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도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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Ἡρόδοτος ὁ Ἁλικαρνασσεύς
Herodotus
(기원전 484~기원전 425?)

1 소개

서구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사람.[1] 역사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키케로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는데, 사실 이 키케로도 그의 저서인 <법률론>의 제1권에서 "하긴 역사의 아버지로 일컫어지는 헤로도토스나 테오폼포스의 경우에도 무수한 작화로 가득 차 있지만" 이라는 식으로 헤로도토스의 저서 중에 그가 지어낸 작화들이 많다는 점을 깠다.

2 역사

저서 《역사》(Historiae)로 유명하다. 본디 뜻은 그리스어조사하다, 조사해서 알다라는 것으로 상상이 아니라 직접 조사해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쓴 저서다. 스스로 처음에 밝히길 위대한 사람들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도록 《역사》를 집필했다고 한다.《역사》는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19세기~20세기초까지는 그리스 옹호적인 저술이라고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아테네의 단점들도 저술했다는 점을 지적한 학자들도 많다.

《역사》는 당시의 그리스 문학과는 여러가지 차이점이 있었는데,

  • 산문형 문학이다.[2]
  • 신화가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일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다.
  • 뮤즈에게 영감을 얻지 않고 스스로의 탐문을 바탕으로 썼다.

또한 다른 고대 역사가와는 달리 "내가 누구누구에게 듣기로는..."하는 형태로 출처를 밝히는 점에서 독특하다. 책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사실에 기반해 합리적으로 적으려 노력했고 황당무계한 소리도 하지만 고대인 기준을 적용하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카더라 통신도 그 출처를 기록함과 동시에 카더라의 교차 검증, 비슷한 지방의 실제 사례 비교, 카더라 통신에 대한 합리적 분석으로 사실 판단 노력 등등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그리고 써 놓으면서도 이 책은 내가 듣거나 알고 있는 걸 전하려는 목적이 있다, 내가 들었으니 전하기는 하는데 사실 나도 안 믿는다 등등을 자주자주 덧붙인다. 당시 정보환경을 감안해볼때 출처를 명시하는건 굉장한 일. 그러나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전쟁에 들어서서는 본인의 논평이나 자세한 교차 검증이 적어지는 등 좀 과장을 섞는 것 같기도 하다.

비록 헤로도토스가 조사한 사실이 사실인지 아닌지 신빙성이 의심되는 부분도 있고 그의 분석이 틀린 부분도 있지만[3] 당시 그와 같이 생각하고 저술한 사람은 알려진 바가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그다지 없기 때문에 헤로도토스의 저서에 많은 부분을 의지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헌데 놀라운 것은 오늘날에 이르러서 고대 동방 모든 지역의 사정이 해명됨에 따라 헤로도토스가 전하고 있던 사실들이 의외일 정도로 정확했다는 점이다. 아프리카를 배 타고 일주한 이야기 등을 전하면서[4] 남쪽에 가면 해가 정오에 북쪽에 떠 있다는데 전하긴 전한다만 말이 되냐고 깠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습니다...에트루리아의 기원도 고고학적인 연구를 통해 헤로도토스가 언급한 소아시아 기원설이 맞는거 아니냐는 분위기이다. 또 나일 강 삼각주가 토사가 쌓여 바다를 밀어낸 것이란 것도 알아냈다.그리고 나일 강의 범람에 대한 설명들을 소개하면서 나일 강이 눈이 녹아 생긴 것이란 주장을 개소리라고 깠다. 적도는 엄청나게 더운데 뭔 놈의 눈이냐면서[5][6]

최초로 중국을 소개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흑해를 지나가는 초원의 부족들을 설명하면서 세레스를 언급하는데 이 세레스가 중국이라고 보는 견해이다. 헤로도토스는 가장 가까운 쪽에서부터 먼 쪽 기준으로, 남쪽에서 북쪽 기준으로 설명하는데 세레스는 가장 마지막에 설명된다. 세레스는 지금까지 소개된 가운데 가장 북쪽이고, 그래서 너무나도 춥기 때문에 그 이북으로는 사람이 살지 못한다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고대 초원길 가장 동쪽에 연결된 중국이라고 생각한다. 헤로도토스는 물론 당대 그 어느 누구도 경도와 위도를 제대로 계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방위를 올바르게 계산할 수 없어서 대강 북쪽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동쪽이었다고. 중국이 아니라 카슈미르였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어쨌든 이후 세레스라는 나라는 중국의 주요 수출품인 비단과 동일시되면서, 비단을 만드는 나라인 세레스가 곧 중국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3 여행 덕후

여행범위도 엄청난데 헤로도토스가 그의 저서에서 여행했던 부분들을 종합해 본다면 동쪽으로는 바빌론 내지 수사, 서쪽으로는 리비아의 키레네, 남쪽으로는 나일 상류의 시에네(아스완), 북쪽으로는 흑해부근의 콜키스 지방과 오르비아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다. 간단히 말해서 당시 그리스인들에게 '세계' 라 알려진 부분은 거의 돌아본 것이나 다름없다.[7] 진성 여행덕후.
  1. 중국의 사마천을 제외하면 이 정도의 찬사를 듣는 역사 저술가는 없을 것이다.
  2. 당시 그리스는 법조문도 시처럼 쓸 정도였다. 그리고 어휘가 잘 정리되지 않은 고대인들의 경우 시보다 산문이 더 어렵다. 그리스어의 경우 제법 정리된 편이긴 하지만.
  3. 그래서 거짓말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많은 고대 역사가들이 구라치지 말라는 소리 들었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특히 헤로도토스처럼 역사와 풍물지가 섞인 듯한 책을 쓴 사람은 더 그렇다.
  4. 몇몇 이벤트성 이유로 배타고 아프리카를 빙 돌려는 시도. 아라비아쪽 육지를 생각하면 배 타고 오래오래 빙 돌아온 다음 육로로는 잠깐 이동하면 출발지점에 도착하니까. 출발 전에는 몰랐다 해도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성공담도 있고 실패담도 있는데 성공담의 경우는 아예 종자를 배에 싣고 가면서 농사지어 먹으면서 천천히 이동한다는 실로 판타지 같은 파천황적 방식을 채용했다고 한다. 실패담의 경우는 대항해시대 플레이시 상아해안을 지나 남하할 때 계절풍을 역풍으로 맞으면 배가 기어가는 듯한 그 사례를 연상시킨다. 도저히 배가 나가지 않아서 돌아왔다고 하나 왕은 이를 거짓말로 보고 목을 뎅겅~
  5. 사실 이런 생각은 이후에도 계속되어서 적도는 너무 뜨거워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 상식으로 이어져왔다. 사하라 사막이란 게 있기도 했고.
  6. 그리고 나일강의 범람에 대한 헤로도토스의 해답은 태양이 계절풍으로 밀려서(...).
  7. 인도란 데가 있다는데 거기가 세계의 끝이라더라 정도는 전한다.알렉산더 : 인도가 세계의 끝이라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