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토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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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구슬처럼 동그란 눈동자를 가진 노기자카46의 바바
그리고 노기자카46 자수성가, 인간승리, 짠내의 아이콘

에토 미사 (衛藤 美彩(えとう み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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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1993년 1월 4일
출신지오이타 현 오이타 시
신장162cm
혈액형AB형
별자리염소자리
애칭미사미사, 미사선배
유리구슬 할매(ビー玉ババ)
미사퐁(みさぽん.개운음악당에서만)
소속그룹노기자카46
링크프로필 블로그 트위터 755[1]

1 선발현황

순번싱글 타이틀명선발현황순번싱글 타이틀명선발현황
1stぐるぐるカーテン언더11th命は美しい선발
2ndおいでシャンプー언더12th太陽ノック선발
3rd走れ!Bicycle언더13th今、話したい誰かがいる십복신
4th制服のマネキン언더14thハルジオンが咲く頃십복신
5th君の名は希望언더15th裸足でSummer십복신
6thガールズルール언더16thサヨナラの意味십일복신
7thバレッタ선발
8th気づいたら片想い언더
9th夏のFree&Easy선발
10th何度目の青空か?선발

2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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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별명은 정말이지 평생 갈 지도 모른다
에로녀

캐치프레이즈는 "유리구슬처럼 동그란 눈동자가 매력포인트! 오이타현 출신, 미사미사라 불리는 에토 미사입니다!"(ビー玉みたいな丸い瞳がチャームポイント! 大分県出身、'みさみさ'こと、衛藤美彩です!)

캐치프레이즈 그대로 눈이 참 크고 예쁘다. 그룹 최고의 독설가 카와고 히나로 인해 "유리구슬 할매"(ビー玉ババア)라는 별명이 붙게 된 원인이기도.. 근데 이 별명이 딱 맞아떨어져서인지 짓자마자 멤버들 사이에서 확산되었고, 심지어 언더멤버 라이브에서도 개그요소로 활용될 정도...(무서운 카와고P의 능력). 언더라이브에서 에토가 이코마 리나의 솔로곡 「水玉模様」(물방울무늬)를 「ビー玉模様」(유리구슬 무늬)로 개사해서 불렀는데, 간주중에 카와고 히나나가시마 세이라가 난입해서 "ビー玉ババア!"라고 놀리고는 퇴장하는 깜짝쇼를 선보였다. 이 깜짝쇼는 사전에 계획했던 것이라고 한다.

9th 싱글 夏のFree&Easy에서는 선발멤버 각자의 개성을 담은 티셔츠를 제작했었는데, 역시나 에토는 유리구슬로 표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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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A라고 안적혀 있어 다행

미스매거진 그랑프리 경력에 대부분의 팬들이 인정하는 예쁜 얼굴과 몸매, 조리 있는 말솜씨, 그룹내 상위권의 노래 실력까지 갖춘, 어디 하나 모자란 구석이 없는 멤버임에도 불구하고 노기자카에 들어온 이후 운영의 지독한 대우에 시달리는 불운의 아이콘.

3 노기자카에 들어오기 전

고교 시절에 고향인 오이타 현의 로컬 아이돌 CHIMO의 리더 및 메인보컬로 활동했었다. 고교 1년생이었던 2008년 CHIMO에 가입했고 2009년에는 CHIMO가 SME(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에게 제공받은 악곡으로 인디즈 데뷔 싱글을 내놨고, 2010년에는 CHIMO의 미사가 2대 리더로 취임했다.

CHIMO 활동 중이던 2010년 6월부터 소니뮤직아티스트(이하 SMA)에 소속되었고 상경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SMA는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SME)의 자회사인 연예기획사다. AKB총선거를 진행하는 토쿠미츠라든가 키시단, 니시노 카나, 키무라 카에라 같은 아티스트를 비롯해 에토와 같은 미스매거진 그랑프리 출신의 쿠라시나 카나, 이토 네네의 고교 친구인 하시모토 아이도 SMA 소속. CHIMO가 2008년부터 SME의 SD그룹 (신인 개발 · 발굴 섹션)과 업무 제휴를 맺고 인디즈 CD를 발매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소니 쪽에서 미리 주목하고 데뷔시킬 멤버를 찾던 중 미사가 뽑혔다고 보는 게 좋을 듯 싶다. 같은 CHIMO 멤버 중에서도 SELEN(본명 楠世蓮)이라는 멤버가 SMA 소속으로 현재 활동중이다.

그리고 2011년 고교 졸업과 함께 CHIMO로써의 활동은 당해 3월 20일 졸업으로 마감했다. 이후 SMA 소속 연예인으로 몇몇 방송 출연과 함게 활동을 조금씩 시작하였고 2011년 7월 미스 매거진 2011 그랑프리에 선정됨에 따라 계속 솔로 아이돌로서의 연예 활동이 이루어 질 뻔 했으나, 이후 8월에 노기자카46의 오디션에 합격하였고 이후 노기자카46 1기생으로 활동하게 된다.

4 푸쉬

노기자카46 운영위원회는 도대체 생각이 있나 없나 할 정도로 인기에 비해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비운의 캐릭터다. 앨범판매량에 비해 인지도나 지명도가 떨어지는 노기자카46가 각 멤버들의 객관적인 인기를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악수회에서 뛰어난 악수권 판매량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복신은 커녕 선발에 들어오더라도 계속 3열 끄트머리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어느 일본의 어느 아이돌그룹보다 선발층이 두터운 노기자카46라고는 하지만, 악수회 판매율이 선두권에 있는 멤버를 언더로 돌린다는 것은 팬들의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초반부터 악수회 인기는 꾸준하게 좋았고 제 1회 16인의 프린시펄에서는 비선발 멤버 중 유례없는 성적을 받았으나 그 후 1년 넘게 언더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6번째 싱글까지 계속 선발에 뽑히지 못하자 미사 본인도 데뷔 전 연예 활동 경력때문에 선발에 뽑히지 못하는 건가 고민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다만 미스매거진 참가를 비롯해 비슷한 연예 활동 경력이 있는 노죠 아미는 데뷔년도에 두번이나 선발 멤버로 선정되었고 사실 노기자카46 멤버 중 연예 활동 경력이 있는 멤버가 한둘이 아닌지라 단순히 연예 활동 경력만을 선발 탈락의 이유로 가정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물론 미사가 이전 연예 활동 경력이 가장 길고 화려한 멤버이긴 하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 나오는 추측 중 하나가 에토가 SMA와 노기자카LLC 사이에서 계약 문제로 낀 상태가 아니냐는 것이다. 정확한 정황은 알 수 없으나 본명이 원칙인 노기자카 내에서 혼자만 예명을 쓰고 공식적으로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는데 대해 다른 멤버들과는 계약 내용이 다를 것이라고 추측되는 상태였고, 오디션 이전의 계약이나 미스매거진 관련한 무언가가 작용해서 그로 인해 선발 진입이 불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는 상태였다. 일단 미스매거진 그랑프리 이후 겨우 한달만에 노기자카에 합격함에 따라 미스매거진과 노기자카 활동을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노기자카 합격 이후에도 사진집 발매, 드라마 출연, 개운음악당 어시스턴트 활동과 함께 노기자카 공식 블로그와는 다른 블로그를 12년 3월까지 운영하기도 했고 미스매거진 공식 블로그에서는 현재까지도 여전히 에토의 소식을 전해주고 있다. SMA쪽 공식 프로필의 경우 현재 사라진 상태이고 위키에서도 이전에 소속되어 있던 연예인으로 분류. 그러나 단순 추측에 불과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정황만 가지고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걸로 보인다.

그렇게 불운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나 했는데 7번째 싱글에서 드디어 선발 멤버로 선정되어서 멤버들 모두 축하해주는 분위기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소감을 발표하였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마찬가지로 첫 선발인 나카모토 히메카와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한다. 드디어 선발 멤버의 일원으로 인정받나 싶었으나 8번째 싱글에서 또 언더로 떨어트려서 논란이 일어났다. 선발 탈락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의혹이 있었고[2], 에토 본인이 첫 선발 이후 히트기원에서 본인이 선발에서 살아남길 빌었다는 것이 운영 측에게 나쁜 방향으로 어필되었다는 추측도 있다. 게다가 8번째 싱글의 언더곡 「生まれたままで」의 포지션을 보면 직전 싱글에서 그룹 내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완매를 기록한 멤버가 언더로 떨어진 것도 모자라 언더에서도 1열에 서지 못하는 말도 안 되는 포지션이 나오기도 했다.이쯤 되면 졸업 안 한 게 신기할 지경 그와중에 8번째 싱글 악수회에서 언더임에도 불구 29부 완매를 찍어버리는 바람에 에토의 선발 진입에 대한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었다.

9번째 싱글에서 다시 선발 멤버로 선정되었는데 최상위권 악수회 인기에도 불구하고 포지션은 3열 왼쪽 끝인 15번 포지션이여서 에토 본인마저도 이렇게 빨리 이름이 불릴 줄은 몰랐다고 말하였다.[3] 앞으로 15번 포지션에서 16번 타카야마 카즈미와 함께 양쪽 끝 고정석을 맡게 될 것인지 인기 대접을 제대로 해줄지 다음 싱글에서 또 떨어트릴지는 미지수였는데 운영 개갞끼야 일단 10번째 싱글에서도 선발로 남았으나 또다시 3열 끝자리에 위치했다. 운영의 고집 있는 고리오시 집착 선발 멤버 선정으로 인해 날로 어려워지는 선발 진입 상황을 감안하면 어쩌면 그 자리라도 지킨 게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10번째 싱글, 11번째 싱글까지 전부 3열 사이드의 어정쩡한 위치에 배치되고 3열 중앙에는 이른바 운영이 미는 멤버들이 자리 잡으면서 팬들의 불만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35부까지 악수회를 늘리면서 판매량 늘리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운영 입장에서 악수회 인기 멤버 중 한명인 에토를 다시 언더로 돌릴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인기에 걸맞는 포지션을 준다거나 앞줄로 올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가진 능력치에 비해 받는 대우는 그저 안습...다만 최근 그룹 전체를 휘청이게 한 스캔들 사건 전후로 시라이시 마이, 하시모토 나나미, 후카가와 마이와 함께 묶여 나오는 경우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미약하게나마 좀 더 푸쉬 받을 가능성도 조금은 있어 보이는 상황. 팬들은 위의 4명을 묶어 사천왕이라 부르며 유닛곡이든 뭐든 빨리 내놓으라고 아우성. 미모, 인기, 능력치를 봐도 사실상 최고의 조합이긴 하다. 둘기는 어디로

12th 악수회 30부를 5차에 매진시키며 악수회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의 푸대접으로 인해 복신 진입이 불투명하다고 여겨졌으나, 13th 싱글에서 무려 1열 사이드(!)를 맡게 되었다. 인고의 세월을 보내온 에토 미사와 그의 오시들의 감회가 남다를듯.

블로그에 유독 초심을 잃지 말자는 얘기를 자주 쓴다. 대략 1~6싱글 정도의 '잘 알려지지 않은 그룹의 심지어 언더 활동'은 정말이지 비참 그 자체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모라고 불리고 3시즌부터는 선발로 활동했고 14싱글에서 센터로 졸업하는 후카가와조차, "성격이 바뀌어버린다"고 표현했던 것이 언더생활이다. 거기서 뚫고 올라와 지금 자리까지 올라온 에토가 힘들 때마다 그 시기를 되돌이켜보는 것은 자연스런 것일테다. 에토가 언더일 당시, 선발 멤버의 라이브에서 언더 멤버들이 타올로 일종의 가림막을 만들고 있다가 선발 멤버가 조명을 받는 순간 최대한 빠르게 무대에서 사라지는 역할을 다른 언더 멤버들과 함께한 적이 있다. 역할 자체로도 굴욕인데, 라이브 스태프들이 연습을 시키면서 계속 더 빨리 사라지라고(...) 쪼아댔고, 그 모든 상황들이 에토에게 매우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선발 이후 그 얘기를 하다가 운 적도 있다. 그녀의 노력과 실력을 아는 멤버들은, 에토가 7번째 싱글에서 뽑히자 모두 환호하며 그녀를 환영했다. 에토는 선발된 소감으로, "저는 평생 언더라도 노기자카46가 좋아요. (私は一生アンダーでも乃木坂46が好き。)"라고 말했다.

5 캐릭터

전형적인 맏언니 캐릭터. 앞에 나서기보다 다른 멤버들을 먼저 생각한다. '16인의 프린시펄 trois' 기간 중에 에토가 쓴 블로그 글을 보면, 16인에 선발되기 위해 자기가 돋보여야 할지, 다른 멤버가 선발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보인다. 언니조의 일원으로서 포용적인 성격이 돋보인다.

대표적인 예로는 노기도코 여름방학 과제 발표회에서 이코마 리나가 캐치볼에 실패하고 글러브를 던지자 달려가서 자기가 잘못 던진 거라고 말하며 자신의 탓으로 돌린 일을 들 수 있다. 선발에 비해 언더 멤버들의 연령대가 전체적으로 어린 편이다. 후카가와 마이의 선발 진입과 이와세 유미코의 졸업 이후 사이토 유리를 제외하면 사실상 또래조차 없었고, 선발 멤버들에 비해 언더 멤버들의 평균 연령이 많이 낮았던지라 멤버들을 챙기다보니 언니 캐릭터의 구축은 자연스럽게 이뤄진 상황.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경우 언더 멤버 중 최연장자였기 때문에 동생들을 챙기는 역할을 주로 했다.그렇게 열심히 챙겨줬더니만 카와고P의 바바 취급

지기 싫어하는 성격 탓인지 유독 성격에 대한 루머가 잦다. 키모오타들의 망상일 뿐이지만 사이 좋은 멤버가 없다거나 하는 식의 루머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편. 지기 싫어하는 것은 큐슈 여자라면 누구나 그런 것일 뿐더러 사실이지만, 하단에 기술된대로 멤버들을 살뜰히 챙기며, 다른 멤버들에게도 사랑받는 존재다. 후카가와 마이와는 커플처럼 보일 정도이고, 시라이시 마이와 친하며, 2016년 언저리에는 호시노 미나미를 예뻐라 하게 된 듯 하다. 와타나베 미리아에게 상처받고 호시노에게 안겨 울었다

노기빙고2 메이킹에 수록된 호시노 업고 할매 흉내 또한 평소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명장면. 노기도코에서는 대기실 풍경을 몰래 찍었는데 2기생 중 혼자 선발에 진입해서 대기실에서 긴장한 상태로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던 호리에게 말을 거는 모습을 보여주어 바나나맨에게 칭찬을 듣기도 하였다.

멤버를 챙기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새로운 캡틴을 뽑자면 누가 적합하냐는 떡밥에 와카츠키 유미, 시라이시 마이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편. (사쿠라이 레이카가 그다지 캡틴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평이 나오다 보니 등장하는 떡밥...)

파일:VKRKJRo.gif 동생의 분량을 챙겨주기 위해(?!) 손을 쓰는 착한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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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3vpFx8.jpg 방귀탄을 피해 미사미사에게 안겨 있는 호리

그룹 내 최고의 언니 캐릭터인지라 청순한 컨셉의 노기자카 내에서 잘 보기 힘든 섹시 캐릭터 어필도 간간이 선보인다. 미스매거진 그랑프리, 타 멤버들에 비해 많은 그라비아 경험에 성숙한 외모와 이미지에 예쁜 몸매를 가진 멤버라 가능한 일. NOGIROOM에서는 평소에 파자마 안에 아무 것도 입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주변의 환호 반+야유 반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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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걔 이런 식의 어필 이후 카와고P의 가열찬 디스가 이어진다

뒤에서 동생들을 챙기는 언니 캐릭터이지만 그렇다고 앞에 나설 때 움츠러든다 거나 치고나오지 않는 스타일은 아니다. 입을 열면 빵빵 터뜨리는 스타일은 아니어도 상황에 맞게 멘트를 날릴 줄 아는 편이다. 츳코미-보케 모두 가능하여 평소에는 주로 바바 취급을 당하다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에서는 동생들에게 츳코미를 날린다. 언더 시절 노기코코에서는 이와세 유미코사이토 유리와 함께 MC를 맡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역할을 맡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이처럼 노기코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나 언더라이브에서의 활약, 최근 노기텐이나 언더라이브가 호평 받는 상황과 맞물려 간혹 '에토는 선발 3열에 있는 것보다는 언더가 더 어울린다'와 같은 의견을 내놓는 오타안티들이 있는데 이는 무의미한 이야기이다. 이른바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의 문제인데 언더에서 아무리 빛난다 한들 선발과의 미디어 노출도 차이는 극명하고 일단 미사 본인이 선발을 원하는 데다가, 어떤 멤버든 간에 멤버나 팬이나 무조건 선발에 들고 싶어하지 선발에 갈 수 있음에도 언더에 남을 이유는 사실상 전혀 없다.

심지어 미사의 경우 언더에서조차 포지션이 그렇게까지 좋은 편도 아니었고 프론트는 단 1번, 이외에는 대부분 2열에 섰다. 완매 후 언더 2열이라는 신기원을 쓴 「生まれたままで」의 포지션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의 미친 포지션. 이처럼 다른 멤버에 비해 조리있고 정돈된 말솜씨를 가지고 있어 MC를 잘하는 편인데 약 2년 간의 개운음악당 어시스턴트 역할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개운음악당에 대해서는 매우 중요한 방송인 만큼 후술.

그리고 전체적으로 노래 실력이 많이 부족한 노기자카 내에서 카와무라 마히로, 사쿠라이 레이카, 나카모토 히메카 등과 함께 비교적 안정적인 노래 실력을 가진 멤버로 꼽힌다. 노기도코의 연대별 히트송을 부르는 기획 때는 언더 멤버였음에도 매번 나와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선발은 안 시켜주면서 노래 셔틀만 선발 진입 이후 방송에서 다른 가수와의 코라보 라이브가 이뤄질 경우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몇 안 되는 멤버 중 한 명이 되었다. 호흡이 약하고 낮은 음 처리가 조금 아쉽긴 하지만 아이돌다운 예쁜 목소리와 꽤 높은 음역까지 소화할 수 있는 것이 장점. 그리고 2014년에는 사쿠라이 레이카와 함께 뮤지컬 무대에 서게 되었다.


7집 바렛타 특전 영상 『いたずらな片想い』이 좋은 노래를 특전 영상에 써버리고 1절만 들려주는 노기 퀄리티

한편 그룹 내에서 운동신경 또한 좋은 축에 속한다.중학교 시절에는 배구부에 소속되어 1학년부터 주전 센터로 활약. 오빠와 동생 모두 야구부에서 뛴 운동하는 집안이고 어릴 때 발목 종양으로 제대로 운동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운동신경이 좋은 것으로 보인다. 노기코코의 언더 운동왕 대결에서는 3종목 중 2종목(높이뛰기, 비치플래그)를 석권하여 종합 1위를 차지하고 마지막 계주에서 상대적으로 운동을 못하는 멤버가 모인 자기 팀의 역전까지 끌어내며 운동신경을 과시했다. 이제 한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선발의 와카사마를 깨는 것만 남았다 또 높이 뛰기 이후 매트 위에서의 그라비아 포즈라든가 마지막 바퀴에서 대역전을 이뤄낸 계주에서 들어올 때 승리 포즈는 미사의 팬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명장면들.그리고 이어지는 바바라 부른 것들에 대한 분노 이코마의 캐치볼 도전에도 함께 하여 캐치볼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6 활동(노기자카 가입 이후)

  • 2013년 2월 13일, 도쿄TV 드라마 '아름다운 사람에게 혼나고싶다'에 출연했다.
  • 2013년 3월 1일 오이타시 일일 소방서장
  • 2013년 3월 16일, 후지 TV의 경마방송 우마즈킷!에 출연했다.
  • 2013년 8월부터 11월까지는 문화방송의 라디오「乃木坂46の『の』」의 세번째 MC를 맡았다.
  • 2011년 11월부터 2013년 12월까지 TBS의 아침꼭두새벽 음악정보프로인『개운음악당(開運音楽堂)』의 어시스턴트를 맡았고 이후 명예 어시스턴트가 되어 「이웃 역의 미사선배(となりのみさ先輩)」라는 코너를 맡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역시 후술하도록 한다.
  • 2014년 10월 25일부터 11월 9일까지 상연된 극단 SET(Super Eccentric Theater) 창립 35주년 기념 공연 「Mr.カミナリ」에 사쿠라이 레이카와 음악교사인 臼杵七音 역에 더블 캐스팅되어 무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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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년 11월부터는 라쿠텐 SHOWTIME에서 월 1회 방송되는 「野球大好き!集まれ!侍ジャパン」(야구가 좋아! 모이자!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프로그램의 메인 MC를 맡게 되었다. 일본 야구 대표팀 '사무라이 재팬'의 경기나 이벤트 소개, U-12, U-15 대표팀의 어린 유망주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SNS, 인터뷰를 통해 꾸준히 야구 사랑을 어필한 결과물이다. 첫 방송은 U-12 니시 감독과 U-15 대표팀 카토리 감독의 대담으로 꾸려졌고 에토는 중간에서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었는데 촬영은 따로 한 것으로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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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방송에서는 키타노 히나코, 테라다 란제와 함께 미일야구가 벌어지는 현장을 찾아 우치카와 세이이치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치카와는 미사와는 같은 오이타 출신이고, 원래 우치카와 모교인 오이타 공고의 감독이었던 우치카와의 아버지가 현재 미사의 모교인 오이타정보과학고의 감독을 맡고 있는지라 그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은 우치카와도 흠칫했다. 우치카와는 비시즌에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오이타정보과학고에 와서 운동을 한 적이 있고 미사는 그걸 목격한 적도 있다고 755에서 밝힌 바 있다. 근데 우치카와의 출신고인 오이타 공고는 미사의 오빠를 고시엔 현대회에서 패퇴시킨 걸로 추측되는 학교...돌고도는 인생사 3회에는 야후오쿠돔의 오 사다하루 기념관을 방문하고 히나코, 란제와 운동 대결을 펼친다. 비록 나이는 한참 더 많지만 아직 죽지 않은 운동신경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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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미사는 39회를 기록.

7 개운음악당(開運音楽堂)

音楽を聴けば幸運が訪れる,開運音楽堂(음악을 들으면 반드시 행운이 방문한다, 개운음악당)

미사와 미사 팬들에게는 카미(神) 방송

TBS의 아침꼭두새벽음악 정보 방송인 개운음악당은 2003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방송되고 있는 나름 장수 방송이다. J-POP을 비롯해 엔카, 서양음악, 다양한 음반이나 DVD 발매 소식 등 음악 전반을 다루고 특히 대중적이지 않은 가수나 음악도 이토록 많이 다루는 지상파 키국의 방송은 찾아보기 어렵다. 2003년 방송이 시작되고 초반에는 오노 야아코가 진행하였으나 반년쯤 지난 후 TBS 아나운서가 메인 MC로 등장하고 2003년 미스매거진 그랑프리인 이와사 마유코가 어시스턴트 MC로 등장하였다. 이후 이 체제가 정착되어 그해의 미스매거진 그랑프리가 1년씩 방송을 맡고 다음 그랑프리에게 물려주는 식이 되었다.

2011년 미스매거진 그랑프리였던 미사 또한 개운음악당의 어시스턴트가 되는 것이 예정되었고 2011년 10월 4일 첫 방송에 9대 어시스턴트로 투입되었다. 메인 MC는 2008년부터 개운음악당을 진해중이었던 TBS의 아카오기 아유미 아나운서. 새벽 시간대라 시청률 부담은 크지 않고 전반적으로 여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MC 실력을 키우기에 더할 나위 없는 방송이었다. 그리고 미사에게는 미사퐁(みさぽん)이라는 개운음악당 한정 별명과 함께 미사를 꼭 빼닮은 캐릭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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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방송 당시. 오른쪽은 전년도 그랑프리이자 어시스턴트였던 신카와 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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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퐁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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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퐁 캐릭터 부채와 함께 한 미사

그런데 미스매거진이 2011년을 마지막으로 중단되어버렸다. 고단샤는 현재 미스id라는 미스매거진 후신 격의 아이돌 콘테스트를 진행 중인데 아무래도 그라비아 시장의 위축과 관련되어 미스매거진을 중단하고 노선을 바꾼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된다. 미사의 후임 어시스턴트인 카와우치 미사토는 2014년 미스id에 출전하여 개운음악당 레귤러였던 9nine사타케 우키의 이름을 딴 사타케 우키상을 수상하였고 사실상 웃키의 후임인 카토 이치카 또한 미스id의 심사위원.

미스매거진 중단때문에 후임 어시스턴트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가 결국 미사가 10대 어시스턴트까지 맡게 됐다. 9대 어시스턴트 시절에는 소개 화면에 '미스매거진 2011 GP'라는 문구가 떴지만 10대 어시스턴트 때는 삭제. 그리고 2013년 12월까지 장장 27개월에 걸친 어시스턴트 생활을 하게 되었다. 당시 미사의 상황과 연결해서 보면 정말 큰 행운이 따른 것이다. 6싱글 연속으로 언더(기간으로 치면 1년 반을 훌쩍 넘는) 생활을 해야 했던 미사 입장에서 비록 시간대는 별로지만 지상파 방송에 나오는 것은 매우 큰 일이었고 이게 생각지도 못하게 연장되었으니 이보다 좋은 일은 없는 상황. 팬들도 칸무리인 노기도코에 나오지 못하는 미사를 TV에서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신이 내린 방송이었다.

최근에는 노기텐, 언더라이브 때문에 사정이 나아졌지만 노기자카LLC는 언더나 연구생을 사실상 방치하다시피 해서 나카다 카나의 증언에 따르면 4번째 싱글에서 선발 탈락한 이후 할일이 없어서 계속 집에서 퍼즐앤드래곤만 했다고 한다. 비단 언더 뿐만 아니라 선발조차 잡지 촬영 외에는 개인일이 많지 않고 방송 레귤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수준이라 팬들의 불만이 많다.

방송 분위기는 날림방송으로 유명한 소니레코를 후려칠 정도로 그야말로 어수선하고 정신 없는 방송. 근데 소니레코는 웹방송이잖아? 여기는 지상파고 진행자 두명 뒤로 레귤러들이 계속 왔다 갔다 거리면서 껴들고, 좁아터진 스튜디오에 게스트를 꽉꽉 채워놓거나 게스트와 함께 노래도 하고 멀쩡하게 생긴 아나운서가 춤도 추고 아무튼 보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정신 없는 방송이다. 방송 마지막은 꼭 엔카로 장식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고 팬들은 이를 안정의 엔카END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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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오 출신의 엘리트 아나운서가... 아카오기 아나운서는 게이오 법대 출신의 TBS 아나운서로서 미사가 명예 어시스턴트로 물러날 때 함께 물러나서 현재는 사실상 영전하여 보도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아라시사쿠라이 쇼와는 고등학교 때부터 동급생으로서 친분이 있는 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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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도 마찬가지인 게 함정

2013년 12월 카와우치 미사토가 후임 어시스턴트로 결정되었다. 개운음악당을 챙겨보는 몇몇 노기자카팬들 사이에서는 노기자카 3기로 들어오라는 소리가 나오는 오스카 소속의 아이돌로 노기자카 싱글이 발매되면 방송에서 꼭 한번씩 새 싱글 타이틀곡을 부르기도하는 아이돌이다. 이 카와우치가 후임으로 들어가면서 미사는 드디어 개운음악당을 졸업하는듯 하였으나 명예 어시스턴트라는 직함들 달고 「이웃 역의 미사선배(となりのみさ先輩)」라는 새 코너를 맡게 된다. 코너 이름은 SME노기자카 빌딩이 있는 노기자카역과 TBS본사가 있는 아카사카역이 바로 붙어 있다는 점에서 유래 한 것. 이전에는 그림을 그려보는「みさぽんの御絵描46」, 음식을 만들어보는「みさぽんの御料理46」같은 코너도 있었다. 월 1~2회 정도의 부정기 코너로서 미사 선배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코너다. 미사 혼자 혹은 멤버 한두명과 셀프캠으로 등장해 미사 선배의 소식이나 노기자카 관련한 이야기를 하는데 유독 이 셀프캠으로 찍을 때 미모가 폭발하여 팬들을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14년 10월 하시모토 나나미, 시라이시 마이와 함께 등장했을 때는 그야말로 비주얼 쇼크로 팬들을 그로기 상태로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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뿅가죽네

개운음악당은 노기자카를 많이 신경 써주고 홍보할 기회도 많이 주는 방송인데 당장 스튜디오 뒷쪽에는 노기자카 전 멤버의 사진이 들어간 포스터가 붙어 있었고 「카이운 토크」라는 부정기 코너에서 '노기 회' 시간을 마련하여 매 싱글마다 홍보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미사가 첫 선발 진입 이후 노기도코 115화에서 마찬가지로 첫 선발이었던 나카모토 히메카카와고 히나와의 대담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계속 언더인 상태인데 노기자카 멤버로서 싱글 홍보를 하긴 해야겠고 미사가 언더인 걸 아는 방송 스탭들이 배려해주는 게 느껴져서 방송이 끝나고 항상 울었다고 한다.개노답 운영

그런데 개운음악당의 경우 미사 본인의 힘(미스매거진 GP)로 따낸 방송일뿐 노기자카 운영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방송이었고 그런 방송에서 노기자카 홍보를 많이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하다. 2015년 1월 노기자카 첫 앨범 발표에 맞춰 개운음악당 트위터에서는 직접 찍은 시부야 츠타야의 앨범 홍보 코너 사진이 올라왔고 2회 연속으로 노기자카의 지금까지 싱글을 돌아보고 앨범을 홍보하는 시간을 가졌다. 앨범 발매에 맞춰 시부야 츠타야에 대대적인 홍보 코너가 꾸며졌었다. 미사토와 이치카도 자신의 블로그와 트위터에 츠타야에 들러 미사 코너에서의 인증샷을 남긴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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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음악당 트위터에 올라온 츠타야 앨범 코너 사진



앨범 발매를 기념해서 레귤러들과 함께 지금까지 싱글곡들 댄스를 연속해서 시전
마츠무라 사유리는 계속 언더였던 미사보다 안무를 더 헷갈려 한다고 또 까였다

개운음악당이라는 방송이 보여주는 미사에 대한 엄청난 애정을 감안했을 때 앞으로도 계속 출연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명예 어시스턴트로 물러났던 2014년에도 간간이 스튜디오에 등장했고 4월과 10월에는 아예 다시 진행을 맡기도 하였다. 심지어 미사가 등장했을 때는 오프닝 마저 미사퐁 캐릭터가 나오는 이전 오프닝을 틀 정도.. 당장 2015년 2월에도 「이웃 역의 미사선배(となりのみさ先輩)」코너가 2번 방송될 예정이다

8 교우관계

  • 폭넓은 교우관계를 지닌 편이고 언니조와 어린 멤버 양쪽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다. 후카가와 마이, 하시모토 나나미, 시라이시 마이 같은 언니조 멤버부터 같은 오이타 출신 하타나카 세이라라든가 역시 규슈 출신인 카와고 히나 같은 어린 멤버들까지 모두와 잘 지내는 원만한 성격. 최근엔 2기생도 조금씩 챙기는 모양새다. 2기생인 호리 미오나와의 투샷도 은근히 자주 보이는 편이고 개운음악당의 「이웃의 미사선배(となりのみさ先輩)」 코너에 2기생 3명(테라다 란제, 사사키 코토코, 스즈키 아야네)를 데리고 나오기도 했다. 본격 이모님과 조카들
  • 오시멘은 이토 네네, 와카츠키 유미와는 츳코미-보케 관계
  • 후카가와 마이와 사이가 특히 좋은데 노기빙고2 마지막 회에서 편지를 통해 자신을 항상 챙겨주는 마이마이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8th 선발 진입 실패 이후 카페에서 같이 울며 위로해줬다고...오오, 역시 성모님
  • 사이토 유리가 좋아하는 엉덩이 베스트 3에 들어가 있다.
  • 하시모토 나나미와는 2011년에서 2012년으로 넘어갈 때 함께 있기도 했다.

9 트리비아

  • 노기자카 멤버 가운데서 예외적으로 예명으로 활동한다. 정확하게는 한자표기가 본명은‘衛藤実彩’이나 '衛藤美彩'로 활동한다. 발음은 같다. 와타나베 마유처럼 한자만 다른 케이스. 예명 사용 때문에 타 멤버와는 계약이 다른 걸로 추측 중. 미스아이돌 관련 활동을 전부 衛藤美彩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기간의 노기자카 활동을 衛藤実彩로 하는 것도 어색하다. 트위터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 가능. 다만 이런 요소들이 그녀의 선발을 늦춘 요소가 되었다고도 추정된다. 좋게 말하면 아마추어리즘, 나쁘게 말하면 '난 세상 물정 몰라서 오타들에게도 가능성이 열려있을 듯한 소녀' 이미지를 어필하려는 운영의 의도와 어긋나게 되기 때문.
  • 2010년 4월 TV아사히의 예능방송 『런던하츠』에서 전국 47도부현으로부터 각각 미소녀를 선출하는 「AKG47」라고 하는 기획을 실시했는데, 오이타 현 대표로 선택되어 주목을 받았었다. 당시 진행자들이 차를 타고 돌아다니다가 길에서 걷고 있던 미사를 발견하고 내려서 붙잡아서 선정. 웹에서도 나름 반향이 있었던 그야말로 될성 부른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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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온에어 화면을 캡쳐한 사진.

  • 위로 3살 위의 오빠와 7살 아래의 남동생이 있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부였고 오빠의 영향으로 고시엔을 보면서 야구를 매우 좋아하게 되었다. 지역예선이 벌어지는 구장에 직접 찾아가서 응원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응원하는 프로야구팀은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어머니는 지역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한 적도 있다고 한다. 노기도코 가족의 고리오시 추천 편에서 에토가 노기자카 멤버로 구성된 라인업을 소개하는 장내 아나운서 특기를 피로하기도 했다. 본인이 야구를 한다면 포지션은 유격수가 하고 싶다고.
그룹 내 제일 가는 고교야구 팬답게 고시엔이 시작되면 블로그에서든 트위터에서든 반드시 고시엔 얘기를 언급하는데 노기도코의 선생님 특집에서는 자신의 오빠의 고교 시절 지역예선 스토리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훔쳤다. 오이타현 지역예선 4강 9회 2점차 상황에서 오빠가 안타를 치고 출루했지만 후속타자의 병살타로 인해 마지막 아웃된 것이 오빠였고, 평소 그라운드에서 절대로 포커페이스이던 오빠가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해 감독과 팀원에게 부축받으며 나왔다는 슬픈 스토리. 그러나 아무래도 8강을 4강으로 착각한 것으로 추측되는 상황. 3살 위로 알려진 오빠가 출전한 89회 대회 오이타현 대회에서 5:3 스코어는 8강인 오이타공고 : 오이타동고의 경기에서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이차가 잘못 알려져있을 수도 있고[4], 베스트 8을 베스트 4로 오인하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 진실은 저 너머에.. 이 슬픈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시타라는 "그러니까 오빠는 아직도 울고 있는 거야?"라는 느닷없는 드립으로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참고로 코시엔과 관련있는 멤버로는 마츠무라 사유리도 있다. 마츠무라 사유리는 지난 3년 간 고시엔만 3번(봄 1번, 여름 2번) 우승한 오사카의 강자 오사카토인고교 출신. 다만 마츠무라는 코시엔 그런 거 관심 없고, 스모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이미지에 부합
  • 오빠와는 적은 나이차가 무색하게 사이가 좋거나, 적어도 존중하는 사이로 보인다. 위의 에피소드도 있고, 노기중에서 음주방송을 할때 카구야히메의 "여동생"이라는 곡을 들으면서 "내가 결혼할 때 오빠가 이 노래를 불러줬으면 좋겠다. 오빠 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가사가 정말 짠내난다. 남동생에 대해서는 큰 말이 없는 반면 오빠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기도 한다.
  • 별명 중 미사 선배는 같은 로컬아이돌 CHIMO의 후배 하타나카 세이라가 미사를 선배라고 부르던걸 이토 마리카가 따라하면서 별명화되었다고 한다.
  • 어린 시절 생각만큼 점프를 하지 못해 병원에 찾아가보니 발목에 커다란 종양이 있는 게 발견되었고, 악성일 경우 양다리를 절단하거나 시한부 인생이 될지도 모른다는 선고를 받았으나 다행히 양성으로 밝혀졌다. 이후 종양은 제거했으나 수술후유증 때문에 운동은 거의 하지 못하고 체육 시간에도 견학만 했다고. 중학교 입학 후에는 배구부에 들어가 1학년 때부터 주전 세터로 활약
  • 중학교 2학년까지 147cm에 불과했지만 현재 162cm 정도로 폭풍성장. 발사이즈는 240mm. 오이타 시절에는 하이힐도 자주 신었지만 도쿄에서는 지하철 등에서 걷는 일이 많아 잘 신지 않게 되었다.
  • 고교(오이타정보과학고등학교) 입학 후에는 은행원을 목표로 주산, 컴퓨터 등 각종 자격증 다수 획득.
  • 자랑하는 것 중 하나는 한번도 충치가 없었다는 것.
  • 가리는 음식은 없고 좋아하는 음식은 토마토야마토마토?, 오므라이스그분이 생각나면 지는 거다, 크림 스튜, 된장국 등. 고기에 환장하는 노기자카니쿠자카 멤버답게 야키니쿠는 물론 좋아하며 유일하게 곤란한 음식은 건포도
  • 오이타에서 태어나고 쭉 자랐으며 같은 오이타 출신에 나이도 동갑인 사시하라 리노와는 각각 오이타현 관광대사, 관광특사를 맡아 오이타현의 관광홍보책자에 함께 등장한 바 있다. 한편 오이타의 버스 회사에 기간 한정으로 하타나카 세이라와 함께 버스 외벽에 사진이 실린 적도 있다.
  • 좋아하는 영화는 해리 포터 시리즈.
  • 보통의 20대 초반답게 109계 브랜드나 FOREVER21, ZARA 같은 브랜드를 선호.
  • 오이타 본가에서는 닥스훈트 1마리, 치와와 3마리 총 4마리의 개를 키운다고 한다.
  • 노기빙고 시즌 5 1회에서 니시노 나나세에 의하면 피곤할 때의 모습이 넓적부리황새를 닮았다고 한다(...). 본인도 억울해하면서도 "닮았긴 하지만서도!!"라고 인정했다.
  • 자취 중이기 때문에 요리실력도 어느 정도 갖춘 걸로 보이나 노기도코 초창기 요리 실력 체크 때 튀김 반죽에 녹말을 사용하여 실패를 경험. 후에 노기빙고2에서 자기 집 특유의 설날 떡국을 멋지게 만들어 내며 리벤지 성공. 이지리는 요리 장면을 보며 프로 같은 손놀림이라 평했다. 나가시마의 레포트는 덤 노기빙고3의 새색시 기획에서도 언니조 멤버들과 팀을 이뤄 멋진 도시락을 완성시켰고 게스트로 나온 오오호리 메구미가 자신이 만든 것보다 낫다는 칭찬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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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토가의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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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받은 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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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올린 직접 만든 요리 사진(파스타, 야채우동, 크림스튜)

또한 노기자카 공사중에서도 음주방송을 하면서 간단한 요리를 하기도 했다. 에토상의 고급진 레시피

10 역대 프로필 사진

데뷔 프로필1st2nd3rd4th5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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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th13th14th15th
  1. 현재 트위터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 개운음악당 어시스턴트 활동이 끝난 이후에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755는 755앱의 고질적인 문제인 핸드폰이 무거워지는 문제로 인해 사용 중지했다가 핸드폰을 바꾼 후 재개했다.
  2. 간단하게 말하면 에토에게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것인데, 인터넷 상의 의혹 제기 정도로 끝났다. 이 문서의 이전 버전에는 노기자카는 그런 걸로 징계 내리지 않는다는 서술이 있으나 불문에 붙이는 것은 그룹 결성 이전의 역사이고 이 사례는 만약에 사실이라면 그룹 활동 이후의 이야기이므로 징계도 가능한 상황.
  3. 무렵(9~11싱글 정도) 선발 발표에서 에토 본인도 꽤나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3열 끝자리 발표가 나자마자 표정은 정말이지 실망 그 자체.
  4. 특히 일본은 우리랑 나이 세는 개념도 다르고 입학 시점도 달라서 오차가 자주 발생한다. 애초에 가족들의 정확한 인적사항을 잘 숨기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