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모야마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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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모야마 사다노리 국철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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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차량

下山事件 (しもやまじけん)

일본에서 1949년에 발생한, 일본 국철 3대 미스테리 사건중 하나.

이 사건의 피해자인 시모야마 사다노리(下山 定則)는 덕업일치를 이룬 좋은 예로 꼽혀야 할 인물이었다. 사다노리는 아버지의 직업이 판사여서 여러 지방을 전전하였는데, 살고 있는 도시의 역 시간표를 달달 외우고 다녀 많은 사람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사다노리의 암기력은 덕질은 물론 공부에도 도움을 주었다. 구제 고등학교인 제3고등학교와 도쿄제국대학 기계공학과를 입학한 것은 물론 덕업일치를 이루기 위해 철도성에 취직하였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전쟁 이전의 철도성 대신에 해당하는 국철의 총재 자리에 올랐으니 이쯤 되면 덕업일치의 좋은 예로 칭송받아야 할 사람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시모야마를 혼란기 일본에서 일어난 불행한 사건의 희생자로 기억하고 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시모야마 사건 때문이었다.

1949년 7월 5일, 일본국유철도(국철)의 총재인 시모야마 사다노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길에 올랐다. 그는 출근 도중 운전기사에게 니혼바시미츠코시 백화점에 가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이른 아침이라 미츠코시 백화점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던 상태였고 차를 돌려 도쿄역 앞의 치요다 은행(오늘날의 미츠비시 도쿄 UFJ 은행)에 들렀다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뒤, 다시 미츠코시 백화점으로 돌아왔다.

오전 9시 37분경, 시모야마는 운전기사에게 5분정도 기다리라고 말한 뒤 미츠코시 백화점에 들어갔지만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당시 일본 국철은 정리해고 문제로 초긴장 상태였고 실종 당일에도 이 문제에 대한 회의가 예정 되어 있었는데 시모야마 총재가 나타나지 않자 자택에 연락을 했고, 아침에 정상적으로 출근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국철은 발칵 뒤집혔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었는데 다음날인 7월 6일 자정을 넘긴 12시 30분, 국철 죠반선 키타센쥬역아야세역 사이의 선로에서 시모야마 총재가 열차에 처참하게 치인 채 죽어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 전국은 발칵 뒤집혔다. 일본의 유력 언론인 요미우리, 아사히, 마이니치는 특별취재단을 꾸려서 사건을 적극적으로 취재했다. 경찰 역시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

수사과정에서 경찰은 미츠코시 백화점 내에서 시모야마를 목격했다는 목격자들을 찾아냈다. 목격자들은 시모야마가 몇 명의 남자들과 함께 있었다고 증언했고, 이후 시모야마는 에이단 지하철(지금의 도쿄 메트로) 긴자선아사쿠사행 열차에서 목격되었다. 실종 당일인 7월 5일 오후 1시 40분경에 시모야마의 시체가 발견된 지점 근처인 도부 이세사키선 고탄노역 개찰구에서 개찰구 담당직원과 간단한 대화를 나눈 것도 밝혀졌고 이후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고탄노역 근처의 스에히로 여관에 머물렀던 것도 밝혀졌다. 여관을 나선 뒤 오후 8시까지 고탄노역 근처에서부터 시체가 발견된 지점까지 시모야마와 비슷한 몸집과 복장을 한 사람을 봤다는 증언이 연이어 경찰과 각종 언론들을 통해 쏟아졌다.

시모야마는 7월 6일 오전 12시 20분경에 죠반선 미토 방면의 선로에서 화물열차에 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과연 생전에 친 것이냐, 사후에 친 것이냐를 놓고 법의학적 판단이 엇갈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도쿄대 법의학과 후루하타 다네모토 교수는 시모야마의 시체에 난 상처들에서 생활반응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사후에 열차에 치인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다. 즉 시모야마는 이미 열차에 치이기 전에 살해되었고, 이후 사인을 위장하기 위해 철로에 시체를 가져다 놓았다는 이야기였다. 반면, 현장을 검증한 도쿄도 감찰 의무원인 야소시마 신노스케는 시모야마가 자살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품었다. 야소시마는 시모야마가 생전에 열차에 치인 것이 분명하고 후루하타 교수가 증거로 제시한 출혈이 거의 없던 것에 대해서도 당시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피가 비에 씻겨 내려갔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여기에 게이오 대학의 나카다테 히사베 교수도 야소시마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하지만 나카다테 교수는 시모야마의 시체를 직접 보고 판단한 건 아니었다) 생전에 열차에 치였느냐, 사후에 치였느냐는 시모야마가 자살인가 타살인가를 가리는 중요한 법의학적 판단이었기 때문에 결국 일본 국회 법무 위원회는 후루하타, 나카다테 교수와 나고야 의대의 코미야 교수등 세 명을 증인으로 불러 법의학적 판단을 들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후루하타는 "난 단지 사후에 치였다고 보이는 해부학적 소견을 말했을 뿐이며 자살, 타살을 단정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언론인들도 사건을 추적해나갔다. 아사히신문의 야다 요시미 기자와 마이니치의 다이라 쇼이치 기자가 시모야마 사건을 추적한 대표적인 기자들이지만 이들의 보도는 엇갈렸다. 야다 요시미는 도쿄대의 법의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시모야마의 사체에 묻은 기름이 열차의 정비에 쓰이지 않는 식물성의 누카유 인 것과 시체의 상태와는 달리 시모야마의 가죽구두가 열차에 짓이겨진 등 사체의 상태와 현장의 상황이 일치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시모야마는 모처에 감금되었다가 살해되었고 선로에 시체가 내버려졌다가 열차에 치인 것이라 보도했다.
나아가 야다 요시미는 연합군 범죄 수사 연구실 소속의 미군 포스터 중사로부터 사건 현장에서는 혈흔이 얼마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밝혀냈다는 정보를 입수한 후, 루미놀 반응을 이용해 사건 현장에서 보다 위쪽에 있는 우에노 방면에서 혈흔을 찾아내는데 성공했다. 경시청이 좀 더 광범위한 조사를 한 결과 아라카와 철교에서 사건현장까지 여러 군데서 혈흔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혈흔은 근방 폐가의 문, 마루에서도 발견되었기 때문에 야다 요시미는 시모야마의 타살설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게다가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시모야마의 수첩에 적힌 일부 메모에서 시모야마 살해의 배후 단체에 대한 암시가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반면 마이니치신문의 다이라 쇼이치는 시모야마가 자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이라 쇼이치는 시모야마의 생전 행적을 추적하면서 시모야마가 죽기 전날 이상한 행적을 보였음을 밝혀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거나, 철도 공안실에서 이상한 태도를 보인 점 등을 들어 시모야마가 자살한 게 아닌가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더욱이 시모야마는 조울증 증상이 있었고 대규모 인원 해고의 책임을 맡으면서 이 조울증이 악화되어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이라 추리했다.

이런 가운데 사건 수사는 미궁에 빠졌고, 경찰은 잠정적으로 시모야마가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지만 이를 공식 발표하지는 않은 채 유야무야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 1950년 1월 문예춘추지에 경찰의 시모야마 사건 수사 보고서가 게재되었는데 이 보고서에서도 자살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지만 야다 요시미나 사회파 추리작가 마츠모토 세이초는 경찰 보고서의 모순점을 지적했다.

당시 일본의 분위기는 시모야마가 일본 국철내의 노조 운동을 하는 직원이나 좌파성향 직원들을 정리 해고하려 했기 때문에 좌파나 일본 공산당쪽에서 시모야마를 살해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품었다. 하지만 끝내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시모야마의 죽음을 놓고서 타살설과 자살설이 대립하고 있다. 타살설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시모야마의 살해 배후로 GHQ나 미군 방첩부대, 구 일본군의 특무기관 출신 비밀 결사 등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이 시모야마를 살해한 뒤 이를 일본 공산당에게 뒤집어씌우려 했다는 것이다. 반면 자살 설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시모야마가 정신적 압박과 우울증으로 자살했다고 반박한다.

어느 정도는 자살 설에 좀더 무게가 가기는 하지만, 시모야마 사건의 진상은 오늘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고 그런 탓에 일본 국철 3대 미스테리 사건의 하나로 불리고 있다.

데즈카 오사무의 만화 아야코,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 빌리 배트에서 시모야마 사다노리와 시모야마 사건이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