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페레스

역대 이스라엘 총리
1대2대3대-4대5대6대7대
벤구리온샤렛에쉬콜알론메이어라빈베긴샤미르
8대9대10대11대12대13대14대15대
페레스네타냐후바라크샤론올메르트네타냐후--


Shimon Peres
(1923년 8월 2일 ~ 2016년 9월 28일)


파일:ZK2YA8R.jpg

1 소개

이스라엘의 前 총리, 前 대통령이다.

2 생애

폴란드의 비슈니예프(현재는 벨라루스의 비시네바)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폴란드에 있을 당시의 이름은 시몬 페르스키(폴란드어: Szymon Perski)였다.

1934년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였고, 키부츠에서 일하며 청년 조직에서 활동하며 주목을 받았다. 페레스는 20대에 정계에 입문해 외무장관, 국방장관 등 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84년 리쿠드당 이츠하크 샤미르 당수와 공동 총리를 맡는 등 3차례 총리를 역임했다.94년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출범시킨 오슬로협정 체결의 공로를 인정받아 이츠하크 라빈 총리,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있어서는 가자지구 정착촌 철수를 주장하고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통한 평화정착 방안을 지지하는 온건파지만 이스라엘의 핵 보유와 관련해서는 초기 이스라엘의 핵 프로그램을 이끄는 등 강경한 핵 지지자이다. 아랍계나 이란에 보면 시오니스트들은 그놈이 그놈이다 하겠지만 페레스 본인은 지도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안보 위협에 처하면 강경한 수단을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스라엘 정계 지도자들을 보면 답이 없는 강경파가 대다수이다. 그나마 이츠하크 라빈이나 페레스 본인은 대팔레스타인 정책에 대해 강경파에다 초극우인 네타냐후, 아리엘 샤론에 비하면 그나마 가장 온건한 편이다. 그리고 라빈이 하레디에게 암살당하면서 페레스도 그 다음이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와 엄중한 경호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이스라엘 극우 극단파에게 비난도 많이 당해서 알 자지라와 인터뷰를 한 다음에 이스라엘 언론에서 알 자지라가 이스라엘 꽉 막힌 방송이나 언론보다는 훨씬 말이 통하던데요. 알 자지라가 무조건 친아랍이라고 하면서 욕만 하는 우리 이스라엘 언론인들,거울이나 보시죠?"라고 자국 언론을 디스하며 자신도 무척 불쾌하게 여겼다. 사실 유일하게 알 자지라와 인터뷰한 이스라엘 최고위 정치인이기도 했다.

2007년 6월 모셰 카차브 대통령이 임기 종료를 앞두고 성추행 혐의로 직무가 정지되자 페레스는 국회 간선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며 2014년 임기를 마쳤다.[1] 2012년에는 미국 유대인들의 정계 모임인 AIPAC에서 이란의 핵문제에 대해서 연설을 하였으며 이 모임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초대를 받아 참석했다. 시몬 페레스를 오바마 대통령이 상당히 존경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며 이날 비공식적인 면담도 가졌다고 한다,

2014년에는 베냐민 네타냐후의 '유대민족 국가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2016년 9월 13일에 뇌졸중으로 쓰러졌으며, 28일 오전 숨을 거두었다. 이 때의 나이가 93세로 무척 오래 살았다. 이 날 네터냐후 총리와 이스라엘 정치인들은 페레스의 죽음을 슬퍼했다. 또한 앞서 사망한 샤론 전 총리를 비판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도자 마흐무드 압바스도 페레스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조문하였고, 샤론을 거칠게 비판한 하마스도 페레스의 죽음에 대해서는 수위를 낮춘 비난을 하였다.
  1. 이스라엘은 내각제라 대통령의 권한이 없으며 주로 존경받는 원로 정치인이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