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첸 라마

티베트어 :པན་ཆེན་བླ་མ
중국어 : (정자체)班禪額爾德尼
중국어 : (간자체)班禅额尔德尼
한국어 : 판첸 라마, 빤첸 라마[1]

1 소개

달라이 라마와 함께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 티베트 시가체 시(市)에 위치한 타쉬룬포 사원의 수장이자 티베트 불교 서열 2위이다.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겨진다.

'판첸'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대학자라는 뜻의 '판디타(paṇḍita)'에서 왔는데, 이는 판첸 라마가 어릴 때 달라이 라마의 교육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2 역사

5대 달라이 라마가 서열 2위로 인정하면서 지금의 위치에 오르게 되었지만, 정치등 세속적인 권력이 있는 달라이 라마와는 달리 세속적인 권력은 가지고 있지 않다.

현재 판첸 라마 11세는 중국 정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89년에 판첸 라마 10세가 사망하자 달라이 라마 14세는 게둔 초에키 니마(དགེ་འདུན་ཆོས་ཀྱི་ཉི་མ་་)라는 소년을 판첸 라마 11세, 즉 판첸 라마의 환생자라고 했는데 본인과 가족은 중국 정부가 납치해 지금까지 행방불명이다. 아마 조용히 처리된 듯 하다. 대신 중국 정부는 자신들이 인정한 기알첸 노르부(ཆོས་ཀྱི་རྒྱལ་པོ་་)를 판첸 라마 11세라며 진짜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중국교황청을 무시하고 주교를 임명하는 것이랑 같은 개념이다.

3 박지원과의 만남

박지원열하일기에 관련 기록이 있다. 원문에서는 중국어 음차인 반선액이덕니(班禪額爾德尼)라고 나온다. 건륭제의 환갑잔치를 축하 하기 위해 방문한 조선 사절단이 열하에서 판첸 라마와 마주친 것. 건륭제의 호의 어린[2] 지시로 라마를 접견한 조선 사절이 무려 4단의 통역[3]을 거쳐 인사를 올리니, 판첸 라마는 목제 불상을 주었다고 한다. 이 때의 판첸 라마는 판첸 라마 6세라고 한다.

조선 사절단이 판첸 라마와 만난 것은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박지원열하일기에서 매우 비중있게 다루고 있으며, 중국티베트, 조선과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 매우 중요한 1차 사료로 평가받는다. 이때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간략히 적어보자면, 일단 조선 사신들은 중놈 따위(판첸 라마)와 만나야 된다는 사실 그 자체에 대해 충격과 공포를 느꼈으며, 심지어 황제의 명으로 판첸 라마에게 절을 해야 한다는 명령을 받게 되자 양반부터 하인까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판첸 라마를 욕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한 통역관은 "차라리 내 목을 자르라!!"며 팔뚝질(…)을 해댔다고 한다.[4][5]

결국 판첸 라마와 대면하는 순간, 사절단을 이끄는 박명원이 모른 척하고 절을 안 하고 그냥 자리에 앉아버렸다. 이런 조선 사신들의 태도를 본 건륭제는 결국 삐져서(…) 조선 사신들의 일정을 당겨 예상보다 일찍 열하에서 돌려보냈다. 사실 이는 굉장히 다행스럽게 사태가 종결된 것인데, 박명원은 목숨을 내놓고 황제의 명을 거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목숨 걸고 황제를 쌩깠다. 그래서 박명원의 8촌 동생이었던 박지원은 극형까진 몰라도 십중팔구 귀양살이를 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6] 그나마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그래도 이 일에 화가 나긴 났는지, 건륭제는 이후 조선 사절단이 열하에서 베이징으로 돌아갈 때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고 냉대했다.

사실 숭유억불을 국책으로 하는 조선 양반의 입장으로써, 에게 절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 사람들은 나라를 대표하는 사절단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심각한 정치 비화로 확대될 수도 있었던 일이다. 반대 당파에서 "저 놈들 중놈에게 절했대요. 데헷~ 이거 나라망신 ㅋㅋ" 이러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더군다나 유교 윤리에서는 자기 목숨 살자고 신념을 굽히는 것을 매우 수치스러운 일로 본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박지원열하일기에 '우리나라의 선비로서 한번 불교와 연관되면 평생 놀림감이 되는 것이 현실이니 저리 당당하게 나가는 것이겠지만, 만약 황상에게 활불(活佛)[7]이 이 사실을 알리면 큰일날 것이다'라고 언급한다.

이때 받은 불상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열하일기에 나오지 않지만, 이전 사례처럼 처리한 듯하다. 열하일기 기록에 따르면 이전 사신들은 억지로 받았던 불상압록강에 흘려보냈다고 한다. 청나라 땅에서 버렸다가 걸리면 황제에게 모가지 당할 것이고(…), 조선까지 가져가더라도 왕이 진노하거나 반대파에게 꼬투리 잡히면 모가지 당할 것이니(…), 조선도 아니고 청나라도 아닌 국경 지대에서 조용히 처리한 것. 지난한 얘기지만, 만약 저 불상이 현재에도 남아있었다면 못해도 보물급 문화재다. 에이, 아까비

그런데 일성록조선왕조실록에는 정조와 박명원이 사행길에 대한 대화를 하면서, 황제가 줬다는 불상에 대해서 언급한다. 정조가 처분에 대해 묻자, 박명원은 영변의 모 사찰에 봉안했다고 말한다. 이 불상이 판첸 라마가 선물로 준 그 불상인지, 아니면 판첸 라마의 것과는 별도로 건륭제가 따로 하사한 불상인지는 불분명하다.
  1. 원어 발음은 여기에 가깝다.
  2. 건륭제티베트 불교에 관심이 많아서 베이징에 티베트 불교 사원을 세웠으며, 판첸라마를 초청해서 대규모 법회를 열게 하기도 했다. 조선 사절단에게 판첸 라마를 만나게 한 것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 준 보답으로 자신이 존대하는 인사를 만날 수 있게 한 것이다. 의도는 좋았다
  3. 한국어중국어만주어티베트어.
  4. 다행히도(?) 조선인들끼리 있을 때 팔뚝질을 했다. 만약 공개석상에서 했다면 자기 목뿐만 아니라 삼족의 목이 달아났을지도 모른다.
  5. 그런데 열하일기의 기록 속에는 판첸 라마가 보는 앞에서 팔뚝질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어지간히 간도 크다 한국어로 욕해서 통역이 안 된 것이 다행이었다
  6. 그런데 열하일기의 기록에 따르면 박지원은 그 상황을 즐거워했다! "이런 기회에 남들 못 가보는 지역을 가 보게 되니 아싸 조쿠나!" 같은 반응을 보였다.(…)
  7. '살아있는 부처'란 뜻으로 판첸 라마에 대한 존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