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현

선수 시절
이제는 해설위원
이름안경현(安庚鉉 / Gyung-Hyen Ahn)
생년월일1970년 2월 13일
신체182cm, 83kg
출신지강원도 원주시
학력원주중앙초-원주중-원주고-연세대
포지션내야수(1루수, 2루수, 3루수, 유격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92년 2차지명 2라운드 (전체 18번, OB)
소속팀OB/두산 베어스(1992~2008)
SK 와이번스(2009~2010)
선수시절
응원가
현경과 영애 - 참 예쁘네요[1][2]
역대 수상

2001년, 2003년, 2005년 한국프로야구 2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
2001년 한국프로야구 플레이오프 MVP
OB/두산 베어스 등번호 3번
이재우 (1991)안경현 (1992~2008)최주환 (2009)
두산 베어스 역대 주장
김태형
(1998~2000)
안경현
(2001~2002)
김민호
(2003)
두산 베어스 역대 주장
김민호
(2003)
안경현
(2004)
김동주
(2005)

1 소개

야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 없다. 마지막에 이기면 된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준결승 일본전

야오이마이
한국프로야구 두산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전 SK 와이번스의 내야수. 2016년 현재는 SBS 스포츠 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 선수 시절

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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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원주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원주고등학교 시절 학교가 약체라 대학은 언감생심이라 여겼지만, 동기들중 유일하게 연세대에 합격한다.[3] 입학 당시 연세대 분위기가 다른 대학과 달라 연습량도 무척 적은 편이였다. 연세대시절 국가대표에도 뽑히고 무난한 대학생활을 했던 덕분인지, 1992년 OB 베어스에서 2차 2순위로 지명받아 데뷔했다.[4] 1990년대 말까지는 3루수를 맡다가 김동주의 등장 이후 주로 2루수로 출전했다. 2001년, 2003년, 2005년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홍성흔이 등장하기 전에는 베어스의 미남격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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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주, 홍성흔과 함께[5]

20대까지는 수비에 비해 공격력이 다소 떨어지는 선수였으나 30세 이후 본격적으로 재능을 발휘, 2001년 타율 0.282, 17홈런, 87타점, OPS 0.835로 타이론 우즈 - 심재학 - 김동주 클린업의 뒤를 받쳐주는 막강한 하위타선의 중심[6]으로 활약했다. 특히 2000년 LG와의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 패색이 짙어진 9회초 2사에서, 김용수는 왜 내려갔을까장문석을 상대로 극적인 동점 홈런을 날려 승부를 연장전까지 끌고간 것은 지금까지 두산팬들에게 자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있다.[7] 이후에도 2003시즌 타율 0.333, 10홈런, 72타점, OPS 0.863, 2006시즌 타율 0.284 홈런 15, 타점 70, OPS 0.816의 성적을 올리면서 우즈, 심정수, 심재학 등이 빠진 두산 타선의 중심으로 활약했다.

팬들에게는 2000년대 후반까지 장원진과 함께 각각 안샘, 장샘으로 불리우며 팀의 정신적 리더로 존재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이는 동기생인데도 별로 좋지 못했는데, 전형적인 모범생 고참 스타일인 장원진과 술 좋아하는 자유방임형의 안경현의 성격 차이에 더해서 두 선수를 중심으로 한 팀내 파벌 대립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LG 트윈스의 유지현김재현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듯. 2000년 플레이오프 6차전에서는 팀이 스코어 3:4에, 9회초 2아웃의 패배 일보직전 상황에서 극적인 동점 홈런을 쳐 경기를 연장전으로 이끌고, 이어 심정수가 역전 홈런을 쳐서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짓는 명승부의 주역 중 한명으로 기록되었다.

2003년 올스타전에 선발 선수로 뽑혀서 삼성 라이온즈의 동군 독식[8]을 막았다.

특이한 기록으로 2011년 9월까지 통산병살타 172개로 프로야구 최다 병살타왕이었다. 그런데 2011년 9월 3일 홍성흔이 병살타 2개를 추가하면서 통산 172개로 공동 1위 등극했다. 이날 안경현은 홍성흔에게 축하전화까지 했다고 한다. 이어서 홍성흔은 4일날 병살타 또 한 개를 추가하면서 대망의 병살타왕 등극했고, 안경현은 2위로 밀렸다.홍성흔의 지극한 선배사랑병살왕 홍성흔.

상당히 기인 타입의 인물로 2005년 전까지는 종종 일본 프로야구의 기인으로 유명했던 신조 츠요시와 비교되기도 했다. 운동선수로는 드물게 굉장한 자유방임적 가치관을 지녀서 주장 시절에도 후배 선수들에게 한 번도 집합을 걸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며, 안경현이 주장으로 있던 2001~2002년에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고 우승했다. 엄한 것을 뛰어넘어 똥군기를 일삼는 일부 고참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이 외에도 넉살과 배짱이 두둑하여 다른 팀 라커룸에 슬쩍 나타나서 간식을 훔쳐먹는다든지 상대 팀 집합때 존재감 없이 구석에 서서 상대팀 코치의 말을 엿듣다가 상대팀 코치와 선수들이 모두 혼비백산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선배 야구인들에게는 그리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고, 뒤에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 때 불거졌던 '상대팀과의 사인 교환'설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심지어 약물 설까지도 나오기도 했다. 본인은 극구 부정하고 있고 확증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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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시리즈에서 봉중근과 시비가 붙어 주먹을 날리다 되레 백 바디 드랍을 당한 일이 있었다. 이 장면 이후엔 오히려 스쿨보이로 폴을 얻어내는 고급 테크닉을 구사 그런데 사진을 자세히 보면 표정이 해맑다?

2007년이라 두산에는 홍성흔, 그리고 잘 안보이지만 이대수[9]민병헌[10] & LG에는 이대형, 박경수, 김상현, 최동수, 조인성을 한 그라운드에서 볼 수 있다. 중간중간에 훗날 두산 감독이 된 김태형과 코치 김민호도 있다. 끝의 끝까지 분노하는 김동주와 식빵식빵 거리는 봉중근이 볼거리. 그리고 LG팬들의 봉중근 연호가 파이팅 넘친다. 2분 3초 11시 방향을 보면 조인성과 안경현은 바로 앙금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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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창 vs. 조인성 등장 이전까지 최고로 어색한 사진. 안쌤의 얼굴이 10년은 늙어보인다.

2007년 시즌 중반부터 서서히 기량이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으며, 이때부터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안경현은 불화의 원인은 자신도 모른다고 하며 그렇게 생각하기 싫다고 밝혔다. 결국 2008년 시즌을 앞두고는 아예 전지훈련에서 배제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시즌 중반 팬들의 비난에 못이긴 김경문 감독이 간간이 대타로 기용했으나 시즌이 끝나고 공개적으로 은퇴를 종용했다. 안경현은 이를 거부하고 16년 동안 몸담은 팀을 떠나 SK 와이번스와 계약금 없이 연봉 8천만 원에 계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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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에서는 가끔씩 수비와 뜬금포 한방으로 활약을 해 주기도 했으나 눈에 띄게 떨어진 기량으로 결국 구단 측에 은퇴 의사를 밝혔다. SK 구단에서는 은퇴행사를 치뤄주겠다는 대인배의 풍모를 보여주었지만 본인이 거부했다. 은퇴당시 정황기사.

별명은 안샘. OB 시절에는 구영탄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솩샘

두산의 어느 팬으로 인해 안경신경현이라는 별명도 가졌다. 흠좀무.

1994년 윤동균 감독의 구타에서 비롯된 OB 베어스 항명파동 때 가담한 17명 가운데 마지막까지 두산에 남아있던 선수가 안경현이었으며 결국 2008년을 끝으로 팀을 떠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은퇴 뒤 두산 프론트로 활동 하고 있는 장원진은 당시 항명에 참가하지 않고 전주 숙소에 남아있던 잔류파였으며, 김민호김태형 등 당시 현역이었던 선수 가운데 두산에 코치로 남았던 인물은 전부 항명에 참가하지 않은 잔류파들이거나 항명 이전에 팀을 옮기거나 떠난 사람들이다. 두산 프론트와 당시 17인 사이의 오랜 악감정을 엿볼 수 있는 대목.[11]

안경현이 떠나기 전까지 팀 내에서 장원진을 따르는 인맥과 안경현을 따르는 인맥 사이의 파벌 갈등이 있었다는 설도 있다. 김경문 감독은 선후배간 군기를 강조하는 장원진 쪽을 내심 밀어주었으며 결국 안경현과 그 인맥은 2014년 거의 팀을 떠났다. 안경현 파로 거론되는 선수 들은 홍성흔, 나주환, 정원석, 그리고 김동주이다. 김동주는 프랜차이즈 스타로써 워낙 영향력이 확고하기에 도저히 내칠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1년 김경문 감독의 자진사퇴, 2013년 홍성흔의 FA 복귀(+주장), 2014년 시즌 후 김동주의 쓸쓸한 은퇴 등으로 파벌설이 잊혀진듯 하다.

2010년 9월 은퇴 후,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사설 야구아카데미를 설립하고 유소년 및 사회인 야구 지도자로 새출발했다.

통산 성적은 19시즌동안 1,766게임에 출장, 6,218타석, 5,405타수, 타율 0.274, 1,483안타, 121홈런, 722타점, OPS 0.748다. 커리어 하이는 2003 시즌으로, 이 해에 타율 0.333, 10홈런, 72타점, OPS 0.863을 기록했다.

3 해설자 시절

3.1 2011년

2011년 양준혁과 함께 SBS ESPN의 해설을 맡았다. 선수 인터뷰도 하였다. 봉중근은 아마 안경현과 인터뷰하면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르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일은 없었다.

2011년 1학기부터 그의 모교인 연세대학교에서 스포츠 교양과목인 야구를 강사 자격으로 가르쳤는데 우지원의 농구 과목과 함께 경쟁률이 상당히 치열한 강의가 되었다. 2013년 1학기에도 개설되면서 무려 5학기 연속으로 개설될 정도로 인기가 상당한 모양이다.

6월 1일자 인터뷰도 나왔다 잡초같던 야구인생을 볼수있다.

이 인터뷰에서 장원진과의 불화설이나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설 등등을 해명하기도 했는데, 그 인터뷰에서도 약간은 좋지 않았던 듯한 뉘앙스가 보이기는 했다. 단체생활에서 늘 마음맞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니 어느쪽도 탓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다. 지도자로서 활동하고 싶다는 열망을 강하게 품고 있다.

9월 9일 롯데 자이언츠SK 와이번스 간의 경기에서김강민의 슬라이딩을 쉴드치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었다.

해설 자체는 선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인지 내용 자체는 무난했지만 2011년에는 말투가 굉장히 웅얼거리며 지루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에는 예능감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해설 실력도 늘었다. 목소리가 은근히 강민닮았다. ...안좋은 거잖아?

3.2 2012년 ~ 2014년

2012년 9월 14일 KIA vs 롯데 더블헤더 2차전에서 기아가 7:8로 뒤지고 있는 2사 상황에서 데뷔 첫 타석을 맞이한 황정립이 올라와 초구부터 호쾌한 스윙을 보여주자 첫 타석에 홈런치는 선수도 있다며 과거 데뷔타석 초구 대타 만루홈런을 때린 송원국을 언급했는데, 황정립이 정말 동점 홈런을 때리는 바람에 자신도 "제가 무슨 말을 한건가요?" 라며 어안이 벙벙해했다. 하지만 다들 한명재의 샤우팅만 기억하는건 함정[12]

3.3 2015년

7월 5일 넥센과 두산의 경기에서 고영민의 위험천만한 2루 베이스 블로킹을보고 분노하셔서 후배 고영민을 신나게 깠다. 국제대회였다면 고영민은 들것에 실려나갔을거라면서 극딜 자세한건 고영민항목 참고

2015 WBSC 프리미어 12 11월 8일 일본전 경기에서 안경현은 국내 선수에 대한 지나친 옹호의 해설로 비난을 받았는데 그의 해설은 아무리 국제경기지만 객관적으로 해설자의 눈으로 보지않을 뿐더러 잘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깎아내리는 행태를 보여주었으며 대표팀의 내부문제와 실력을 생각하지 않고 구장탓, 적응기간부족 탓 등 외부적인 탓만 하였다. 국가대항전이라 자국민으로서 어느정도 편파중계는 있을수 있겠지만 도가 지나칠정도의 국뽕스러운 해설에 많은 야구팬들의 빈축을 사게 만들었고 많은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일본과의 준결승 전에서 '오오타니 제외하면 한국 타선 못막는다', '오늘 경기는 수준차이가 아니다. 투수 구속이 10km 차이나는 것이다.' , '야구는 오래 이기고 있을 필요 없다. 마지막에 이기면 된다.' 야오이마이와 같은 끝임없이 까이던 긍정적인 발언이 현실이 됨으로서 순식간에 대한민국 최고의 야잘알로 등극하였다. (...) 3시간 동안 까던 네티즌들 야알못행

3.4 비판

  • 무조건 김성근비호하는 해설로 일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이동걸 빈볼 사건 때에는 "내가 선수생활하던 마지막 해부터는 감독이 빈볼지시하는 일이 없다.", "선수단 내부 갈등이 있다."라고 말하며 빈볼 사건의 책임소재를 선수단에게 돌렸다. 혹사 문제에 대해선"내부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잘 모른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화의 훈련량에 대해선 "지옥훈련은 1년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2년은 해야한다."는 이야기로 비호했다. 한화 이글스의 역대급 부진을 다룬 2016년 4월 18일 SBS Sports 주간야구에서도, 마치 대변인처럼 김성근/김정준 부자를 옹호하면서, 그동안 김성근의 팀운영을 비판해왔던 이순철과 정면충돌하기도 했다. 아무리 김정준이랑 친밀한 관계라지만... 당연히 이순철에게는 탈탈 털렸다.
  • 주간야구에서도 야구계 내부의 잘못도 무조건 감싸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물론 야구계의 선후배 관계가 경직되어 있는 만큼 강하게 발언할수는 없겠지만 선,후배들의 잘못된 행동들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지나치게 돌려 말한다던지, 약물 사용자를 흔한 실수로 치부하며 옹호한다는 반응 때문에 프리미어 12때의 야오이마이 드립 이후에도 안티 지분이 제법 있는 편이다.
  • 세이버매트릭스를 "단순한 숫자에 불과하다"며 신뢰하지 않는다고 주간야구에서 직접 밝혔다. 야구는 확률만으로 하는게 아니라며 세이버매트릭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해설자가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야구팬들이 탄식을 내뱉는 중. 확률을 신뢰하지 않는다면서 정작 허수가 많은 타율, 평균자책점 같은 클래식 스탯에 집착하는 모습은 모순으로, 그야말로 투승타타의 본보기라는 평가.[13]
  • 메이저리그에 대해서도 대단히 무지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일례로 정우영 캐스터가 방송 중계 도중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 애덤 던마이크 트라웃을 예로 들면서 질문을 하자, 누군지 몰라서 버벅인 사례가 있다. 정확히는 정우영이 '애덤 던처럼 볼넷을 많이 얻지만 삼진도 엄청나게 당하는 타자의 가치는 어떻게 보느냐?'는 요지의 질문을 했는데, 그런 타자가 있냐는 식의 말을 하면서 횡설수설했다. 그리고 그 다음번 중계때는 타순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역시 정우영이 '마이크 트라웃도 2번을 치는데 강한 2번 타자론은 어떻게 보느냐?'는 내용의 질문을 하자, 아예 마이크 트라웃을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다. 정우영이 마이크 트라웃의 성적을 이야기하자, '근데 그런 타자가 왜 2번을 치죠?'라면서 강한 2번타자론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14] 위의 세이버매트릭스에 대한 폄하와 함께 현대야구의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전형적인 구세대 야구인이라는 비판이 많다.
  • 김경문 감독과의 오래된 불화가 아직까지 이어지는 모양인지, NC 다이노스 경기에서의 NC에 대한 반응이 상대팀의 선전시에 보여주는 반응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상대적으로 무미건조해서 NC 팬들에게 원성을 사고 있다. 예를 들어, 상대팀이 경기를 가져가는 분위기에서 NC가 역전을 해낼 때,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급격히 쳐지는 게 대충 들어도 확 느껴질 정도. 15초 넘게 맨트를 아예 하지않는 경우가 부지기수. NC팬덤 사이에서 그의 해설이 얼마나 악평인지는 해당 갤러리에서 '안극혐'으로 검색해보면 다 나온다 카더라

4 기타

  • 동계 스포츠가 활성화된 강원도 출신이라 그런지, 원래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없었고 스케이트부가 있었다고 한다. 스케이트 선수 생활을 했었고,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되는게 꿈이었고 부모님도 선수가 되는 걸 원했다. 스케이트부 생활 중 학교에 야구부가 생겼고 안경현은 스케이트부 연습이 끝나고 야구부와 같이 축구를 하며 놀았다. 그러다 야구부에서 안경현에게 방망이 한번 쳐보라고해서 몇번 하다가 야구에 재미를 붙여 야구부로 전환했다. 처음 시작할때는 외야수를 했었다고 한다. 본인은 초등학교 때 야구부가 안 생겼으면 스케이트 선수쪽으로 쭉 갔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스케이팅에 대해 어릴적 꽤 애착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길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해 개인적 호기심이나 아쉬움도 있는 듯. 안경현은 이를 밝히며 농담으로 '김연아선수가 지금 하는 길을 제가 갔을지도 몰라요'[15]라고 했다.
  • 2002시즌 종료 뒤 FA를 통해 LG 트윈스로 이적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당시 LG 감독인 이광환과 잘 해보자며 악수까지 했는데 모종의 이유로 그냥 두산에 눌러 앉았다고.
  • 아들인 안준도 야구선수다. 2016년 현재 휘문고등학교 3학년으로 포지션은 1루수. 동료인 이정후와는 달리 신인 지명은 받지 못했다.
  • 코미디언 김대희를 닮았다 카터라...... 아프리카 스포츠TV의 김마메의 프로야구 코믹스 12회에서 직접 언급했다. 심지어 한 식당에서 김대희로 오인한 팬이 몰래 식사값을 내주고 간 적도 있다고(..).

5 역대 성적

역대기록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1992OB 베어스1929.10330001103.103.182
199375147.204309021015117.306.287
199477151.238365062020024.391.343
1995103268.2807510353834021.396.330
1996125426.25110719284243042.362.316
199769225.284649193431221.453.360
1998116362.2499023063832434.362.310
1999두산 베어스114291.247727073233533.344.322
2000114328.2779116193948141.415.355
2001131457.28212931
(3위)
1178768467.466.368
2002130486.288140244
(4위)
85850549.403.349
2003128475.333
(3위)
158
(4위)
283107265153.467.396
2004125447.280125201105157867.396.372
2005105355.29310419046254153.380.382
2006125423.284120210157045366.440.377
2007109351.27496174
(5위)
24926139.362.341
200851113.25729501129118.327.353
연도소속팀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도루4사구장타율출루율
2009SK 와이번스4258.2071220156118.293.395
2010813.15420012201.385.214
KBO 리그
통산 19시즌
17665405.27414832652012172263937657.398.350
  1. 두산에 안경현 왔어요 ~ 두산에 안경현 왔어요 ~ 아이참~ 멋있네요~ X2... 무한 반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2. 원곡은 Peter, Paul & Mary - Oh, Rock My Soul이다.
  3. 김정준과 연대 동기로 절친이다. 이 시절 김정준 집에 자주 놀러가서 김성근 감독이 모아놓은 일본프로야구 경기 비디오를 많이 봤다고 한다.
  4. OB 입단 동기로 권명철, 장원진이 있다.
  5. 2010년 안경현이 은퇴 직후 통산 병살타 1위였고, 2위가 홍성흔, 3위가 김동주였다.
  6. 안경현-홍성흔-홍원기의 타선을 속칭 안성기로 부르기도 하였다.
  7. 이후 연장 11회에서 심정수가 결승 홈런을 날리면서 두산은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
  8. 올스타에 선정된 10명 중 안경현을 제외한 올스타 9명이 삼성선수였다.
  9. 벤치클리어링 리플레이 영상에 뛰쳐나온 김동주를 말리러 나온다
  10. 봉중근 퇴장 직후 분이 안 풀린 안경현 뒤에 서 있다.
  11. 다만 두산 프런트에서 이후 김상호를 시구로 초청한다던가, 권명철이광우를 코치로 영입하면서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12. 이 경기는 SBS SportsMBC SPORTS+이 동시에 중계했기 때문
  13. 실제 세이버매트릭스를 폄하하는 현장 야구인들이 대부분 이런 식이다. 확률은 믿지 않는다면서 클래식스탯은 절대화하고, 숫자를 무시하면서 자기 기억에만 의존하는 인상비평으로 선수의 가치를 매긴다.
  14. 이게 축구로 비유하자면 K리그 해설자가 '즐라탄이 누구죠?'라고 이야기하는 격이다.
  15. 김연아가 한창 주목받던 2009년,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본인이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