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티모어 오리올스

?width=40 MLB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소속구단
45px볼티모어 오리올스
(Baltimore Orioles)
30px보스턴 레드삭스
(Boston Red Sox)
40px뉴욕 양키스
(New York Yankees)
45px탬파베이 레이스
(Tampa Bay Rays)
55px토론토 블루제이스
(Toronto Blue Jays)
150px250px
모자 로고[1]구단 로고
볼티모어 오리올스
Baltimore Orioles
창단1894년
연고지메릴랜드볼티모어
현재 연고지로 이전1954년
구단 연고지 변천밀워키 (1894~1901)
세인트루이스 (1902~1953)
볼티모어 (1954~)
구단명 변천밀워키 브루어스 (Milwaukee Brewers, 1894~1901)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St. Louis Browns, 1902~1953)
볼티모어 오리올스 (Baltimore Orioles, 1954~)
홈 구장로이드 스트리트 그라운드(Lloyd Street Grounds,1901)
스포츠맨스 파크(Sportsman's Park,1902~1953)
볼티모어 메모리얼 스타디움(Memorial Stadium, 1954~1991)
오리올 파크 앳 캠든 야즈
(Oriole Park at Camden Yards, 1992~)
구단주피터 앙헬로스 (Peter Angelos)[2]
사장공석
단장댄 듀켓 (Dan Duquette)[3]
감독벅 쇼월터 (Buck Showalter)
월드 시리즈 우승
(3회)
1966, 1970, 1983
아메리칸리그 우승
(7회)
1944, 1966, 1969, 1970, 1971, 1979, 1983
지구 우승
(9회)
1969, 1970, 1971, 1973, 1974, 1979, 1983, 1997, 2014
와일드카드 획득
(3회)
1996, 2012, 2016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4]
김현수(2016~ )
약칭BAL[5]
홈페이지
유니폼
ALE-Uniform-Orioles.png
1966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
1965-로스앤젤레스 다저스볼티모어 오리올스1967-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70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
1969-뉴욕 메츠볼티모어 오리올스1971-피츠버그 파이리츠
1983년 월드 시리즈 우승 팀
1982-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볼티모어 오리올스1984-디트로이트 타이거스

1 개요

볼티모어 오리올스 마이너 갤러리

MLB의 프로야구단.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소속. 연고지는 볼티모어. 그리고 AL 동부지구에 속해서 슬픈 본격 2000년대 호구팀. 약칭 O's로 불린다. 어느 팀의 별명을 따라하는 듯하다.

역대 팀 성적 링크

볼티모어로 옮긴 이후의 성적은 대단히 좋았지만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가 한국에 알려지기 시작한 98년부터 팀 성적이 추락하여 역시 국내 팬들에겐 약팀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 있다. 2012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을 진출하며 약팀의 이미지를 떨쳐내는 중.

2 역사

2.1 창단부터 1980년대까지

19세기 후반 밀워키 브루어스[6]로 시작했지만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St. Louis Browns
(1902~1953)
(과거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시절 로고)

20세기가 시작되고 난 직후 세인트루이스로 연고지를 이적하여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가 된다. 하지만 세인트루이스에는 먼저 자리를 잡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있어서 인기 면에서는 그저 그랬던 팀이었다. 1944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함께 세인트루이스 팀들간의 월드시리즈덕아웃 시리즈가 펼쳤지만 아쉽게도 2승 4패로 패퇴했다. 월드시리즈가 펼쳐진 경기장은 당시 두 구단이 공유했던 스포츠맨 파크(부시스타디움 I)였는데, 시리즈 6경기 모두가 여기서 열렸다. 그리고 사첼 페이지가 말년에 뛰었던 구단으로도 유명하다.

현재의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된 것은 1954년부터이다.[7]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된 후부터 적절한 성적과 유망주 육성으로 호성적을 거두기 시작하며 거포 프랭크 로빈슨과 전설의 공수겸장 3루수 브룩스 로빈슨, 오리올스의 에이스 짐 파머의 등장과 1970~80년대에 감독으로 역임한 칼 립켄 시니어[8]의 신들린 유망주 육성능력으로 60년대 중반~80년대 초반 리그내의 최강팀 중 하나로 등극한다. 83년 월드시리즈를 우승한 다음해부터 왠지 모르게 성적이 죽을쑤기 시작한다. 1988년에는 시즌 개막후 무려 21연패를 기록하면서 최종기록 107패를 기록,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악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 그런데 15년 뒤에 꼴랑이가 무려 119패 승률 .265를 기록하며 이 치욕스런 기록을 깼다. 칼 립켄 주니어가 MVP를 달성했다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라고 할수 있을듯 하다.

2.2 나름 잘 나갔던 1990년대

1991 시즌 후 오리올스는 약 40년 동안 영광과 오욕(...)을 함께한 메모리얼 스타티움을 뒤로 하고 새 구장인 캠든 야드[9] 로 옮기게 된다. 이후 1993년 피터 앙헬로스톰 클랜시가 주축이 된 투자그룹이 오리올즈를 인수하고 공격적인 투자를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라파엘 팔메이로의 영입, 칼 립켄 주니어의 꾸준한 활약, 젊은 에이스 마이크 무시나의 등장으로 당시의 강팀인 뉴욕 양키스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견줄만큼의 건실한 팀을 구축하게 되고 다시금 중흥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1990년대 후반 로베르토 알로마, 라파엘 팔메이로 등의 주축 선수들을 FA로 내보내며 다시 밑도 끝도 없는 시궁창으로 빠지기 시작한다(...). 2000년대 초반 다시 의욕적으로 팀을 밀어붙이게 되지만 새로 들어온 선수들은 어김없는 먹튀였으며, 유망주들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팀 마운드의 기둥인 마이크 무시나가 라이벌 팀인 뉴욕 양키스로 이적[10]하고 칼 립켄 주니어도 은퇴를 하는 등 점점 상황이 악화일로로 치닫게 된다.

이 당시 팀을 엿먹인 결정타이자 각주에도 언급된 피터 앙헬로스의 비상식적인 타자사랑이 빚은 참극이 다름아닌 인디언스, 화이트삭스를 거쳤던 외야 거포 알버트 벨의 영입. 인디언스에서 맹활약을 하고 나서 화이트삭스와 5년 5500만 달러의 당시 FA 최고가 계약을 맺었던 알버트 벨의 계약조건에는 계약기간 내에 반드시 리그 최고연봉자가 되어야한다는 조항이 있었는데, 알버트 벨이 2번째 시즌을 마친 1998년 오프시즌 예상치못했던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6년 7500만 달러의 계약이 터졌다. 이 때문에 알버트 벨은 조항에 따라 자신의 연봉을 올릴 것을 요구했고, 이를 거절한 화이트삭스는 그를 FA로 풀어준다. 그리고 당시 DTD중이던 오리올스의 피터 안젤로스는 또 거포 수집병이 도져 FA 최고가격이었던 5년 6500만 달러에 벨을 영입하지만... 채 2년 뛰고 그대로 배깔고 드러누워 버렸다. 부상 핑계로 시즌을 뛰지도 않으면서 로스터엔 남아있는채 생떼를 부린 벨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서 오리올스는 그가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은 2001~2003년간 총액 3700만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지불한 오리올스는 급격하게 약체팀으로 무너진다.

2.3 시궁창의 2000년대

알버트 벨 이외에도 다시 영입한 라파엘 팔메이로는 약물 스캔들로 시궁창이 되었고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에 미겔 테하다를 비롯한 투/타의 주축 선수들이 거의 참가하게 된다.[11] 참가한 선수들은 거의 모두가 후유증에 시달렸으며 2006년 성적도 역시 시궁창으로 마감하게 된다. 이로써 볼티모어는 그야말로 안되는 팀은 뭘해도 안 된다는 것의 정석을 보여주게 되었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지구 4위를 9번이나 했는데, 이건 그당시 탬파베이가 워낙 못해서 그렇지 이 팀이 잘해서가 아니었다.

2008년 탬파베이가 갑툭튀하면서 이제는 별수없이 5위로 떨어졌다. 2009년 최종 성적은 64승 98패, 울자.

그 와중에도 새 구단주가 나타나지 않으면 해체될 위기에 있던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한 워싱턴 D.C. 이전을 자신들의 마켓이라는 이유로 결사반대 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MLB 전체를 생각하지 않는 구단 이기주의라고 까이기도 했다. 결국은 워싱턴 내셔널스의 TV 중계권을 자기가 대주주로 있는 볼티모어-워싱턴-버지니아지역 스포츠 전문 케이블 방송국인 MASN이 꿀꺽하는 조건으로 워싱턴의 이전을 승인.

하지만 2000년대 후반 들어서는 입단한 선수들이 그럭저럭 제 몫을 하고있고 유망주도 닉 마카키스, 맷 위터스같은 대형 유망주들이 포텐셜이 만개하면서 팀의 힘을 실어주고 있기에 마냥 절망적이지는 않다. 확실한 원투펀치를 이룰수 있는 투수가 있다면 1970~80년대의 넘사벽 시절까지는 부족하지만 1990년대 초중반의 중흥기는 다시 이룰 수도 있다는게 주변의 평. 문제는 구단주인 안젤로스가 거포수집에만 눈이 뒤집힌 인간인지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2.4 2010 시즌

2010 시즌, 볼티모어는 제대로 망한 시즌을 보냈다. AL 동부라는 저주받은 지구[12]의 탓도 있지만 B급 타자로 도배한 타선은 침묵 행진을 했으며 첫 두 경기를 깔끔하게 블론 처리한 마무리 마이크 곤잘레스는 쾌속 DL행을 확정지었다. 그렇다고 다른 불펜이 잘 하냐면 거의 망했다...싶은 수준.

후반기에는 결국 감독을 교체, 벅 쇼월터가 감독으로 들어오면서 팀의 분위기가 일신, 후반기에 크게 떠오를 수 있었다. 물론 아메리칸 리그 동부 지구 꼴찌란 건 변하지 않았다.[13]

결국 비싼 돈주고 사온 에이스 밀우드는 패왕에 등극하고 말았고(4승 16패) 그나마 틸먼을 제외한 매티스, 베르거슨, 아리에타같은 영건들은 후반기에 그나마 살아났고, 기존 에이스 거스리도 나름 좋은 활약으로 시즌을 마무리지었다.

2.5 2011 시즌

2011 시즌에도 유력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꼴찌후보였고, 한국에는 팬도 별로 없다.[14] 차기 시즌 보강은 J.J. 하디 트레이드, 마무리 케빈 그렉 영입, 우에하라 고지 재계약, 지명타자 블라디미르 게레로영입, 데릭 리, 마크 레이놀즈 영입.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보다 돈도 없고, 토론토 블루제이스보다 파워, 투수력 모두 부족하고, 탬파베이 레이스보다 유망주도 없다. 한 번 더 울자. 시즌 개막 시리즈에서 갑자기 연승을 했지만, 결국 DTD. 다만 예년에 비해서 초반부터 5할 승률에 근접한 성적을 내 주목을 하려고 하지만... 결국 69승 93패로 가볍게 지구 꼴찌에 머물렀고 시즌 중후반에 데릭 리우에하라 고지, 마이크 곤잘레스를 모두 트레이드로 내보냈다.[15] 벅 쇼월터 부임 직후 좋아졌던 투수진의 성적이 다시 꼴아박은 게 제일 큰 패인. 몇몇 사람들은 쇼월터를 자르고 다시 감독으로 데려와야 한다고(...) 했을 정도.

하지만 정작 이들이 나간 9월 들어 고추가루부대로 변신하면서 여럿에게 고추를 뿌렸다.(...) 보스턴에게 5승2패를 해서 DTD 와일드카드에서 탈락하는데 영향을 준다거나 벌괴의 25승을 저지한다던가... 결정적으로 시즌 최종전 레드삭스와의 홈경기에서 9회말 2아웃부터 조나단 파펠본을 두들겨서 역전 끝내기 승리를 거두며 에반 롱고리아가 끝내기 홈런을 친 레이스가 와일드카드를 차지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탬파네 조 매든 감독이 오리올스 선수단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 항목을 참조.

2.6 2012 시즌

볼티모어 오리올스/2012년으로.

2.7 2013 시즌

볼티모어 오리올스/2013년으로.

2.8 2014 시즌

201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볼티모어 오리올스 후보 [16]
No.9 데이빗 로우
LF
No.10 애덤 존스★
CF
No.21 닉 마카키스
RF
No.2 J.J. 하디
SS
No.3 라이언 플라허티
2B
No.13 매니 마차도
3B
No.19 크리스 데이비스
1B
No.23 넬슨 크루즈★
DH
No.32 맷 위터스★
C

볼티모어 오리올스/2014년으로.

2.9 2015 시즌

2015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볼티모어 오리올스 후보 [16]
No.12 알레한드로 데 아자
LF
No.10 애덤 존스☆
CF
No.23 트래비스 스나이더
RF
No.2 J.J. 하디
SS
No.6 조나단 스쿱
2B
No.13 매니 마차도☆
3B
No.28 스티브 피어스
1B
No.19 크리스 데이비스
DH
No.36 케일럽 조셉
C
No.56 대런 오데이☆
RP
No.53 자크 브리튼☆
CP

볼티모어 오리올스/2015년으로.

2.10 2016 시즌

2016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볼티모어 오리올스 후보 [16]
No.23 조이 리카드
LF
No.10 애덤 존스
CF
No.45 마크 트럼보
RF
No.2 J.J. 하디
SS
No.6 조나단 스쿱
2B
No.13 매니 마차도
3B
No.19 크리스 데이비스
1B
No.24 페드로 알바레즈
DH
No.32 맷 위터스
C

FA선수중 대런 오데이는 4년 31M규모 계약을 맺었지만, 크리스 데이비스와는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이다. 이에 대비해 1루와 코너외야를 간신히 볼수 있는 마크 트럼보를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그리고 대한민국 두산 베어스의 야수로 FA 시장에 나온 김현수에게 2년 6~8M의 오퍼를 날렸다. 그리고 2년 7M으로 계약에 합의했다. 현재는 메디컬 테스트만 남은 상황. 한국시간 12월 24일 새벽 4시경 공식 입단이 발표되었다. 볼티모어의 현재 코너외야 선수진이 가히 30개 구단들 중 최악 수준이고, 또한 볼티모어 선수들이 워낙 선구안이 나쁘고 뻥야구에 강해서 김현수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1번 타자나 2번 타자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출루만 해 주면 발은 느려도 된다

한국시각 기준 1월 14일, 천웨이인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했으며, 헤라르도 파라콜로라도 로키스로 이적했다. 천웨이인의 공백을 어떻게 메꿀지가 이번 오프시즌의 과제가 된 상황. 파라 공백 따위는 레이몰드로도 충분히 메울 수 있다. 현재 FA시장에 남은 두 빅 외야수,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혹은 저스틴 업튼의 관심을 꾸준히 보이고 있으며, 선발진으로는 요바니 가야르도 등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2억을 요구하는 이분과의 관심도 아직 놓지 못한 상태

그리고 크리스 데이비스와 협상 중 크데가 볼티모어의 7년 154M의 큰 규모의 계약을 차버려서[17], 볼티모어가 크데에게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 상황에서 마침내 세스페데스와의 협상에 돌입했다! 계약 규모는 5년 90M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세스페데스 측은 메츠에 1년 딜로 남느냐, 볼티모어로 가느냐를 고민 중. 결국 크리스 데이비스와는 많은 규모의 디퍼(추후지불)이 포함된 7년 161M에 계약 확정. 하지만 여전히 세스페데스와는 단기계약 가능성이 열어뒀지만 세스페데스는 메츠에 잔류. 대신 에인절스에서 지명할당된 에프렌 나바로를 현금 트레이드로 영입한다.

또한, 한국시간 2월 22일 요바니 가야르도를 영입함으로써 선발진을 강화했다. 다만, 이 과정 중에 좀 문제가 있던 게. 역시 악명이 높은 볼티모어 메디컬에서 실패 소식을 받았고, 그대로 계약이 파기되나 싶었지만... 결국엔 3년 계약이 아닌 2+1 계약으로 가야르도를 영입한다. 이로써 천웨인의 공백은 어느 정도 메운 셈이 되었으나 선발투수진이 모두 우투일색이라는 점은 좀 불안불안하다. 매티스와 브리튼이 선발로 성공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결국 최종 계약 규모는 2+1년 33M.

그리고 외야진 보강을 위해 2월 24일 덱스터 파울러를 3년 35M에 영입했으나, 2일 후인 한국시간 2월 26일 새벽 시카고 컵스와의 1년 8M 재계약 기사가 MLB 오피셜로 나왔다!! 2017년 FA 시장에서 재수를 노릴 생각인 듯 하다.

4월부터 5월 초까지는 승승장구하며 지구 1위를 차지했으나 중반 접어들면서 삐걱거려 결국 보스턴에게 1위를 내줬으며, 5월 26일 휴스턴에게 스윕위기를 당하는 시리즈 3차전에서는 휴스턴과 3연전 시리즈 내에서 팀삼진 49개라는 메이저 리그 기록이라는 굴욕을 만들었다.

크리스 틸먼 외에 마땅한 선발라인이 없는 상황에서도 AL 동부지구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차원이 다른 공격력과 끝판왕 꾀꼬리를 중심으로 한 불펜들의 힘을 바탕으로 후반기에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상승세와 보스턴 레드삭스드류 포머란츠브래드 지글러를 영입하면서 투수보강에 성공했기 때문에 동부지구의 1위싸움은 시즌이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슬아슬한 1위를 유지하다가 결국 7월 19일부터 시작 된 뉴욕 양키스와의 4연전에서 시리즈 1승 3패를 기록하면서 보스턴 레드삭스에게 1위를 내주고 말았다. 이 시리즈 동안 타선의 침묵으로 선발진들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경기 초반부터 리드를 뺏긴 상태로 경기를 이어갔으며, 결국 양키스의 승리공식인 bmc 트리오들이 이닝을 삭제하며 팀은 4연패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에이스 크리스 틸먼이 4연전 마지막 경기에 등판하여 7이닝 1실점의 호투를 보여주었고 브래드 브락잭 브리튼이 남은 이닝을 막아내며 연패를 끊어내게 된다. 그리고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시즌 마지막 시리즈에서 위닝 시리즈를 기록하고 이제 뉴욕 양키스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 9월 30일 현재 87승 75패로 와일드카드 선두자리를 토론토로부터 탈환했다. 그러나 10월 1일 양키스한테 패하면서 같은날 보스턴에게 승리한 토론토와 와일드카드 공동1위가 되었다. 그리고 양키스와의 3연전이자 시즌 마지막 3차전에서 5:2로 승리. 역시 같은날 토론토도 보스턴에 승리하면서 서로의 시즌성적이 동률이되었지만 볼티모어가 토론토와의 시즌맞대결에서 9승10패로 열세이므로 토론토의 홈구장인 로저스센터로 이동하여 와일드카드경기를 원정경기로 치르게되었다.

와일드카드 게임 경기 내용은 2016 아메리칸 리그 와일드카드 게임 문서 참조.

3 이모저모

3.1 팀명과 관련하여

3개의 구단명을 사용했는데, 모조리 다른 구단들과 구단명이 겹친다는 신기한 구단이다.

밀워키 브루어스는 당연히 현존하는 내셔널리그 팀 밀워키 브루어스와 겹친다.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는 세인트루이스에 자리를 잡았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한 때 사용하던 구단명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헛갈릴 수 있는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타킹스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전신이다.[18]

가장 골치아픈 것이 현존하는 볼티모어 오리올스인데, 이 팀명을 사용한 구단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메이저리그 구단이 3개, 마이너리그 구단이 2개로 전부 다 별개의 구단이다. 볼티모어 연고였던 구단들이 이 명칭을 사용한 사례가 많은 것은, 오리올이 볼티모어가 위치한 메릴랜드주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 첫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의 창단멤버였다가 이후 네셔널리그에 가입한 팀으로, 19세기 팀이다. 1882년 창단, 1899년 해체.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휴 제닝스를 포함하여 1800년대에 활약한 볼티모어 오리올스 선수들은 이 팀에서 뛰었다.
  • 두번째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1901년 아메리칸 리그 창립구단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월드시리즈가 열리게 되는 등 아메리칸 리그가 자리를 잡게 되자, 뉴욕에도 아메리칸 리그 구단이 있어야 한다라는 명분으로 뉴욕으로 이동, 뉴욕 하이랜더스가 된다. 이 팀이 바로 현재의 뉴욕 양키스이다.
  • 세번째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마이너리그 팀으로, 기존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떠난 1903년에 창단되어, 1914년에 없어졌다. 이 팀은 볼티모어가 고향이었던 베이브 루스가 데뷔한 구단으로 유명한데, 1914년 메이저리그와 붙어보겠다고 창설된 페더럴 리그팀으로 볼티모어 파라핀스가 창단되면서 벌어진 대대적인 경쟁으로 재정적 문제에 직면한 구단주 잭 던이 루스[19]보스턴 레드삭스에 팔았고, 1905년 볼티모어를 떠나 버지니아리치몬드로 이동했다. 하지만 페더럴리그가 엎어지면서 마이너리그 팀 가운데 하나로 다시 전락했고, 2016년 현재도 AAA마이너리그 팀 Syracuse Chiefs로 존재한다.
  • 네번째 볼티모어 오리올스도 마이너리그 구단으로 1916년 창단하여, 1956년 없어졌다. 페더럴리그가 2년만에 망하고 볼티모어 연고지에 다시 공백이 생기자, 잭 던이 다시 돌아와서 구단을 만들었다. 이 마이너리그 구단은 레프티 그로브가 20세에 데뷔한 구단으로 유명하다. 잭 던 구단주가 레프티 그로브 만큼은 안 팔려고 했기 때문에 그로브의 메이저리그 데뷔가 상당히 미뤄지는데 큰 공헌을 했다[20]. 이후에도 메이저리그 구단과 별개로 운영이 되었으나, 메이저리그 구단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가 볼티모어로 이전해오면서 버틸 수가 없어지면서 다시 리치몬드로 이전하여 리치몬드 버지니안스가 되었고, 1964년 독자적인 구단운영을 포기하면서 톨레도 머드핸드스로 변했다. 이 팀은 2016년 현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 AAA팀으로 존재한다.

3.2 아시아와의 인연한국과의 악연

대구 상원고의 前 투수 김성민(1994)을 스카웃하려다가 출입금지를 먹은 구단이기도 하다.

단장인 댄 듀켓이 친아시아파이다 보니 볼티모어는 유독(?) 아시아 선수 중에서 투수를 영입하려 많은 공을 들였던 팀이다. 하지만 한국인 선수가 볼티모어에 입단한 사례는 한 어린이가 오기 전까지 없었다. 그리고 이 어린이 덕분에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전망...인줄 알았는데 덩치 큰 외야수를 2년뒤에 다시 데려갔다

위에 설명한 대로 단장이 친아시아 성향이 있어서 대만 선수도 영입했다.

보스턴 레드삭스우에하라 고지의 MLB 데뷔 팀이 볼티모어였기도 하며 현재 볼티모어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던 타이완 출신 좌완투수 천웨이인도 있다.[21] 다만 아시아 투수들에게 항상 재미를 보지 못한 적도 있는데,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출신의 와다 츠요시의 경우 2년 계약을 맺고 나서 바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볼티모어가 큰 손해를 본 채 시카고 컵스로 이적하면서 볼티모어가 새로운 선수와 계약을 할 때 메디컬 테스트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윤석민과 3년 575만불 계약을 맺었으나 메이저도 아닌 트리플A에서 영 좋지 못한 성적을 보여주어 방출대기 조치를 취했다.

2011 시즌을 마치고 FA를 선언하여 해외 진출을 타진했던 정대현류현진보다도 먼저 KBO 사상 첫 메이저리그 직행이라는 선례를 만들 뻔 했던 팀이 볼티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메디컬 테스트에서 떨어지면서 해외 진출이 무산되기도 했다. 2013 시즌 후에는 또 다른 한국인 선수 윤석민이 볼티모어의 문을 두드리면서 과연 볼티모어에서 첫 한국인 투수를 데려올지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데려왔다 망했어요. 이보다 앞서 동국대를 중퇴한 투수 윤정현과 계약했는데 계약금이 불과 3만 달러여서 사실상 로또를 긁은 것과 마찬가지.
그리고 2015시즌 종료후 이번에는 FA자격을 취득하고 MLB진출을 선언한 김현수와 2년 700만$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하였다. 우타 일색인 팀에 좌타 외야수인지라 무난히 입성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김현수는 김현수대로 구단은 구단대로 욕을 들어먹고 있다. 이대로라면 한국인은 다시는 볼티모어로 가지 않게 될지도.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김현수가 잘해줌으로써 가능성이 살아날지도?

한국에서 뛰었거나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 중에서 여기에 뛰었던 선수들이 좀 있다. 루크 스캇을 비롯하여 펠릭스 피에,레다메스 리즈,관광객브라이언 배스,조쉬 벨,하이로 어센시오 등등. 어째 온 선수나 간 선수나 끝이 좋은 선수가 없다.

한국의 야구팬들에게는 2016년 김현수 계약에 대한 이상한 대응으로 과거 정대현 메디컬 테스트, 윤석민 마이너행, 아울러 고졸 유망주 김성민 투수 탬퍼링 등 한국 선수에 대해 좋지 않았던 사건까지 재조명되며 한국팬들한테 양아치 구단이라고 폭풍디스를 받고 있다. 이로써 볼티모어는 텍사스 레인저스를 능가하는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무덤으로 등극했다. 그러나 김현수가 맹활약 한 덕분에 많이 희석되고 있는 중.

3.3 홈구장

3.4 영구결번

2012년에 캠든 야드 개장 20주년을 기념하여, 캠든 야드 광장에 아래 6명의 영구결번 선수들의 동상을 세우고 있다. 일명 "오리올스 레전드 기념 시리즈". (Orioles Legends Celebration Series)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영구결번
4 5 8 20
얼 위버브룩스 로빈슨칼 립켄 주니어프랭크 로빈슨
22 33 42
짐 파머에디 머레이재키 로빈슨


4. 얼 위버(Earl Weaver) : 1970년대 팀의 최고 전성기를 이끌었던 감독으로 명예의 전당에도 이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들어갔다. 통산 1480승을 달성.

5. 브룩스 로빈슨(Brooks Robinson) : 통산 2,848안타를 기록할 정도로 공격력도 훌륭한 편이었지만, 그보다 더 유명한 것은 사기적인 수비 실력. 도저히 그가 지키는 3루 쪽은 뚫을 수 없다는 평까지 나올 정도였다. 볼티모어에서만 23시즌[22]을 뛰며 1970년대 팀의 최전성기를 이끌며 16번의 골드글러브와 18번의 올스타에 선정된 팀 최고의 스타.

8. 칼 립켄 주니어(Cal Ripken, Jr.) : 어니 뱅크스의 뒤를 잇는 공격형 유격수로 통산 431홈런에 1695타점, 3184안타를 기록했고, 8번의 실버슬러거와 두 차례 리그 MVP, 19번의 올스타에 선정된 당대 최고의 스타. 그러나 무엇보다 유명한 것은 유격수로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 기록인 2,632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볼티모어 뿐만 아니라 전 미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슈퍼스타.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20. 프랭크 로빈슨(Frank Robinson) : 신시내티 레즈에서 버림받는 트레이드를 당해 옮겨왔지만, 여기서 더 맹활약하면서 통산 586홈런을 달성한 한 시대를 풍미한 강타자. 로빈슨의 합류 이후, 팀은 최고 전성기를 열었고, 본인은 양대리그에서 MVP를 수상한 유일한 선수가 되었다. 여담으로 선수생활 막바지 선수 겸 감독을 뛰면서 MLB 최초의 흑인 감독이 되기도 했다. 물론 국내에서는 김선우를 차별대우한 꼴통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22. 짐 파머(Jim Palmer) : 1970년대 야구판의 섹시 스타이자, 볼티모어가 가진 최고의 에이스. 볼티모어에서만 20년을 뛰면서 팀에게 세 번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안겨줬고, 선수 자신은 세 차례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1990년 92.6%라는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

33. 에디 머레이(Eddie Murray) : 행크 아론, 윌리 메이스와 함께 500홈런과 3000안타를 동시에 달성한 선수. 스위치히터로서 역사상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선수이기도 하다.

42. 재키 로빈슨(Jackie Robinson) : 전 구단 영구 결번.

4 계약중인 마이너리그 구단

4.1 트리플 A

노폭 타이즈
Norfolk Tides
창단1961년
계약년도2007년
소속리그/지구인터내셔널 리그 남부지구
연고지버지니아 주 노퍽
홈 구장하버 파크

KBO 리그 한정으로 믿고 쓰는 노폭 타이즈로 유명하다. KBO 리거를 키우는 노폭 타이즈

4.2 더블 A

보위 베이삭스
Bowie Baysox
창단1993년
계약년도1993년
소속리그/지구이스턴 리그 서부지구
연고지메릴랜드 주 보위
홈 구장프린스 조지 스타디움

4.3 싱글 A

프레데릭 키즈
Frederick Keys
창단1989년
계약년도1989년
소속리그/지구캐롤라이나 리그 북부지구
연고지메릴랜드 주 프레더릭
홈 구장해리 그루브 스타디움
델마바 쇼어버즈
Delmarva Shorebirds
창단1991년
계약년도1997년
소속리그/지구사우스 애틀랜틱 리그 북부지구
연고지메릴랜드 주 솔즈베리
홈 구장아서 W.퍼듀 스타디움
애버딘 아이언버즈
Aberdeen IronBirds
창단1977년
계약년도2002년
소속리그/지구뉴욕 펜 리그 맥나마라지구
연고지메릴랜드 주 애버딘
홈 구장립켄 스타디움

5 선수 목록

볼티모어 오리올스/선수 목록으로
  1.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사용하던 로고인 카툰 버드를 리모델링해서 쓰고 있다. 흰색 바탕의 카툰 버드를 홈경기에서 사용하며 검정색 바탕의 카툰버드는 원정경기에서 사용한다. 이거 말고 O's 모자도 사용중이다.
  2. 거포에 환장한 타력덕후로 유명하다.
  3. 공식 직함은 'Executive Vice President, Baseball Operations'.
  4. 노폭전드마이너리거는 제외.
  5. 현지 방송사에서는 오리올스의 약자인 O's로 표기되는 경우 또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사실상 볼티모어의 경기를 송출하는 방송사에서는 거의 O's 로 표기된다고 봐도 무방.
  6. 현재의 밀워키 브루어스와는 무관하다. 현재의 밀워키 브루어스는 1969년 시애틀 파일러츠로 창단된 팀이었다.
  7. 여담이지만 베이브 루스가 처음 프로입단을 한 구단도 볼티모어 오리올스지만 현재의 오리올스와는 관계없다.
  8. 칼 립켄 주니어의 아버지
  9. 원래는 이자리에 미식축구 겸용으로 7만석짜리 돔경기장을 지으려고 했다. 그런데 돈먹는 하마인 돔경기장 건설 비용 문제로 건설이 질질 끌리다가 백지화 되면서 오리올스는 1979년 구단주가 교체되고 홈구장을 같이쓰던 NFL 볼티모어 콜츠가 1983년 인디애나폴리스로 야반도주하고 만다. 결국 그 자리는 야구장 캠든 야드가 세워진다.
  10. 이때 구단주 피터 앙헬로스가 했던 유명한 말이... 투수에게 1천만 달러를 주는 것은 미친 짓이다. 이때가 2000년 겨울이었고 당시만 해도 천만달러는 초특급 선수만이 가능한 것이었지만... 볼티모어는 지금도 투수 1명에게 천만달러를 준 적이 없다. 그 대가로 볼티모어의 투수진은 2000년대 아메리칸리그의 최악으로 손꼽힌다.
  11. 뭐 선수들을 탓할 필요도 없는 게 2년전인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그리스계라는 이유만으로 당시 트리플A에서 메이저 콜업 예정이었던 닉 마카키스(할아버지가 그리스 출신이다)등 자기 팀 마이너리그에 있던 그리스계 선수 두명을 그리스 대표로 참가시키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구단주인 피터 앙헬로스가 자기가 그리스 계라고 당시 급조된 그리스 야구 대표팀에 소요되는 비용을 전부 다 대줬다. 유니폼 값, 훈련비용 등등(...)
  12. 영원한 톱클래스 양키스와 라이벌 레드삭스, 신흥 강호로 떠오른 탬파베이, 그리고 못해도 승률 5할 안팎 혹은 4위는 찍는 토론토...
  13. 벅 쇼월터가 오기 전까지 32승 73패. 팀 승률이 .300에 걸쳐 있었다. 쇼월터가 오면서 34승 23패로 급반전. 그나마 4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14. 이는 국내 MLB관련 매장에서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볼티모어 유니폼이나 모자는 언제든지 구입 가능하다.
  15. 우에하라를 레인저스로 보내고 얻어온 선수가 토미 헌터, 그리고 2013년 53홈런의 주인공 크리스 데이비스.
  16. 16.0 16.1 16.2 전체 투표 선출자는 이름 뒤에 ★, 추천 선출자는 이름 뒤에 ☆가 붙는다.
  17. 중요한 것은 이건 엄연히 구단 측이 제시한 값이다. 구단측도 상당한 오버페이를 감안하며 제안했는데 거절당했으니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다.
  18. 정확하게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전신인 브라운스 바로 직전에 사용했던 창단 팀명.
  19. 루스외에 주전급 선수 2명이 포함된 딜이었다.
  20. 레프티 그로브는 1925년에야 필라델피아와 계약하게 된다. 이적료는 베이브루스보다 더 비쌌다.
  21. 천웨이인은 2016시즌 마이애미 말린스로 이적
  22. 보스턴 레드삭스칼 야스트렘스키와 함께 원클럽맨 선수로서 가장 오래 뛴 기록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