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캐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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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Eric Peter Karros
생년월일1967년 11월 4일
국적미국
출신지뉴저지 주, 해컨색
포지션1루수
투타우투우타
프로입단1988년 드래프트 LA 다저스 6라운드 지명
소속팀로스앤젤레스 다저스(1991~2002)
시카고 컵스(2003)
오클랜드 어슬레틱스(2004)
1992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제프 배그웰
(휴스턴 애스트로스)
에릭 캐로스
(LA 다저스)
마이크 피아자
(LA 다저스)

1 개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전 야구 선수. 현재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한 때 박찬호의 팀 동료로 우리나라에 제법 잘 알려진 선수이기도 하다.

2 커리어

1988년 신인드래프트에서 LA 다저스에 6라운드에 지명받아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199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 14타수 1안타를 치며 메이저의 높은 벽을 실감했으나, 이듬해인 1992년에 타율 .257에 20홈런 88타점을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등극한다. 그리고 캐로스를 시작으로 이후 다저스는 마이크 피아자, 라울 몬데시, 노모 히데오, 토드 홀랜스워스 등 5년 연속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배출한다.

이후 캐로스는 1995년 32홈런 105타점으로 내셔널리그 1루수 실버슬러거상을 수상하는 등 다저스의 주축 타자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통산타율 .268이 말해주듯 정확도가 떨어지는 타자였고, 타석에서의 집중력도 부족해 결정적인 한 방을 쳐주는 선수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선구안이 좋느냐면 그게 아니라서 통산 출루율도 .325에 불과했다. 즉 홈런과 타점 수에 비하면 절대 믿을 수 있는 중심 타자가 아니었다. 경기 내적으로도 박찬호의 선발 등판 경기 때마다 득점권에서 범타라든지 평범한 1루 팝업을 놓친다던지 같은 삽질을 많이 해서 한국 팬들을 가슴치게 만들었다. 이 때 붙은 별명이 개로스(…).[1]

그리고, 잠시나마 98, 99 시즌에 타율을 끌어올려서 성적이 나오자 캐로스에게 덜컥 장기계약을 맺는 바람에 다저스는 당시 토드 워렐 이후 마무리 부재로 신시내티 레즈에서 제프 쇼를 얻기 위해 특급 우타 거포 1루수 유망주를 트레이드 카드로 써버렸는데, 다름아닌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4번타자 폴 코너코다.

2003년 정든 다저스를 떠나 시카고 컵스로 이적, 12홈런 40타점을 기록하며 베테랑으로써 자기 몫을 해 준다. 다만 당시 컵스의 최고 유망주였던 최희섭이 캐로스 덕에 출장기회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했기에, 여전히 한국 팬들에겐 눈엣가시였다. 2004년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이적했으나, 0.194라는 최악의 타율을 기록. 결국 그 해를 마지막으로 은퇴, 해설자로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3 트리비아

국내팬들에겐 그리 대단한 선수로는 기억되지 않는 모양이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그랬다. 당시 투수친화구장의 대명사였던 다저 스타디움을 홈으로 쓰면서 30홈런을 여러 번 친 것은 인정해줄 만하다. 하지만 전형적인 공갈포에 생산성이 부족했던 캐로스는 마이크 피아자게리 셰필드등 특급 타자들의 뒤에서 타점을 주워먹던 중간급 타자에 불과했다. 다섯 차례의 30홈런과 통산 284개의 홈런, 신인상과 실버 슬러거 1회 수상 등 겉보기에는 어느 정도 달성한 건 있지만 세부 스탯은 형편없었고 큰 임팩트를 주지 못했던 선수였다.[2][3]

본의 아니게 한국선수들에게 피해(?)를 많이 줘서 한국에선 백만 안티를 가진 적도 있다. 찬스에 약한건 사실인 듯. 찬물용택의 메이저리그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선수시절에는 크게 임팩트를 주지 못했지만, 은퇴 후 해설가로서의 평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다만 치열한 상황일 때 본능적으로 오바를 할때도 있다. 2006년에 WBC 한국팀 경기를 해설하러 오면서 박찬호와 반가운 재회를 하기도 했다.

UCLA의 경제과 학위를 가진 엘리트이기도 하다. 야구를 잘했다면 이런 것도 빛이 더 날 텐데(...)

2010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으나 0.4%의 득표율로 광탈했다(...). 다만, 뉴저지 주 출신 야구선수들 사이에선 레전드로 남아 있는데, 커리어 통산 284홈런은 뉴저지 출신 메이저리거 중 최다기록이다. 여담이지만 LA에서 기록한 270홈런은 팀 프랜차이즈 3위의 기록이다.(…)[4]

현역 시절의 저지 넘버가 23번이였다. 현재는 FOX SPORTS의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이며, PS4 야구게임인 MLB the show에서 매트 배스거션(Matt Vasgersian), 스티브 라이언스(Steve Lyons)와 한 팀으로 중계진으로 활약하고 있다.(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LB:_The_Show)[5]
  1. 특히 다저스에서 입지가 갈수록 좁아졌던 2000년대 초반에는 박찬호가 등판할 때나 1루수로 나왔고 보통은 폴 로두카가 1루를 보는 일이 허다했다. 이후 엎친데 덮친격으로 숀 그린이 1루수로 가끔 나오면서 1루수로서의 효용성이 급격하게 떨어졌다.
  2. 다만 대다수의 메이저리거들은 통산 100개의 홈런도 넘기지 못하거나 한 시즌에 30홈런을 쳐보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 실버슬러거는 각 포지션당 한 명씩만 받을 수 있기에 어지간한 스타 선수들도 후보감에 오르기가 쉽지 않다. 또한 신인상은 1년에 그 많은 새내기 메이저리거들 중 한 명만이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귀중한 상이 아닐 수 없다. 이 점을 고려해 본다면 선수 생활은 성공적이었다고 봐도 무방.
  3. 참고로 KBO 리그에 스카우트 되는 메이저리그 출신 타자 용병들의 경우, 대다수가 통산 100홈런을 달성하지 못했고 한 시즌 30홈런을 쳐본 선수는 현재까지도 없다. 30홈런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가 타자친화적인 구장 중 가장 악명높은 쿠어스필드에서 0.270, 28홈런을 기록한 윌린 로사리오와 볼티모어 시절 0.284, 27홈런을 기록한 KBO 한정 인간말종. 또한 캐로스가 투수친화적 구장인 다저스를 홈구장으로 쓰지 않고 중립적인 구장에서 뛰었다면 300홈런은 가볍게 달성했을 것이다.
  4. 1위2위가 브루클린 다저스 시절의 선수들이란 걸 고려하면, 순수하게 LA 다저스 시절만으로 계산했을 때 LA 프랜차이즈 홈런 1위다.
  5.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23번은 포지션도 같은 1루수에 타선도 중심타선에 자리하는 아드리안 곤잘레스. 하지만 아드리안 곤잘레스는 중요한 순간에도 정말 강하면서 공갈포 기질을 어지간해선 찾아볼 수가 없다. 도루를 못 할 정도로 심각한 발이 문제일 뿐이지. 그리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1988 월드 시리즈 당시 23번을 달고 있던 선수는 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감독이자 1차전 당시에 끝내기 홈런을 때려낸 커크 깁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