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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ocos Islands

인도양 동부에 있는 오스트레일리아령의 섬지역. 중심지는 서 코코스섬. 킬링(keeling) 제도라고도 불린다. 면적은 14㎢.

인도네시아에서 서남방으로 떨어진 섬지역이며 산호초로 이루어진 환초섬이다. 주민은 6백여 명으로, 유럽인 주민 1백여 명은 서섬(西島 West Island)에, 말레이인 주민 5백여 명은 홈 섬(Home Island)에 산다. 기타 자바인과 중국인도 산다. 마인어영어가 사용되며,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말레이인은 주로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다.

지리적으로 서섬, 남섬(南島), 홈 섬, 디렉션 섬, 호스버그 섬, 노스클링 섬 등 여러 섬들이 있다. 국방은 오스트레일리아가 담당하나 국민경찰이 자체적 치안을 담당한다. 영국여왕이 형식적인 원수로 있다.

주로 코코넛을 재배한다.

2 역사

무인도였던 이 섬은 1609년 영국의 W. 킬링(keeling)이 처음 발견하여 '킬링'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고, 그 뒤 버려져 있었다.

1814년, 스코틀랜드의 상인 존 클루니스-로스(John Clunies-Ross)는 인도로 가는 도중 이 섬에 상륙하여 유니언 잭을 꽂고, 장차 이 섬에 가족들과 정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떠난다.

그런데 향료무역업자 알렉산더 헤어(Alexander Hare)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1825년, 그는 선장을 고용하여[1] 자신과 여성 40명을 싣고 코코스 제도로 가게 했다. 헤어는 무인도하렘을 건설하려던 것이었다. 여성은 말레이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중국인, 인도인, 심지어 흑인도 있었다고.

2년 뒤에 클루니스-로스가 아내와 아이들, 장모를 데리고 섬에 와 보니 이미 헤어는 자기의 하렘을 건설한 뒤였다. 클루니스-로스와 헤어는 섬을 둘러싸고 서로 반목하게 되고, 클루니스-로스를 따라온 8명의 선원은 "이렇게 된 바에야 섬과 여자들을 빼앗아 버리자!"고 결의했다. 불리해진 헤어는 여자들을 데리고 프리즌 섬에 틀어박혔지만, 프리즌 섬은 썰물 때면 다른 섬과 연결되기 때문에 하렘의 여인들은 클루니스-로스 일당의 보호를 바래 도망치거나, 클루니스-로스의 부하들이 빼앗아가거나 했다. 하렘의 여성들을 모두 NTR빼앗긴 헤어는 1831년 섬을 떠나 자바 섬에서 죽고 말았다. 그 뒤로 5대에 걸쳐 클루니스-로스 가문이 이 섬의 영주 노릇을 한다.

1857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독일 순양함이 파괴를 하려다가 오스트레일리아순양함에 의해 격침된 일이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항공기지가 되기도 했다. 1955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보호령이 되었다.

이전의 코코스 제도는 클루니스-로스 가문[2][3]의 영지로, 말레이인 '농노'들은 영주의 허락 없이는 섬을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시피 했다. 1973년 이 섬을 방문한 유엔 시찰단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에 1인 지배하의 이 섬을 매수하도록 권고했고, 결국 1978년, 5대째 영주 존 세실 클루니스-로스(John Cecil Clunies-Ross)는 625만 호주달러에 섬을 사실상 강제로 매각해야만 했다. 1986년에 그는 파산하여 이 섬을 떠나야만 했다.

참고로 1836년 찰스 다윈이 비글호를 타고 이곳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리고 현재도 통용되는 산호초섬의 변화 과정(거초→환초)에 대한 이론을 만들었다!
  1. 그 선장이 우연히도 클루니스-로스의 동생이었다
  2. 클루니스-로스 가문은 세대가 지남에 따라 말레이인과 혼혈화되어, 5대째에 오면 7/8이 말레이 혈통이 되었다.
  3. 여담으로 예전 호주 달러 50달러의 뒷면에 있던 호주의 과학자 이언 클루니스-로스는 초대 영주 존 클루니스-로스의 종손(조카손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