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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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南治
1944년 01월 22일 ~

대한민국의 전 교육자, 정치인이다.

1944년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태어났다. 서울 동성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뉴욕대학교 정치학과 대학원, 컬럼비아 대학교 국제정치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때 6.3 항쟁에 참여하였다. 이후 1970년대 중반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 강사로 강단에 섰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신민당에 충청남도 부여군-보령군-서천군 선거구로 공천 신청을 하였으나 조중연에게 밀려 낙천되었다. 이에 무소속으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김종필 후보와 신민당 조중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80년 민주정의당 창당준비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이후 경찰대학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통일민주당 부대변인에 임명되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합류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3년 민주자유당 기획조정실장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건설교통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때 이회창의 측근 7인방 중 한사람이었으나,건설교통위원장 재직시 김포시 매립지 용도 변경 등과 관련해 동아건설로부터 8차례에 걸쳐 1억2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한나라당 공천에서 낙천되었다. 이에 반발해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여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새천년민주당 함승희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01년 5월 17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추징금 1억 2천만원의 원심이 확정되면서 사실상 정계를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