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삼국지)

丁儀 (? ~ 220년)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문신. 자는 정례(正禮). 정충의 아들, 정이의 형. 예주 패국(沛國) 사람으로 똑똑하고 글을 잘썼다.

2 정사

글 솜씨가 뛰어나서 조조도 그를 높게 평가하였고, 조조의 큰딸인 청하공주(淸河公主)[1]를 정의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조비가 "여자는 외모를 봅니다. 정의는 눈이 불편하니, 누님도 좋아할 리가 없습니다. 하후무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더 나을 것 입니다."라고 반대했다.

이에 조조도 수긍해 정의와 청하공주의 혼담을 없던 일으로 하였으나, 나중에서야 정의가 유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고는 후회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정의가 사팔뜨기[2]가 아니라 장님이었더라도 딸을 시집보내야 했다."[3]세설신어≫에도 조조가 딸을 정의에게 시집보내려다가 그만둔 뒤에 후회한 일화가 실려있다.

정의 또한 청하공주를 신부로 얻지 못한 것을 한스러워 하였으니, 정씨 형제는 양수와 함께 조식과 두터운 친분을 쌓았다. 조조가 그를 태자로 세우려 할 때, 정의와 그의 동생 정이도 조식에 대해 좋게 말하였으므로 조비에게 밉보였다. 게다가 정의는 조비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최염모개를 탄핵해 실각시킨 장본인이었다. 결국 조비는 즉위 후 정의와 정이 형제를 잡아 가두고 죽였다. 이 때 조비는 정씨 형제의 집안 남자들은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죽였다.

진수 문서에 정의, 정이 형제와 얽힌 이야기가 있다. 자세한 것은 '≪삼국지≫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 항목을 보자.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조비가 즉위하자 동생들의 병권을 빼앗으려고 했다. 조식이 부고를 받고도 달려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자를 보내 죄를 따져 물었을 때 임치현(臨淄縣)으로 갔던 사자가 보고하기를, 조식이 날마다 정의, 정이 형제가 술을 마시면서 거만하고 무례하게 군다면서 정의가 "옛날에 선왕(조조)께서는 원래 우리 주공을 세자로 세우려 하셨는데, 헐뜯기를 잘 하는 신하들이 훼방을 놓았다. 이제 위왕께서 돌아가신 지 오래지 않은데 벌써 혈육의 죄를 따져 물으니 어찌 그러느냐?"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결국 술에 취해있을 때 허저가 호위군 3천 명을 이끌고 잡아들이자 조비가 사람을 시켜 정이와 함께 죽였다.

4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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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9,10,11
삼국지 12,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그저그런 문관. 짝눈이라 그런지 매력이 특히 낮다.

삼국지 9에서는 13/4/66/72의 능력치로 등장. 덫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17/3/66/70/28.

삼국지 12에선 대전판에 추가.

짝눈이라 그런지 삼국전투기에서는 데이빗 보위로 나왔다.
  1. 조앙, 조삭의 동복(同腹)누이.
  2. 眇: 한 쪽 눈이 작다, 한 쪽 눈이 멀다, 사시 등등 뜻이 다양하다. 출처
  3. ≪삼국지≫권 19ㆍ<위서>ㆍ<임성진소왕전(任城陳蕭王傳)> : ..."丁掾,好士也,即使其兩目盲,尙當與女,何況但眇?是吾兒誤我。"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