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친청 교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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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소 정문. 아직 교도소의 내부사진은 공개된 바 없다.

베이징 친청 교도소.
秦城监狱 (중국어)
Qincheng Prison (영어)

1 개요

중국 공안부 관할의 교도소로,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실사판 교도소. 대륙의 범털 전용 교도소 범털들에겐 친정집 범털들에게만 친절한 교도소
대륙의 국립 호텔, 사람을 짐승과 여왕.황제로 차별하는 아주 기가막힌 대륙의 교도소 호텔연금형

2 상세

친청 교도소는 1958년 옛 소련의 원조로 베이징 교외에 건설된 교도소이다. 주로 수감자는 권력투쟁의 와중에 숙청된 거물급 정치인들, 4인방 등 공산당 고위층이 수감되는 정치범수용소이며, 외부에 거의 공개되지 않는다.

친청감옥을 처음 조성한 사람은 건국 후 초대 공안부장을 지낸 뤄루이칭(羅瑞卿) 장군이다. 당초 정치범수용소로 쓰던 공더린(功德林)감옥이 비좁고 협소해 1958년 공안부 직속 감옥 마련에 착수한 것. 당시 소련 기술진의 지원으로 감옥을 설계했다. 이후 1960년부터 감옥으로 사용하며 공안부 정치보위국이 직할했다.

2.1 시설 및 수감생활

고위층이 수감되는 204동의 경우에는 3~4층 높이의 건물인데, 내부 시설은 카펫이 깔린 바닥과 개인 침실[1], 발코니, 소파 등 초특급 호화 시설, 건강 진료소, 도서관, 피트니스 센터, 개인 화장실 등 베이징 특급 호텔급 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수감자들은 매일 오후 2시부터 밤 9시까지 제한적 채널에 한해 텔레비전을 시청할 수 있고[2],평상시에는 죄수복 대신 사복을 입을 수 있으며[3], 교도관 감시하에 가족들과의 전화 통화도 가능하며, 행동에도 특별히 탈옥이 의심되는 상황이 아닌 이상은 제한을 받지 않는다. 어차피 탈옥해도 주변이 탈옥이 불가능한 구조이다.[4]

또한 교도소 내 도서관에서 독서와 TV 시청이 허용되고 베이징 호텔이나 여러 나라의 1급 특급호텔 주방장 출신의 요리사나 특급 호텔 요리사들이 출장을 와서 요리한 고급 요리가 매일 제공되는 등[5]"호텔급" 수형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한, 주 6차례 정도는 오전 9시부터 10시까지 교도소 내부에서 자유로운 산책과 운동도 허용된다. 잠깐, 주 6차례면 매일이잖아! 주 6일 근무라니 참 열악하네요 천량위 전 상하이시 서기는 이 시간을 이용해 태극권을 열심히 연마 중이라고 한다.

2.2 실상

하지만 이런 소문은 파룬궁 신도들이나 중까들에 의해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도 많으며 , 일반 감옥에 비해 상당히 시설이 좋은건 사실이지만, 호화판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견해도 많다. 일단 재소자나 출소자들이 대부분 고위층이라서 일반인은 알길이 없으며, 영문위키의 해당 항목을 보면 알려진 바와는 달리 그다지 호화롭지 않은 듯하니, 참고할 것.

3 수감자 혹은 수감자 출신 인물

대부분 감옥에 갈만 해서 간 자들이지만[6] 간혹 정치적 숙청에 휘말리거나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갇힌 사람도 있다.
참고로 보시라이는 가족들을 데리고 이리로 이사를 했다 카더라...

4 원인

소련대숙청 탓에 공산당이 집권해서 사형을 남발한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공산당 집권 후 오히려 장제스의 국민당 집권 시절보다 사형 집행수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더욱이 정치범에 대한 처형도 마찬가지였고, [7] 특히 고위급 정치인은 적이든 한때 동지이든 거의 처형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장제스중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친일파(한간) 를 청산하기 위해서 왕징웨이 정부에서 복무한 반역자들은 대부분 처형되었으나, 소련군이 체포해서 공산당에 넘긴 푸이 황제나 장징후이 총리 같은 만주국 고관들은 장기간 수용소 (10여년간) 생활을 하긴 했지만 대부분 목숨을 건졌다. 마찬가지로 국공내전 당시 공산군이 포로로 잡은 국민당 고관들이나 국민당군 장성들도 감옥살이를 꽤 하긴 했어도 대부분 목숨을 건졌다.

그 살벌했던 마오쩌둥 시절부터도 반동으로 몰린 고위직은 처형대신 유배형이었고, 류사오치허룽 처럼 끝내 유형지에서 병사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덩샤오핑 처럼 살아 돌아와서 이후 정부에서 고위직을 차지했다. 이렇게 고위직에 대한 우대는, 여러 고위직이 고초를 겪었던 문화대혁명 이후 더욱 굳어졌으며, 국가반역죄나 살인죄[8]만 저지르지 않으면 극형은 피해간다. 물론 몇몇 부패 관료들이 사형당한 사례가 있지만 이들은 반부패 캠페인중에 본보기로 걸린 자들이며, 도가 지나쳤는데 연줄이 없거나, 초고위직이 아닌 중간정도의 직위에 있었던 사람들이다. 이렇게 걸린 자들의 상당수도 사형 집행유예 - 무기징역 선에서 정리가 됐다. 그리고 이들에게 인간적인 대접을 함으로써 정치적 투쟁 과정에서 극단적인 저항을 하지 않도록 유도한 것이다.
  1. 204동 수감자들은 20㎡ 남짓의 독방을 제공받는다. 또 독실에는 1인용 소형 탁자가 있는데, 중국 관내에서 발행되는 신문과 잡지도 제공이 된다.
  2. 중국의 경우 모든 교도소가 제한적 채널에 한해서 여러 TV 시청이 가능하다.
  3. 심지어는 양복을 입는 사람도 있다. 고위층 답다나. 단 자살 예방 차원에서 넥타이 착용은 금지. 허락받으면 자살 우려가 없는 나비넥타이정도는 허용. 단 취침복은 당연히 죄수복으로 사복 착용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가능하다.
  4. 탈옥을 감행해도 한국의 경북북부 제2교도소와 비슷하게(이쪽은 광덕산 절벽으로 막혀있다.) 북으로는 연산(燕山), 남쪽으로는 소탕산(小湯山), 서쪽으로는 대탕산(大湯山), 동쪽으로는 도욕구(桃峪口)저수지로 막혀 빠져 나가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5. 단 후식으로는 모든 중국의 교도소와 마찬가지로 매일 사과가 하나씩 무상으로 보급이 된다.
  6. 보시라이 같은 경우 중국의 반체제 인사들도 신경쓸 가치가 없는 그냥 범죄자라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다.
  7. 장제스 시절에는 공산당원으로 몰리면 무조건 재판없이 처형이었다. (4.12 상하이 쿠데타 참조)
  8. 그마저도 일반인은 우발적으로 사람을 죽여도 사형을 받는 시대에 이들은 계획 살인을 저질러도 사형을 잘 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