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루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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阿比留文字

1 개요

일본신대문자 중 하나로 대마도(쓰시마 섬)의 우라베 아비루(占部阿比留) 가문에 전해져 내려왔다고 하여 아비루 문자라고 한다. 일본어학자 야마다 요시오는 "소위 신대문자론"에서, 아비루 문자는 한글을 기본으로 일본어의 음성에 맞추어 개량을 더한 문자라고 주장했다.

한글과는 달리 받침이 없고, 자음+모음의 구조로 되어서 일본어 50음도를 표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한글 모음 중에서 ㅏㅣㅜㅓㅗ를 사용하는데 이 중 ㅏㅣㅜㅗ는 일본어의 あ, い, う, お단에 대응하고, ㅓ는 え단에 대응한다. 자음의 경우 あ행은 U[1], か행은 ㄱ, さ행은 ㅅ, た행은 ㄷ, な행은 ㄴ, は행은 ㅅ아래 ㅇ이 놓인 문자, ま행은 ㅁ, や행은 エ, ら행은 좌우가 뒤집힌 ㄷ(혹은 ㄹ의 하단부를 제거), わ행은 ㅇ이다. ん은 'Uㅣ'로 나타낸다.

누가 봐도 한글을 베껴다가 일본어에 맞도록 다듬어 만든 문자다. 일본에서도 학계나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한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대마도에서 한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문자라고 보고 있다.

2 한글의 원조라는 주장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식민사관에서는 한글이 일본에서 왔다고 주장하기 위해 신대문자를 근거로 해서 세종대왕이 이 문자를 베껴 훈민정음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었다.

현대에는 에도 시대에 훈민정음을 접한 신토 계열의 인사들이 대충 베껴다가 새긴 다음, 신화 시대부터 내려오는 문자가 새겨진 유물이 있다고 속여서 자기 신사의 명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날조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측된다.

현대 일본인은 양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대도 하지 않는 조잡한 날조이며, 혐한초딩조차도 웬만큼 개념이 없지 않으면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 속이 뻔한 물건이다. 그래서 혐한초딩들 사이에서 조차 비주류로 취급된다. 하지만 어느 세상에나 나사가 빠진 존재들은 있기 마련이어서, "한글은 신대문자를 배껴서 만든 짝퉁이다." 라는 주장을 정말 진지하게 하는 혐한들도 있다. 그 수준이 흡사 사이비 종교 수준으로 맹신하는 수준. 우익들의 만행은 끝이 없어서 훈민정음 상주본을 일본 우익들이 구해다가 날조하여 아비루 문자 기원설을 뒷받침하는데 쓰려 한다는 의혹이 있다.

대한민국의 어떤 사람들은 이 신대문자를 근거로 해서 세종대왕이 민간에 존재하는 다른 문자를 이용해서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황당한 가설을 주장했으며 환빠들은 이를 널리 퍼트리기도 했다.[2] 훈민정음이 고전(古篆)의 모양을 본따 만들었다는 것을 보고 하는 소리. 한자 뜻도 제대로 모르고 설레발치는 거다.[3]

일부의 일본인들이 "한글 같은 복잡한 문자를 갑자기 만들어내는 것은 말도 안된다. 보다 간단한 아비루 문자에서 한글이 진화해나왔을 것."이라는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

3 반박

신대문자가 한글의 원조라는 주장은 다음의 세 가지 점때문에 부정된다.

3.1 아비루 문자로 쓰여진 문헌의 부재

문자는 언어를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신대문자로 쓰여진 자료라곤 비석 등 단편적인 것밖에 없고 체계적으로 그 언어를 알 수 있을만큼 충분한 양의 문헌을 찾을 수 없다. 물론 긴 글을 베꼈다면 들통났을 것이니 만들 수 없었겠지 이 점은 가림토 등도 마찬가지.

3.2 등장시기와 등장장소

아비루 문자의 등장 시기가 에도 시대 이후이며, 발견되었다는 지역이 조선통신사의 여로(旅路)와 겹친다.

신대문자가 언급되기 시작하는 시기는 16세기 이후의 에도시대로 국수주의 학문인 국학의 대두와 더불어 등장했으며, 그 이전의 일본 고대문헌이나 다른 자료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원래 아비루 문자는 코마히토노후미(こまひとのふみ)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고려사람의 글'이라는 의미. 그래서 아비루 문자는 본래 신대문자로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대마도에서 한글을 배운 사람들이 일본어를 표기하기 위한 문자를 만들기 위해 한글을 빌려온 시도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니까 원래 신대문자랍시고 거창하게 만든게 아니라 그냥 한글을 빌려다가 쓴 것일 뿐이라는 것.

3.3 신대문자가 근세 일본어의 음운체계를 반영한 점

신대문자가 고대 일본어의 문자였다면 고대 일본어의 음운적 특징을 반영했을 것이나, 신대문자는 16세기 이후 근세 일본어의 음운구조와 일치하며 고대 일본어에만 있었던 음운을 표기하는 글자가 없다. 실제로, 상대 특수 가나 표기법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고대 일본어는 현대의 일본어보다 음가가 많았거나, 최소한 현대 일본어에서는 똑같은 글자가 고대에는 구분되어서 사용됐다는 증거가 있으므로 진짜 고대 일본어를 반영한 문자라면 최소한 50개가 넘는 문자가 존재해야 되는데, 신대문자에서는 그런 거 없고 50음도 기준으로 만들어져있다.

3.4 훈민정음 초기 형태와의 불일치

아비루 문자가 훈민정음의 전 형태라고 보기에는, 훈민정음의 초기 형태를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훈민정음의 모음부호는 본래 마치 음양팔괘처럼 '점과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아비루 문자처럼 '선과 선'으로 바뀌게 된 것은 뒷날에 궁서체가 나타나면서 모양이 변형된 탓이다. 그런데 아비루 문자는 변형된 이후의 훈민정음처럼 선으로 이루어진 모음 부호를 가지고 있다.

또한 겉모양은 비슷해보이지만 훈민정음 혜례본을 통해 드러난 한글의 정밀한 제작원리와 음운원리에 비하면, 당시 이미 널리 받아들여지던 일본어의 50음도 체계를 가로 세로로 짜맞췄을 뿐인 아비루 문자는 너무나 조잡하다. 모습은 비슷해도 사실 문자를 제작한 근본 원리에 있어서는 한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1. 단 い와 え의 경우 や행에 준용하여 'エㅣ', 'エㅓ'로 처리했다. yi, ye?, う는 わ행에 준용하여 'ㅇㅜ'로 표기. wu 아마 , 등에 해당하는 가나 음가가 사라졌듯, あ행, や행, わ행의 몇몇 글자들의 발음이 합류되는 과정과도 관련이 있을 듯. 순음퇴화에 이와 관련된 서술이 있다.
  2. 퇴마록이 좋은 예시. 작가인 이우혁이 상당한 환빠다.
  3. 환빠들은 입만 열면 위대한 한민족 운운하지만, 시살 그들의 주장 상당수는 오히려 일제의 식민사관을 강화하는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