노의 금고에서 카지노 수익금을 수십억 달러를 훔쳐내 도망친다.[1] 그들은 엄청난 돈뭉치에 두 사람은 환호하지만, 돈뭉치 속에서 우연히 지폐를 살펴본 루팡은 그것이 진품보다도 정교한 사상 최강의 위조 지폐인 고트 지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선 그 돈뭉치들을 죄다 밖으로 날려보냈다.(…)

루팡과 지겐은 그 위조 지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유럽의 한 나라인 칼리오스트로 공국에 잠입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웨딩드레스를 입고 쫓기던 소녀를 구하게 되는데,[2] 그녀는 바로 칼리오스트로 대공가의 후계자인 클라리스 칼리오스트로였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이들에게 납치되는데 납치의 장본인은 칼리오스트로 공국을 지배하고 있는 라셀 드 칼리오스트로 백작. 그는 칼리오스트로 공국의 비어있는 대공직을 대신해서 나라를 임시로 다스리고 있는데, 얼마 뒤 칼라리스와 결혼하여 정식으로 대공직을 물려받을 예정이다.

루팡은 라셀 백작과 클라리스의 결혼에 수상한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이시카와 고에몽을 부름과 동시에 백작에게 납치 예고장을 보낸다. 제니가타 코이치도 이 사실을 알게 되어 루팡을 잡기 위해 달려오고, 칼리오스트로 성에 위조지폐를 훔치러 하인으로 잠입한 미네 후지코까지 얽히면서 클라리스 공주의 구출과 위조 지폐를 둘러싸고 대활극이 펼쳐지는데…

2 등장인물

  • 클라리스 드 칼리오스트로(Clarisse d'Cagliostro)
담당성우는 시마모토 스미[3] 전대 칼리오스트로 대공의 외동딸이자 칼리오스트로 공국의 정식 후계자로 나라의 지배권을 차지하려는 라셀 백작에 의해 칼리오스토로 성 북쪽탑 꼭대기에 감금되어 있다. 백작과의 결혼을 극도로 싫어하여 탈출하던 중 루팡과 엮이게 되는데, 자신을 구해주겠다는 루팡을 진심으로 믿고 따른다. 사실 루팡과는 구면인 사이로, 과거 고트 지폐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칼리오스트로 공국에 칩입했다가 부상을 입은 루팡에게 마실 물을 가져다 주는등 도움을 준 적이 있다. 결말부에선 루팡의 활약에 의해 자유를 손에 넣는다.
  • 라셀 드 칼리오스트로
담당 성우는 이시다 타로. 이 작품의 악당 포지션. 같은 감독의 다른 작품모 캐릭터를 닮았다 칼리오스트로 가문의 분가측 인물로, 분가는 오래 전부터 칼리오스트로 대공 집안을 뒤에서 보좌하던 어둠의 파수꾼이였다고 한다. 전대 대공이 죽고 어린 클라리스가 왕국을 통치하기엔 애매한 상황에 놓이자 그가 섭정으로서 칼리오스트로 공국을 주무르는데, 클라리스와 결혼하여[4] 공국의 대공자리에 오름과 동시에 어떠한 보물을 손에 넣을 음모를 꾸민다. 공국 시민들도 그가 난봉꾼이라며 썩 좋아하지 않는 눈치다.
작중 초반에 루팡 일행이 손에 넣은 위조지폐를 만드는 장본인으로, 루팡을 잡겠다고 나서는 제니가타 경부가 자신의 비밀을 눈치챌 기미를 보이자 ICPO의 높으신 분들에게 부탁하여 철수하도록 만든다. 본인의 언급으론 전세계에 쓸만한 지인들이 많은듯. 결국 결말부에서 보물을 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다 시계탑의 거대한 분침과 시침 사이에 끼어서 천천히 .미야자키 애니에서 무스카랑 더불어 비참하게 죽는 악역 캐릭터. 보물을 포기하고 물에 빠지면 된다고 보는 이들도 있는데 그야말로 갑자기 시계 분침이 움직이는 터라 당황할만했다.
  • 조도
담당성우는 나가이 이치로. 라셀 백작의 집사이자 그 휘하 닌자 암살부대의 우두머리. 음침한 외모와는 달리 전투실력이 상당하나 루팡에게 연달아 골탕을 먹는다.
  • 구스타프
담당성우는 츠네이즈미 타다미치. 칼리오스토로 성의 근위대장. 루팡을 잡으려고 찾아온 제니가타 경부와 대립각을 세운다.
  • 월터
담당성우는 미야우치 코헤이. 칼리오스토로 대공가를 모시던 충신. 라셀 백작의 치세에 놓인 이후론 정원사로 몸을 숨기고 있다. 중후반부에 부상을 입은 루팡을 도와주며 활약.

3 제작 과정

원래 도쿄무비신사는 신 루팡과 루팡 3세 첫번째 극장판 루팡 3세 루팡 VS 복제인간의 각본을 쓴 팀들의 각본[5]을 바탕으로 오오츠카 야스오에게 이 작품의 감독을 맡아줄 것을 의뢰했지만 오오츠카 야스오는 이미 몇 번이나 영상화되어 이미 캐릭터가 고착화된 작품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미야자키 하야오가 소문을 듣고 찾아와 "내가 할까?(僕がやろうか?)"라고 먼저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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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미야자키 하야오오오츠카 야스오

여기에는 속사정이 있었는데, 첫째는 일상물을 추구하는 타카하타와 모험활극을 좋아하는 미야자키는 만들고 싶은 작품의 취향과 연출 성향도 서로 달라[6], 미야자키가 회상하기를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히트하자 똑같은 노선으로 만들어진 엄마찾아 삼만리는 그저 힘들기만 했다고 푸념했고, 역시 일상물인 빨강머리 앤은 지겨워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타카하타 이사오가 감독하고 있던 빨간머리 앤에서 장면설정과 레이아웃을 담당(15화까지)하고 있었지만 "앤은 싫다. 나머지를 부탁한다"며 때려치우고 루팡 3세 극장판 감독을 맡는다. 전년도에 미래소년 코난으로 처음으로 감독 경험[7]도 쌓은 미야자키에게는 이 작품은 타카하타 이사오와의 콤비 활동을 그만두고 독립하는 분기점이었다.

둘째는 이 작품이 극장 개봉하는 연도에는 TV에서는 한창 루팡 3세(2기 TV시리즈)가 방영되고 있었다. 미야자키는 이 2기를 보고 화가 났다. 실은 2기도 연출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있었지만, 루팡은 캐릭터로써 생명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캐릭터는 시대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지론이 있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원작 만화가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1967년. 일본에서 청년문화가 폭발하던 시기로, 몽키 펀치도 서른한 살의 신인 만화가로 어떻게 하면 재미있는 만화를 그려서 히트작을 만들까 하는 열망이 가득 차 있었고, TV판 1기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진 1971년은 미야자키는 서른 살로 아직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어떻게 하면 굉장한 작품을 만들까 하는 '헝그리' 정신과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미야자키는 이런 점에서 원작 만화에 공감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시대도 사회 분위기도 달라져서 루팡 3세도 미야자키도 30대 후반. 2기 루팡은 시대와 엇나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1기 루팡은 살인은 하지 않았는데 2기 루팡은 툭 하면 총으로 사람을 쏴 죽여서 해결하려하고, 여자나 밝히고 언제까지 천방지축 철없는 애송이처럼 까부는 루팡을 지켜볼 수는 없었다. "목표가 없으니까 인간을 타겟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나이와 같은 중년의 '아저씨'가 된 루팡을 등장시켜 루팡 시리즈의 결론을 내리고 쫑(오와리(終))내고 마침표를 찍을 작정이었다[8]. "루팡을 좋아한다면 그리는 것을 그만둬야 합니다. 나중에 어찌하다보니 '신 루팡(2기)'의 최종회를 담당하게 됐을 때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고, 소녀를 도와주고 떠나는 루팡을 다시 그렸습니다."[9] 그리고 그가 맡은 최종화에서는 지금까지 2기 루팡은 가짜였고, 진짜 루팡은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루팡이라는 연출을 한다. 나중에는 오시이 마모루에게도 이번에야말로 루팡 시리즈의 숨통을 끊어버리라고 주문을 하기도 했다. (오시이판 루팡 3세 참고)

미야자키는 언제나 그랬듯이 기존의 각본은 무시하고 따로 각본을 쓰지 않고 이미지 보드와 그림 콘티만으로 연출을 했고, 각본은 나중에 공동명의로 출판되었다. [10]

4 영향을 받은 작품

전반적인 플롯과 설정 등은 고전 동화에도 나오는 '탑 안에 갇힌 공주' 클리쉐이지만, 특히 영화 제목과 주연들의 이름을 따온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소설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11]>[12]와 <초록색 눈동자의 아가씨>[13], 이 젊은 시절의 뤼팽과 중년의 뤼팽이 등장하는 두 소설은 이 영화의 루팡의 나이 변화와 성장, 도둑놈이지만 소녀를 구하는 기사도 정신을 가진 루팡 설정의 뿌리가 된다.

미야자키는 아니메쥬의 인터뷰에서 <녹색 눈동자의 아가씨>에 나오는 호수와 로마 유적, 어릴 적 읽은 <유령탑>[14]에 나오는 거대한 시계탑과 톱니장치, 지하실이 작품의 원천이라고 밝혔다.

또한 폴 그리모(1905~1994) 감독이 만든 프랑스 애니메이션 왕과 새(1952년작)[15]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폭군 왕이 강제로 여주인공과 결혼하려고 결혼식을 올리는 설정, 그 여주인공을 구해서 탈출한다는 스토리, 성의 디자인, 엘리베이터, 바닥이 열려서 밑으로 떨어지는 장치, 줄을 이용해서 성을 탈출하는 장면, 오토자이로는 아니지만 비슷한 헬리콥터같은 비행정이 나오는 등. 미야자키 감독도 이 작품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세계 최초로 사람이 탑승해서 조종하는 거대로봇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기도 한데, 여기 나온 거대 로봇의 손은 미래소년 코난에 나오는 로보로이드의 손 디자인과 닮았고, 그림자 집단과 칼리오스트로 백작이 발사하는 장갑 손톱과 디자인이 매우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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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왕과 새(사팔뜨기 폭군) 오른쪽이 칼리오스트로의 성

게드전기가 극장 개봉하던 날에, 지브리가 제공하는 왕과 새도 공개되었다, 번역가는 도쿄대 불문학과 졸업의 타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와는 선후배 사이이자 동료이자 라이벌. 과거에도 몇 번이나 미야자키 작품에 대한 비판의 의견을 내놓곤 했는데, 그날 공개석상에서 "뭐, 칼리오스트의 성은, 절반 이상이 이 작품의 파쿠리 같은 겁니다.(웃음)(まあ、『カリオストロの城』なんて、半分以上この映画のパクリみたいなもんですよ(笑))"라고 폭탄발언을 연발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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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S NHK 아니메 야화[16]에서 한 평론가가 말하기를, 다른 작품에서 인용한 대목을 빼면 오리지날 부분은 10분도 안 남을 것이라며, 이 작품이 너무 추켜세워져서 걸작 명작 취급을 받지만, 스토리는 구멍 투성이[17]고, 미야자키가 발명했다고 착각하기 쉬운 애니메이션 표현 기법은 이미 다른 애니메이션에서 먼저 선보인 것을 가져온 것(그러나 원작을 뛰어넘는)라는 점을 지적했다.

거기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을 맡았기 때문인지 미래소년 코난의 느낌도 배어있다. 시기도 미래소년 코난 방영 후 개봉했다.

그리고 스토리의 구성은 알프레드 히치콕의 방법론을 응용했다고 밝혔다. 즉, 결말을 미리 정하고 거기에 맞춰 치밀하게 이야기를 쌓아 올려가는 스타일로, 젊은 때라 이런 방법론을 연구했는데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그런 짓은 하지 않게됐다고 한다. 미야자키 본인은 어떤 인물을 먼저 등장시키고 이야기를 진행해가면서 이 인물이 이런 면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되는 과정이 즐겁다면서, 이후, 처음의 설정 자체가 바껴버리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나, 스토리 구성 자체가 모호한 모노노케 히메벼랑 위의 포뇨 등에서 보듯 각본가로써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스토리의 짜임새와 개연성은 포기한 듯한 작품을 만들어버리고는 한다.[18]

5 제작 환경

작품 자체도 그야말로 후다닥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제작기간은 4개월 반(!)만에 뚝딱 해치운 작품이었다.(...) 미야자키는 후에 "내 체력의 한계를 이 작품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엄청난 강행군이었다는 것을 미뤄 짐작할수 있다. 미야자키 본인의 말로는 정신적인 데미지와 체력을 회복하기까지는 몇 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제작 기간이 짧은 탓에 처음 구상했던 그림 콘티를 수정해야 햇다. ABCD 파트에서 D파트 부분, 처음부터 이 D파트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시아게(채색)팀이 못 칠한다고, 이 이상 그림 매수를 늘리면 극장 개봉일에 못맞춘다고 해서 그림콘티를 다시 수정해야 했고, 더 잘 만들기 위해 콘티를 고친 것이 아니라 스케줄 때문에 콘티를 다시 그려야 해서 이거야말로 관객이 오는지 말든지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데미지가 남았다면서. 미야자키는 소련을 쳐들어갔는데 지평선에 모스크바가 살짝 보이는데 철군해야 했던 독일군의 심정이었다라는 밀덕후다운 비유를 들어 아쉬움을 표현했다. 이런 비유를 드는 이유는 어차피 정의를 위한 싸움도 아니고, 테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전적인 공주을 구하는 빅토리아 시대쩍(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같은 거라서, 그렇다면 철저하게 엔터테이먼트로써 '햐아~! 이 라스트를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구나!'라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거기서 브레이크가 걸려버렸을때 망연상실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좌절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관에 손님이 안 온 것이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을 정도였다고.[19]

이미지 보드에서는 루팡, 클라리스, 제니가타가 탄 오토자이로와 그림자 집단과의 엄청난 공중전, 클라이막스는 시계탑에서의 화끈한 액션활극이 펼쳐질 예정이었지만, 현실은 제작 후반에는 스케쥴에 쫓겨서 거의 맨날 24시간 풀가동 밤샘 작업으로, 스탭들은 밥먹을 시간도 없어서 영화에 나오는 제니가타와 경찰 일행처럼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했다. 이때 먹은 컵라면 갯수가 무려 3600개쯤이란다. 켭라면 장면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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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나중에는 채색작업할 인력이 부족해서 원화맨도 동화맨도, 경리를 담당하는 사원도 프로듀서까지 셀에 색칠을 해야 했다. 140일 정도의 제작기간에 총 작화매수는 약 45,000매, 전편 약 1,450컷, 작품에 참여한 11명의 원화맨은 하루에 1컷 이상, 동화는 하루에 300매 이상이 되는, 현재의 애니메이션 제작 환경(지브리의 원화맨의 경우 한 달에 4컷 정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애니메이터를 갈아넣어서 만든 경이적인 노동이었다.

본작의 원화 담당 11명 중 7명이 미래소년 코난에도 참여했다. 코난은 매주 20분짜리 한 편을 만들어야하는 TVA라서 스케쥴이 영화보다 더 힘들었다고 한다. 그 힘든 과정을 겪은 원화맨들이 있었기에 이 영화도 단기간에 완성될 수 있었다.[20] 그리고 원화가들의 장난끼로 코난이 출연하는 장면도 있다. 시계탑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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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돈에 쫓겨서 대충 만든 본작의 오프닝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연출법의 좋은 예로 손꼽힌다. 가령 까맣게 채색되어 실루엣만 그려진 배 그림 한장과 배경 그림 한장으로 30초를 버티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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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시간도 예산도 부족한 상황에서, 배경 미술도 기존의 사진을 손으로 그린 것처럼 보이게끔 가공해서 사용하고(샹들리에가 나오는 씬 등), 미네 후지코가 그림의 눈동자 부분을 열어서 백작을 엿보는 씬의 초상화는 실제로 있는 그림이다. [21] 참고로 배경미술 담당은 야마모토 니조

그리고 효과음(인물이 충격 먹을 때, 혹은 충돌할 때)이 당시 같은 해에 제작중이던 베르사유의 장미와 돌려쓴(..) 흔적이 보인다. 같은 도쿄 무비(TMS社)의 작품이라 그런 듯.

6 흥행 결과와 이유

극장 개봉 성적 자체는 3억엔 정도 돈을 들여서 걷어들인 것은 1억 5천만엔 정도였으니 거의 폭망 수준이었고[22], 미야자키는 이 작품 이후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기까지 극장판 감독을 맡지 못했다.[23] 미야자키 본인은 "이제 두번 다시 극장용 영화는 못만들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때의 경험으로 감독은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어서 더 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애니메이터 스탭으로 일하고 싶어졌다고 회상했다.(전력질주, 완전연소 스타일인 미야자키[24]는 이후 나우시카, 라퓨타, 모노노케 히메, 포뇨 때도 작품을 만들고 나면 감독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꺼냈다. 그만큼이나 한 작품에 최선을 다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오히려 TV 재방송이나 상영회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재평가되었다. 다음 해인 1980년 TV로 방영될 때는 시청률 22%. 1999년 2월 26일 니혼 TV의 금요 로드쇼에는 23.4%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흥행에 실패한 이유를 BS NHK 망가 야화에서 분석하기를, 1978년 전년도에 개봉한 스타워즈미지와의 조우로 일본 전역은 느닷없이 몰아친 SF붐으로 물들어 있어서, 애니메이션 영화는 SF 영화가 아니면 흥행이 안되는 시기였다.인용 오류: <ref></code> 태그를 닫는 <code></ref> 태그가 없습니다 가장 돈 안들고 SF영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그림으로 그리는 애니메이션이었다. 1979년 일본 영화 개봉작 중 최고 흥행작이 린타로 감독의 은하철도 999 극장판이였고, 스타워즈에 영향을 받은 기동전사 건담이 방영된 연도였다. 심지어는 전년도에 개봉해서 흥행에 성공한 극장판 루팡 3세 루팡 VS 복제인간에서도 클론 기술이 등장하고, 지구 밖을 벗어나는 로켓이 나오는 SF 테이스트 스토리였다.</ref> 그래서 배급을 담당한 극장의 취급은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단관 개봉이었지만, 지방 도시에서는 떨이 취급 2편 동시개봉으로 상영했다. [25]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도 지금처럼 일반인도 누구나 알 정도로 유명하지도 않았고, 애니메이션 업계와 애니메이션 팬들이나 주목하는 기껏해야 전년도 미래소년 코난으로 처음으로 감독 데뷔하고, 극장판 감독은 이번에 처음인 신인 감독이었다. 더구나 작품 스타일도 토에이의 장편 만화영화를 연상시키는 옛날 성과 공주가 나오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내용으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작품이었다.

NHK 방송의 인터뷰에서 흥행이 안된 것이 의외였다고 하자. 미야자키는 의외가 아니라 자신이 참여한 1기 이후로 시리즈화되어 루팡 3세는 인기를 얻었는데 그 시리즈에 등을 돌린 영화였다면서, 루팡이 성격이 쾌활하고 까부는 밝은 부분 뿐이라면 싫었고 어두운 그림자 부분도 다루지 않으면 안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우리들(제작팀)에게는 있었다고.

더빙 시에 미야자키는 이번 루팡의 나이 설정은 기름기(느끼함)가 쫙 빠진 중년이라서 루팡 3세의 성우인 야마다 야스오에게 까부는 목소리의 연기는 자제하고 전에 성우역을 맡은 적이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을 더빙할 때처럼 연기하라고 지시하자 야마다 야스오는 "내가 성우니까 내 맘대로 하겠다."[26]라고 거만한 태도로 말해 오오츠카 야스오가 화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시사를 마친 뒤 작품의 질이 높은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아 사과하고 몇백 번이고 지시하는대로 하겠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다(일본 위키피디아 참고).

루팡의 성격 변화 뿐만 아니라, 지겐도 전작 복제인간 편에서는 "미네 후지코하고 절교해라!", "귀찮은 일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당시의 젊은이들[27]들이 공감할 만한 캐릭터였는데, 이 작품에서는 정반대로 루팡과 함께라면 지옥 끝까지 가는 의리의 '싸나이'로 그려진다. 미네 후지코도 제니가타도 2기 시리즈와 첫번째 극장판에 등장하는 인물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들이었다.

7 평가

대다수의 루팡 3세 시리즈가 추구하는 코믹한 느와르풍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지만 이 작품을 최고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애니메이터들이 좋아하는 작품. 미야자키 하야오 작품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에 꼽히는 수작이다.
예술의 전당 스튜디오 지브리 레이아웃전에 작품 설명이 녹음되어 있는 아이팟을 들으면 큐레이팅을 맡았던 지브리 애니메이터(아는 분은 추가바람)가 이 작품이 한국에 정식 수출된 적이 없다는 사실에 탄식하는것이 압권 "아... 이거 정말 재미있는 작품인데 말이죠, 대다수의 한국분들이 이 작품을 모른다는 것이 안타깝네요"라는 식으로]지브리 팬이나 루팡 3세 매니아라면 한번은 반드시 볼만한 작품, 지브리의 작품이 그러하듯이 루팡 3세 시리즈의 입문용으로도 괜찮다.

해외에서 더 엄청난 호응을 받아서 해외의 루팡 3세 팬이라면 백이면 백, 이 작품을 보고 루팡 3세의 팬이 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작자인 몽키 펀치"이것은 내가 그린 루팡은 아니다. 나는 저런 상냥한 루팡은 그려낼 수가 없어." 라고 평하고 대신 제니가타 코이치의 해석은 훌륭했다고 극찬했다. [28]
원작자가 이 작품을 싫어한다는 소문이 있지만, 몽키 펀치는 TV방송에 출연해서 "싫어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잘못 퍼진 것으로 무척 좋아한다"고 밝혔다. [29]

스티븐 스필버그는 "사상 최고의 모험활극 중 하나", 특히 카체이스 씬은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카체이스 씬"이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 카 체이스 씬의 작화를 담당한 토모나가 카즈히데[30]는 후에 루팡 3세(2015 신 시리즈)의 총감독을 맡는다.


존 라세터는 자신의 인생을 바꾼 명작이라고 했다. 애니메이터였던 시절, 존 라세터는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용이다'라는 평가에 상심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미야자키의 첫 영화인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보고 애니메이션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심지어 청혼하기 전에, 아내가 자신의 소울 메이트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루팡을 같이 봤다고 했을 정도로 라세터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8 스태프

  • 제작 - 후지오카 유타카
  • 원작 - 몽키 펀치(주간 만화 액션, 파워 코믹스 - 후타바샤)
  •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 프로듀서 - 카타야마 테츠오
  • 음악 - 오노 유지
  • 선곡 - 스즈키 세이지
  • 작화감독 - 오오츠카 야스오
  • 미술 - 코바야시 시치로
  • 녹음 - 카토 사토시(토호쿠 신샤)
  • 효과 - 쿠라하시 시즈오(동양음량)
  • 원화 - 시노하라 유키코, 토모나가 카즈히데, 카와치 히데오, 토미자와 노부오, 탄나이 츠카사, 야마우치 노부리토시오, 마루야마 코지, 마나베 조지, 타나카 아츠코, 신카와 노부마사
  • 제작협력 -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
  • 배급 - 토호 주식회사
  • 제작 - 토쿄무비신샤

9 한국어판

어른의 사정으로 투니버스에서는 방영하지 않았지만 1994년 1월 2일 아침에 MBC에서 뜬금없이 새해 특집으로 아침에 방영해주었다. 시청하던 어린이들에게는 미래소년 코난형 루팡이었다는 전설. 다만 왜색 타파라는 아름다운목적 때문에 이시카와 고에몽 등장 부분은 편집당했다. 클라이맥스에서 칼끝만 나와서 슉슉하니까 악당들이 쓰러지는 건 MBC판의 명장면... 뭐 그래도 고 백순철이 연기한 루팡도 나쁘지 않고 더빙도 괜찮은 편. 비디오 더빙판으로도 나왔는데, 이쪽 성우진의 연기도 볼만하다.[31] 괴도루팡(부제는 카글리오성의 비밀[32])이라는 제목으로 94년에 출시되었다.

10 주제가

OST인 '불꽃의 보물(炎のたからもの)'은 잔잔하면서도 애절한 느낌을 주는 명곡이니, 루팡 3세 팬이라면 한번쯤 들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 하다.

炎のたからもの

作詞:橋本淳/作曲:大野雄二/編曲:大野雄二/
歌:BOBBY

幸せを訪ねて 私は行きたい…
시아와세오 타즈네테 와타시와 유키타이…
행복을 찾아서 나는 가고싶어요…
いばらの道も 凍てつく夜も
이바라노 미치모 이테츠쿠 요루모
가시밭길도 얼어붙은 밤도
二人で渡って 行きたい…
후타리데 와탓-테 유키타이…
둘이서 건너가고 싶어요…

旅人のさむいこころを
타비비토노 사무이 코코로오
나그네의 시린 마음을
誰が抱いてあげるの?
다레가 다이테 아게루노?
누가 감싸안아 줄까요?
誰が夢をかなえてくれる?
다레가 유메오 카나에테쿠레루?
누가 꿈을 이루어 줄까요?

炎と燃えさかる 私のこの愛…
호노오토 모에사카루 와타시노 코노 아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나의 이 사랑…
あなたにだけは わかって欲しい…
아나타니다케와 와캇-테 호시이…
당신만큼은 알아주길 바래요…
絆で私をつつんで…
키즈나데 와타시오 츠츤-데…
인연으로 나를 감싸줘요…

荒野をさすらうあなたを
코-야오 사스라우 아나타오
황야를 떠도는 당신을
眠らせてあげたいの…
네무라세테 아게타이노…
잠들게 하고 싶어요…
流れ星は あなたのことね…
나가레보시와 아나타노 코토네…
별똥별은 바로 당신이겠죠…

炎と燃えさかる 私のこの愛…
호노오토 모에사카루 와타시노 코노 아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나의 이 사랑…
あなたにだけは わかって欲しい…
아나타니다케와 와캇-테 호시이…
당신만큼은 알아주길 바래요…
なぞめく霧も晴れて行く…
나조메쿠 키리모 하레테 유쿠…
짙게 깔린 안개도 걷혀가요…

11 기타

한국에서 불법적으로 동명의 보드게임이 나온적도 있다. MBC판 방영 전에 팔린터라 '이게 뭐지?' 라고 넘어갔었다.

MSXPC-8801로 이 작품을 소재로 한 게임이 나온 적이 있었다. MSX쪽은 악마성 드라큐라 느낌의 사이드뷰 액션 게임이고 PC88은 던젼 방식의 RPG였다.

후일담 형식의 게임이 존재하는데, 플레이스테이션으로 발매된 "칼리오스트로의 성 -재회-"라는 타이틀이다. 게임의 내용은 추가바람. 역시 마찬가지로 후일담 형식의 드라마 CD인 "그로부터 4년" 이 있다.

제목과 등장인물의 이름에 들어간 "칼리오스트로"는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 나오는 뤼팽의 숙적 칼리오스트로 백작부인에서 따온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감독한 덕에 리마스터링하여 지브리 컬렉션으로도 블루레이가 출시되었다. 한국어 음성 및 자막은 없다.

11.1 여담

한창 바쁜 스튜디오에 한 남자가 미야자키를 찾아왔다. '월간 아니메쥬 편집자 [33]'라는 수상한 남자. "너네들 잡지를 보니까 애니메이션으로 돈벌이나 하려고 하고 거기 상대해주면 내가 더럽혀지는 기분이 든다.", "지금 바쁘니까 취재 같은 거 못해!"라고 화를 내며 거절하는 미야자키 감독 옆에 앉아서 아침부터 밤까지 지켜본다. "방해되니까 나가 줘"라고 말해도 모른 척. 이 뻔뻔한 남자가 나중에 미야자키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고, 스튜디오 지브리의 사장도 되는 스즈키 토시오였다.

당시, 스즈키는 월간 아니메쥬를 창간했을 때 창간 기사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에 대해 취재를 하려고 전화했는데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다.[34] 그래도 그 두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해서 미야자키가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만든다고 하니까 동료였던 카메야마 오사무(亀山修)를 보냈다. 하지만, 전혀 상대를 해주지 않자 스즈키 토시오도 직접 함께 찾아 온 것이다. 그렇게 스튜디오를 방문해서 민폐를 끼치기를 1주일 쯤 지난 어느 날, 한창 작업에 몰두해 있던 미야자키가 처음으로 그림 콘티를 보여주며, "이럴 때는 뭐라고 해야할까요?"라고 물었다. 그것은 초반의 카 체이스 씬. 클라리스와 악당들의 차를 쫓아 가면서, 지겐이 "재밌어졌는걸! (面白くなってきやがった!)" 이라고 말한 다음에 받아치는 루팡의 대사가 안 떠올라서 고민하고 있었던 거였다. 거기에 평소 경륜 팬이었던 카메야마가 '마쿠루(まくる; 경륜 용어로 뒤에 있는 자전거가 앞에 있는 자전거를 순식간에 따라잡아 앞질러 나아가는 것)'라는 단어가 있다고 제안하자, 그것은 들은 미야자키는 "아, 그렇군." 하며 그림 콘티에 즉시 집어넣어서, 루팡의 "앞질러 나가자! (まくるぞぉ!)"라는 대사가 탄생했다. 그리고 스즈키 토시오와도 기나 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1. 참고로 돈을 훔쳐서 차로 이동할때 뒷자석을 잘보면 돈에 파묻힌 고에몽의 머리가 살짝 보인다(...) [1]
  2. 이 때는 자동차에 펑크가 나서 타이어를 갈고 있을 때였는데, 소녀가 쫓기는 것을 본 뒤 단숨에 추격전을 시작한다. 지금도 루팡 3세 팬들 사이에서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보기
  3. 첫 주연작으로 유명하다.
  4. 그래서 루팡에게 "로리콘 백작놈!" 이라는 말을 듣는다.
  5. 모리스 르블랑의 아르센 뤼팽 장편 두 편에서 제목과 설정, 종반부 이벤트를 뽑아왔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뒤 루팡 전집을 읽는다면 이 애니 속 장면이 생각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원작자의 루팡 소설의 적어도 절반은 추리소설이 아니라 모험소설이다.
  6. 이 두 사람이 연출 성향이 다른 점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는 문학도 출신(도쿄대 불문학과)답게 이성적이고 영화적인 연출가인 타카하타 이사오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에서 하이디와 클라라가 재회했을 때(42화 14분부터) 둘이 손을 마주 잡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감정의 여운을 남기도록 했는데, 미야자키의 경우 그림쟁이답게 직접 둘이 껴안는 장면을 보여줘서 그 감정을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다. 엄마찾아 삼만리에서도 마르코와 피오리나가 다시 만났을 때 둘이 손만 잡았는데 하야오는 잡지(FILM 1/24 별간 미래소년 코난)의 인터뷰에서도 "마르코와 피오리나가 서로 달려와서는 껴안지 않는데 그런 것은 싫다. 정말로 기쁠 때는 껴안는 것이 만화영화적이다. 육체적으로 표현할 때 가장 좋은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며, 그가 연출한 미래소년 코난,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그리고 다른 미야자키 작품에 다시 만났을 때의 기쁨의 표현으로 서로 와락 껴안는 장면이 반드시 등장한다. 그런 미야자키의 작품인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장면에서 루팡이 클라리스를 차마 껴안지 못하는 장면은 의미심장하다. 스즈키 토시오가 말하기를, 두 사람의 다른 점은 같은 먹는 장면을 그려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줄까 신경쓰는데 반해, 타카하타 이사오는 이 음식이 무엇이며 왜 이 자리에 있는가라는 세세한 설정을 우선 따진다고
  7. 크레딧상으로는 연출이었지만 따로 감독직은 없었다. 실질적인 감독겸 연출.
  8. 영화 마지막에 큼직하게 완(完)자가 나온다.
  9. 미야자키 하야오의 인터뷰에서.
  10. 2011년 TV에 출연한 스즈키 토시오가 말하기를,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기획서에는 하룻밤의 참극이라고 한 줄만 적혀있었다고 한다.
  11. 프랑스 Comtesse는 '백작부인'이나 '여백작' 둘 다 의미하지만 소설의 내용에 보면 칼리오스트로 백작의 딸이라는 설정이므로 '여백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참고로 '칼리오스트로'라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사기꾼의 이름(자칭 칼리오스트로 백작)이 실존했다. 알레산드로 칼리오스트로, 본명은 주세페 발사모. 여행가, 신비주의자이자 연금술사이기도 했다.
  12. 젊은 시절의 뤼팽이 등장하고, 프랑스의 수도원의 보물을 둘러싼 모험. 여기서 뤼팽은 '클라리스'라는 처녀와 결혼을 한다.
  13. 어쩌다 우연히 만난 소녀를 구하는 중년 아저씨 뤼팽이 활약한다. 마지막에 호수의 물이 빠지고 로마유적이 드러난다.
  14. 원제는 A Woman in Grey. 영국 여류 작가 Mrs. Alice Muriel Williamson가 1898년에 발표한 소설로 거대한 시계탑이 있는 저택에서 수수께끼의 미녀를 만나게 되면서 펼쳐지는 미스테리물이다. 일본에서는 1899년 '유령탑'으로 번역되서 먼저 알려졌고, 에도가와 란포가 1937년에 '시계탑의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아동 대상으로 번안해서 발표한 적이 있다. 미야자키는 중학생 때 이 '시계탑의 비밀'을 읽었고, 새로 재발행된 소설에는 컬러 해설 만화와 단면도 그림 콘티를 실었고, 2015년에는 '유령탑'을 소재로 전시회를 가진 적도 있다. yuureitouheyoukosotenn.jpg
  15. 국내 개봉명 : 사팔의 폭군, 일본 개봉시 사팔뜨기의 폭군
  16. BSアニメ夜話 「ルパン三世 カリオストロの城」https://www.youtube.com/watch?v=VbvQxV5hf1k&index=3&list=PLoX44JH2G-ljqCSGpVdRCPWG-eclSmiM0
  17. 한 예로, 국영 카지노에서도 통할 정도의 정교한 위조지폐인데도 루팡은 한 눈에 가치가 없는 가짜임을 알아채고 버리는데, 굳이 칼리오스트로 공국에까지 잠입을 하는 논리적인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위조지폐의 원천을 찾는것이 목적이기도 하고 루팡이 워낙 천재였을 뿐 악영향을 끼치는 건 사실이니 의미없는 태클.
  18. 사실 그의 작품의 대부분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 구상한 원안을 타카하타 이사오스즈키 토시오가 옆에서 고치라고 조언을 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를 만들 때는 치히로의 시점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미야자키는 이러면 '파쿠상'(타카하타 이사오의 별명)한테 혼나는데 하면서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이 간섭하지 않은 벼랑 위의 포뇨는 미야자키가 타카하타 이사오의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일부러 개연성은 무시하고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 지는 신경쓰지않고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장면들을 나열한 것이었다.
  19. 출전 : プロフェッショナル 仕事の流儀 スペシャル 「宮崎駿の仕事 映像特典・未公開インタビュー」7분 35초부터 [2].
  20. 그런데 작화감독이었던 오오츠카 야스오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때는 코난이나 이것 보다 훨씬 힘들었다고 그때는 진짜로 죽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이는 6,70년대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힘든 환경과 중노동을 알 수 있는 발언.
  21. 안노 히데아키는 천재라고 감탄하고, 자기 작품에도 이런 연출(여기가 보여주고 싶은 대목이고 움직여야 할 곳은 철저하게 움직이고, 제작비 절감을 위해 예를 들면 에반게리온에서 화장실 변기 그림 한 장만 횡이동하면서 대사로 때우는)을 따라한다.
  22. 1979년 개봉한 일본 극장용 애니메이션 최저 수입 기록이었다.
  23. 영화 업계에서는 미야자키한테는 영화 만들게 하지마!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고 한다.
  24. 제작에 들어가면 기본 하루 15시간 이상 일하고, 아침 9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4,5시에 퇴근하기가 일쑤. 쉬는 시간도 없고 토요일 일요일 휴일도 없고, 밥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부인이 싸 준 도시락(한 손으로 쥐고 먹을 수 있게 만든 삼각김밥 같은거)을 한 손으로 먹으면서 다른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스탭들이 퇴근 못하게 출구 쪽에 감독 책상을 옮겨서 퇴근하려는 스탭에게 부담을 주고, 나우시카 제작 때는 항상 9시에 출근하고 새벽까지 일했는데 그날은 몸이 아팠는지 그날은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출근한 한 베테랑 스탭에게 그딴 식으로 일할 꺼면 그만두라고 무안을 주자, 그 스탭이 참다 못해 울부짖으면서 때려치고 가버렸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였다.
  25. 안노 히데아키가 이 동시개봉을 봤다.
  26. 당시의 야마다 야스오는 거의 애들용으로 변해버린 2기 TV시리즈에 상당히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루팡이 이렇게 인기 있는 것은 모두 내가 연기하는 루팡 덕분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거기에 작품 시놉시스 만을 보고 이 작품을 당시의 몇몇 수준 낮은 TV판 에피소드와 동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27. 시라케 세대(しらけ世代)라고 학생운동의 열기가 꺼진 후 등장한 50~60년대에 태어난 세상사 뭐든지 방관자 입장으로 정치에도 무관심하고 오히려 진지한 일을 하는 것을 시큰둥하게 보는 사춘기 성향의 요즘으로 말하면 중2병 개인주의 경향.
  28. 작중 명대사로는 제니가타로 변장한 루팡의 "지금 내가 여기 오지 않았나? 멍청하긴! 그 녀석이 루팡이다! 나로 변장해서 숨어 들려고 한 거다! 얼른 쫓아가!"가 있다. 많이 패러디 되는 부분. 그 밖에도 제니가타의 그 녀석(루팡)은 소중한 것을 훔쳐갔습니다. 당신의 마음입니다."도 있다.
  29. 原作者のモンキー・パンチは、「日本国外のルパン三世ファンの95%は「ファンになったきっかけ」として本作を挙げる」と述べながらも、2007年7月「ルパン三世シークレットナイト(新文芸坐)にて「(試写会で見た後の取材で)『これは僕のルパンじゃない』って言ったんですね。『僕には描けない、優しさに包まれた、宮崎くんの作品としてとてもいい作品だ』って。でもこの後半の部分が削られて、最初の一言だけが大きく取り上げられちゃいましてね(苦笑)。僕のルパンは毒って言うか、目的のためなら手段を選ばないところとか、欲望とか人間の汚いところとか持ったキャラクターですからね。あんなに優しくは描けないなぁ」と、原作と映画の違いも述べている。
  30. 콘도 요시후미와 함께 미야자키의 왼팔, 오른팔 역할을 했던 애니메이터. 움직임과 메카, 액션 묘사에 일가견이 있어서 미야자키 하야오명탐정 홈즈에서는 작화감독을 맡았고 극중 모리어티 교수의 부하 토드의 모델, 그리고 스마일리의 모델이었던 콘도 요시후미와 함께 리틀 네모 파일럿 필름을 만들어서 미국 업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러가기 카나다 요시노리는 "라이벌이자 친구"라고 평했다.
  31. 루팡은 손원일, 지겐은 이정구, 고에몽은 故 최병상, 후지코는 이진화, 제니가타는 유동현이 맡았다.
  32. 또는 카글리오스성의 비밀
  33. 실제 직함은 부편집장이었다
  34.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1시간 동안 너하고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전화를 바꿔준 것이 미야자키 하야오로 그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노조운동부터 다 털어놓으려면 16페이지 실어주라고 해서 스즈키 토시오는 취재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