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백씨

성씨수원 백씨(水原 白氏)
관향경기도 수원시
시조백우경(白宇經)
중시조백창직(白昌稷)
집성촌강원도 김화군, 평강군, 양평군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전라북도 진안군, 고창군
전라남도 무안군, 영암군, 여수시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경상북도 예천군 개포면
황해도 장연군 신화면
평안남도 순천군, 안주군
인구(2000년)316,535명 (25위)

1 소개

경기도 수원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백씨는 수원 단일본이며, 염포 백씨, 부여 백씨, 대흥 백씨, 해미 백씨 등은 모두 수원 백씨에서 갈려나간 성씨이다.[1]

2 역사

시조 백우경(白宇經)은 중국 고대의 전설 속의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 16세손 백을병(白乙丙)의 후손으로 중국 소주(蘇州) 출신이다. 당(唐)나라에서 첨의사(僉議事)와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렀으나 간신(奸臣)들의 모함을 받아 780년(신라 선덕왕 1년) 신라에 건너와 자옥산(紫玉山:지금 경주시 안강읍 옥산동) 밑에 정착한 후 영월당(迎月堂) 만세암(萬歲庵)을 짓고 학문 보급에 진력하였다.

그러나 상계(上系)가 불분명하여 신라 경덕왕(景德王: 재위 917년 ∼ 924년) 때 중랑장(中郞將)을 지내고 상장군(上將軍)에 증직된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中始祖)로 받들어 1세조로 한다.

백창직(白昌稷)의 증손 백휘(白揮)가 고려 목종 때 대사마대장군(大司馬大將軍)으로 수원군(水原君)에 봉해졌고, 그의 9세손 백천장(白天藏)이 원(元)나라에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거쳐 우승상(右丞相)을 지내고 귀국하여 고려 충선왕 때 수성백(隋城伯)에 봉해졌다. 수성은 수원의 옛 지명이다.

조선시대 총 194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했다. 그 중에 문과는 63명, 무과는 23명, 생원진사시는 107명, 의과는 1명이다.

3 분파

중시조 백창직(白昌稷)(? ~ 927?)에게는 길(吉), 탁(卓)의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길(吉)의 후손이 선정공파(禪亭公派), 인주공파(仁州公派), 오산군파(鰲山君派) 등 28개 파(派)를 차지하고 탁(卓)의 후손은 문간공파 하나뿐이다. 백길(白吉)의 후손에서도 5세조 백간미(白簡美)의 후손이 25개 파(派)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11세조 백인관(白仁寬)의 후손이 선정공파(禪亭公派), 12세조 백역(白繹)의 후손이 인주공파(仁州公派), 13세조 백계영(白桂英)의 후손이 오산군파(鰲山君派), 13세조 백유(白維)의 후손이 장단공파(長湍公派)이며 10세조 백문보(白文寶)의 후손이 담암공파(淡庵公派)이다.

백간미(白簡美)의 셋째 아들인 6세조 백무신(白武臣)의 후손이 양곡공파(陽谷公派), 넷째 아들인 백가신(白可臣)의 후손이 태사공파(太師公派)이다. 9세조인 백천장(白天藏)의 후손은 모두 17개 파(派)로 분파되었다.

12세조인 백장(白莊)의 후손이 정신재공파(靜愼齋公派)이고,[2] 14세조 백사순(白思純)의 후손이 좌랑공파(佐郞公派), 16세조 백인현(白仁賢)의 후손이 훈정공파(訓正公派), 백인영(白仁英)[3]의 후손이 도승지공파(都承旨公派), 백인웅(白仁雄)의 후손이 참봉공파(參奉公派), 백인호(白仁豪)의 후손이 별좌공파(別坐公派), 백인걸(白仁傑)[4]의 후손이 문경공파(文敬公派)이다.

13세조인 백효옹(白效雍)의 후손이 청산공파(靑山公派), 백효연(白效淵)의 후손이 산음공파(山陰公派),[5] 백효약(白效若)의 후손이 임피공파(臨陂公派)이다.

11세조 백인석(白仁碩)의 후손이 봉익대부공파(奉翊大夫公派)이고 13세조 백운실(白雲實)의 후손이 보공장군공파(保功將軍公派), 12세조 백수희(白受禧)의 후손이 부사공파(府使公派), 백수(白粹)의 후손이 금릉부원군파(金陵府院君派)이고, 18세조인 백응상(白應祥)의 후손이 함판공파(咸判公派), 20세조인 백흥남(白興男)의 후손이 절제공파(節制公派)이다. 그리고 백천장(白天藏)의 여섯째 아들 백거(白琚)의 후손이 중랑장(中郞將) 수의부위공파(修義副尉公派)이니, 이상이 백천장(白天藏)의 후손 17개 파(派)이다.

백천장(白天藏)의 동생인 백지장(白地藏)의 후손이 동림공파(東林公派)이고, 5세조인 백행미의 후손이 시랑공파(侍郞公派), 백가미(白可美)의 후손이 사전공파, 백채(白採)의 손자인 6세조 백영신(白英臣)의 후손이 부여군파(扶餘君派)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세조 백창직의 둘째 아들 탁(卓)의 후손이 단계(單係)로 이어져 그 5세손인 백문절(白文節)의 후손이 문간공파(文簡公派)이다.

이상에서 언급된 29개 파는 그 후손에 이르러 다시 몇몇 소파(小派)로 분파되기도 하였다.

4 출신인물

  1. 증보문헌비고에는 157개 본관이 전하나, 1997년 수원 백씨 측에서 백씨의 본관을 수원으로 통합하자고 회의록을 작성하자, 나머지 33개 본관에서 반대 의견을 제시하고 동의하지 않았다. 수원 백씨 측에서는 여타의 관향은 모두 수원에서 분적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본관에서는 백씨는 백제시대 이전부터 있던 한반도 토착 성본이라고 하여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2. 백장의 6세손인 백수장(白壽長)은 중종반정 때 공을 세워 정국공신(靖國功臣)에 책록되고, 공조판서를 역임하였으며, 정해군(貞海君)에 봉해졌다. 백수장의 후손은 전라남도 장흥군 안양면에 모여 사는데, 정해군파라고도 불린다.
  3. 중종 32년(1537년)에 문과(文科) 갑과(甲科)에 급제하였다. 호조참판, 직제학, 이조참의, 도승지 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상서관 등을 역임했다.
  4. 선조 때 직제학·이조참판·대사간·대사헌을 거쳐 공조참판, 우참찬 등을 지냈다. 선조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으며 학문에 뛰어났다.
  5.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의 백씨들이 바로 백효연의 후손, 산음공파이다. 박정희의 어머니 백남의는 바로 이 산음공파 가문에서 태어났다.