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론

1 정의

길 잃은 유전자 오페론
오페론(Operon)이란 염색체 상에 프로모터, 작동자, 구조 유전자가 인접해 있어 조절유전자에 의해 일괄적으로 제어되는 mRNA의 전사단위를 의미한다. 즉, 기능적으로 관련된 유전자를 묶어 한번에 조절하는 메커니즘이다.[1]

단세포 생물 수준의 작고 단순한 미생물이라 하더라도 그 에는 수 천 개 이상의 유전자가 있다. 전체 유전체가 암호화하는 유전자 산물 중 일부는 세포 활동에 필수적이어서 항상 발현되나, 일부는 필요할 때에만 발현된다. 만약 이 유전자들이 항상 단백질로 발현한다면 생물의 효율은 끔찍하게 떨어질 것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예컨대 뉴런에서 소화 효소가 나오는 꼴이다. 단세포 생물의 경우는 더욱 중요하다. 소화할 영양소가 없는데 효소를 만들어야 한다면 그 작은 몸과 한정된 자원에 어마어마한 손해이다. 즉, 유전자 발현의 조절은 어떤 생물이든 물질대사의 에너지 효율 차원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단순하디 단순한 미생물이 어떻게 유전자 발현을 조절할까? 사람이라면 스테이크를 먹을 때는 포크를 쓰고 불고기를 먹을 때는 젓가락을 쓰겠지만 대장균은 어떻게 자기 주변의 물질이 무엇인인지 알고 그에 맞는 효소를 분비할 수 있을까? 이 신비로운 현상을 지극히 단순한 원리로 밝혀낸 것[2] 이 오페론이다.

진핵생물에서의 전사 조절은 비암호화 DNA 부위(non-coding DNA)에 존재하는 인핸서 기작에 의하여 조절된다. 진핵생물의 전사 조절에 대해 궁금하다면 인핸서를 참고하라.

2 역사

오페론은 프랑수아 자콥(F. Jacob)와 자크 모노(J. Monod)에 의해 발견되었다. 자콥과 모노가 발견한 최초의 오페론은 대장균에서 젖당 대사와 관련된 lac 오페론으로, 이 발견으로 둘은 196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다. 모노는 일생을 바친 연구를 거울로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을 저술한다. 원핵생물의 기본적인 대사에서 시작하여 생명은 그 자체가 설명 가능한 기계적인 현상이며, 우주에는 그 어떤 신화 없이 인간 홀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짜임새있게 풀아나가는 과학계의 고전이다. 최재천 교수는 대학생 시절 이 책을 읽고 감동하여 자비로 제본#s-2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생명체의 유전자 조절 기작 연구는 오페론을 기원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진핵생물에서도 오페론보다는 복잡하지만 기계적이라는 측면에서는 공통적인 기작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진핵생물의 유전자 전사 과정은 프로모터에 여러 전사인자가 결합하면서 개시한다.

3 예시

여기에는 대표적인 오페론인 lac 오페론과 trp 오페론을 소개한다. 다른 오페론에 대해서 알고싶다면 서적이나 영문 위키피디아의 오페론 페이지을 참조하면 된다.

3.1 lac 오페론

대장균은 일반적으로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하여 성장하나, 주변에 포도당이 부족하고 젖당이 풍부한 경우에 락테이즈를 분비하여 젖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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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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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c 오페론은 다음의 요소로 구성된다
1) 억제인자(lac repressor) : lac I 유전자의 산물로 lac 오페론의 작동자 부위에 결합해 lac 오페론의 활성을 억제한다.[3]
2) 작동자(operator) : 억제인자가 결합하는 부위이다.[4]
3) 활성인자(activator) : lac 오페론의 활성인자는 cAMP-CAP 복합체로 오페론의 작동을 촉진한다.
4) 프로모터(promotor) : RNA 중합효소가 인식하여 결합하는 자리로, 평상시에는 작동자에 억제인자가 결합되어 전사가 되지 않는다.
5) 구조유전자 : lac 오페론은 lac Z(β-갈락토시이즈), lac Y(갈락토시드 투과효소), lac A(갈락토시드 아세틸기 전달효소)의 세 가지 유전자를 포함하는데, 이들 유전자가 발현해내는 단백질이 젖당을 소화해낸다.

3.1.2 작동 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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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균은 주변에 포도당이 풍부한 경우에 포도당만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이럴 때는 lac I 유전자에 의해 생성된 lac 억제인자가 lac 오페론의 작동자 부위에 결합하여 전사를 억제한다.(음성적 조절)

포도당 농도가 낮아지고 주변에 젖당이 존재하는 경우 젖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lac 오페론의 구조유전자가 발현되어야 한다. 구조유전자가 발현하기 위해서는 작동자에 결합하고 있는 억제인자를 떼어내기 위해 유도자(inducer)라는 물질이 필요하다. 억제인자는 다른자리 입체성 단백질(allosteric protein)으로 작동자에 단단히 붙어있다가도, 유도자와 결합하면 형태가 변화해 작동자 부위에서 결합이 뜯어진다. lac 오페론에서는 젖당이 β-갈락토시데이즈에 의해 β-1,4 결합에서 β-1,6 결합으로 변환된 알로락토오스가 유도자의 기능을 수행한다. 얼핏 보면 젖당을 만들기 위해 젖당이 필요한 모순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억제 인자가 완벽하게 오페론의 전사를 막지는 못하기에 lac 오페론이 억제된 상태에서도 일부 젖당이 β-갈락토시다아제에 의해 알로락토오스로 변환될 수 있다.

유도자에 의해 억제인자가 작동자에서 분리되면 RNA 중합효소가 프로모터에 결합하여 전사가 개시된다. 그러나 단지 억제인자를 제거하는 것만으로 오페론을 가동하는 것은 효율이 낮다. 추가적으로 양성적 조절을 하는 활성인자(activator)로서 고리형 AMP(cAMP)가 필요하다. 그러나 cAMP 자체가 활성인자인 것은 아니며 cAMP는 활성인자인 이화물질 활성 단백질(CAP)[5]과 복합체를 형성하여 활성인자로 작용하게 된다.[6] CAP-cAMP 복합체는 프로모터 상단에 위치하는 활성인자 결합부위에 결합하여 RNA 중합효소가 프로모터에 결합하는 것을 돕는다.[7]

전사가 개시되면 갈락토시드 투과효소와 갈락토시드 아세틸기 전달효소에 의해 세포 내로 젖당이 흡수되며, β-갈락토시데이스에 의해 젖당이 갈락토오스와 포도당으로 분해된다. 젖당을 다 분해하면 유도자가 부족해지니 오페론이 작동되지 않는다. 세포 주위에 포도당이 풍부해질 때도 세포 내 cAMP 농도가 낮아져 양성적 조절이 약해지므로, lac 오페론은 억제된 상태로 돌아간다. 유도자와 활성 인자의 작용에 의해 '포도당이 부족하면서 젖당이 있을 때' 젖당을 분해하는 기막힌 조절이 가능해지는 것반찬 투정은 없었다.

3.2 trp 오페론

trp 오페론은 대장균의 트립토판 아미노산 생성에 필요한 효소를 암호화는 유전자로 구성된다. 트립토판은 대장균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아미노산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만들 필요는 없다. trp 오페론은 이러한 트립토판 생성을 조절한다.

3.2.1 구성 및 억제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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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p 오페론은 다음의 요소로 구성된다.
1) 구조유전자 : trp E, D, C, B, A의 5개의 유전자를 포함하며, 이는 트립토판 전구물질에서 트립토판을 합성하는 세 종류의 효소를 암호화한다.
2) 프로모터, 작동자 : lac 오페론과 동일하나 전체 작동자가 프로모터 내부에 위치한다.
3) 억제인자 : 주 억제인자(trp repressor)와 보조 억제인자(corepressor)로 구분되며 트립토판이 보조억제인자의 역할을 한다.

trp 오페론은 억제인자가 작동자에 결합하여 트립토판의 생성을 억제하는 음성적 조절 오페론이다. trp 억제인자는 고농도의 트립토판을 신호로 하여 trp 오페론의 작동자에 결합해 trp 오페론을 억제한다. 그러나 trp 억제인자 그 자체로는 작동자에 결합할 수 없고, 보조 억제인자가 있을 때만 작동자에 결합헤 구조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할 수 있다. trp 오페론에서 보조억제인자는 다름아닌 트립토판으로, 트리토판이 억제인자에 결합해 형태를 변화시킬 때만 억제인자는 작동자에 결합할 수 있다. 따라서 트립토판이 흘러 넘칠 때에만 trp 오페론이 억제되며 트립토판 농도가 낮아지면 억제는 풀리고 trp 오페론이 가동된다. 젖당이 존재할 때 작동했던 lac오페론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이다.

3.2.2 전사약화 기작

trp 오페론에는 음성적 조절 이외에도 전사약화(attenuation) 기작이 존재한다. 전사약화 기작은 억제작용이 약한 trp 오페론의 활성을 10배 더 강하게 억제하도록 도와준다. trp 오페론의 전사약화 기작을 유도하는 선도부위(trp leader)와 약화부위(trp attenuator)는 작동자와 구조유전자 사이에 있으며, 유전자 전사가 종결되기도 전에 전사를 끝내는 미성숙 전사종결을 유도한다.[8] 미성숙 전사종결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전사약화 부위가 종결부위로 작용하기 때문이다.[9]

3.2.3 전사약화 와해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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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토판이 없으면 trp 오페론이 작동해야 하는데, trp 오페론의 작동을 위해서는 전사약화 기작이 와해되어야 한다. 위의 그림을 참조할 때, 전사약화 기작은 3-4 요소의 머리핀 구조 대신 2-3 요소의 머리핀 형성에 의해 와해된다.

원핵생물인 대장균은 핵의 구분이 없어 전사번역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전사된 RNA 중 1 요소에는 연속하여 2개의 트립토판을 지정하는 코돈이 포함된다. 세포 내에 트립토판이 많은 경우에는 1요소의 번역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져 리보솜의 진행 속도가 빨라 34 요소에서 머리핀 구조가 형성된다. 이 경우 34 요소가 종결요소로 작용하여 전사가 종결된다.

그러나 세포 내에 트립토판이 부족한 경우에는 1요소에서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고 리보솜이 정지하게 되고 2--3 요소에서 머리핀 구조가 형성된다. 이 경우 전사가 종결되지 않으며 계속하여 전사가 이루어지고, 다른 리보솜에 의해 번역이 개시되어 트립토판을 합성하는 효소를 생산하게 된다. 즉, 1요소에서 리보솜 진행이 멈추더라도 뒷부분에서 번역이 또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트립토판의 생성이 가능한 것이다.

한편 세포 내에 트립토판이 다시 많아지는 경우에 리보솜이 1요소를 정상적으로 번역하게 되며 3--4 요소에서의 전사종결이 다시 일어남에 따라 전사가 약화되는 전사약화기작이 나타나게 된다.
  1. 생명과학대사전
  2. 생명 과학Ⅱ를 배우는 고등학생이라면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나 수능때문에 공부 하려면 머리 터지니까, 이것은 엄연한 '생명 현상'이다. DNA에서 단백질 까지, 발현과 그 조절 과정이 한 번에 설명된다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놀라울 따름이다.
  3. lac 억제인자는 2개의 2량체가 연결된 4량체의 형태로 구성되며 2량체마다 각각의 DNA 결합부위가 있어 DNA의 큰 홈(major groove)에 결합한다.
  4. lac 오페론에서 작동자는 프로모터 우측의 주 작동자와 up/downstream에 각각 1개의 보조 작동자로 총 3개가 있다
  5. 이 유전자의 공식적인 명칭은 cAMP 수용체 단백질(crp)이다.
  6. cAMP는 CAP의 형태를 변화시켜 CAP가 활성인자 결합부위에 결합할 수 있도록 친화력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7. 구체적으로 RNA 중합효소의 αCTD가 CAP와 결합하는데, 이를 통해 중합효소와 프로모터의 결합이 강화된다.
  8. 트립토판 농도가 높은 경우 90%정도 전사가 종료된다
  9. 전사약화 부위는 역반복서열, 연속적인 A-T 염기쌍으로 구성되어 머리핀 구조를 형성하고, 전사체와 DNA의 결합을 불안정하게 하여 전사를 종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